미국 극작가 루카스 네이스가 1879년 초연한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 15년 뒤를 상상해 쓴 작품이다. 자아를 찾기 위해 가족을 떠난 노라가 15년 후 성공한 작가가 돼 집으로 돌아오면서 공연은 시작된다.
노라(서이숙 분)는 남편 토르발트(손종학 분) 등 주변 인물들과 빼곡하게 대화를 쌓아간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방어하며 여성의 자아에 대한 주장을 강력하게 펼친다. 극은 덩그러니 남겨졌던 토르발트, 노라 대신 가족을 지켜온 유모 앤 마리, 엄마 없이 자란 딸 에미의 주장과 입장이 노라만큼이나 균등하게 배치한다. 이를 통해 여성뿐만 아니라 책임, 관계, 성장 등 인간의 삶을 둘러싼 다양한 질문을 쏟아낸다. 등장인물들은 쉴 새 없이 설전을 벌이며 생각의 균형을 찾아간다. 내용은 무겁지만 유쾌한 설정의 대사로 가득하다. 토르발트가 이혼 서류를 받아주지 않는 공무원과의 대화를 묘사할 땐 객석에서 웃음이 연이어 터진다.
무대 구성은 단순하다. 캐릭터들이 오가는 문, 이들이 대화할 때 사용하는 의자가 있는 정도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낸다. 노라는 처음 문을 열 때와 다시 문을 열고 나갈 때 또 다른 캐릭터가 돼 있다. 각 인물의 대립과 공감 정도는 의자 간 거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노라와 토르발트가 서로를 이해할 땐 의자가 딱 붙어있는 식이다.
마지막 장면은 개연성이 부족하다. 여기서 토르발트는 노라가 쓴 책을 보고 나서 생각을 바꾼다. 그런 사고의 전환이 갑작스러워 쉽게 와닿지 않는다. 토르발트의 생각 변화가 큰 수준은 아니지만, 중요한 장면인 만큼 좀 더 정교하게 그려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공연은 오는 28일까지.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