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도 안 듣는 靑"…회의도 안 여는 국민경제자문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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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회의 '0번'
문재인 정부 들어 전체회의 두 번뿐
"조언해도 소용 없어"
'소득주도성장' 쓴소리 한
김광두 前부의장 작년말 사표
문재인 정부 들어 전체회의 두 번뿐
"조언해도 소용 없어"
'소득주도성장' 쓴소리 한
김광두 前부의장 작년말 사표
대통령에게 경제정책 등을 조언하는 헌법상 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가 빙빙 겉돌고 있다. 제1기 자문회의 부의장(의장은 대통령)을 맡았던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과 석좌교수는 “조언해봤자 소용이 없었다”고 탄식하며 작년 말 스스로 물러났다. 지난 2월 이제민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뒤늦게 부의장에 임명됐지만 아직 민간위원 구성도 끝내지 못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전체회의는커녕 분과회의도 열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2017년 5월 보수 성향의 김 교수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 임명했다. 문 대통령은 인선 발표 자리에서 김 교수의 손을 잡고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손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문회의가 정부 경제정책의 ‘균형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자문회의의 존재감은 갈수록 희미해졌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자문회의 전체회의 개최는 두 번에 불과했다. 경제주체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본연의 역할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경제자문회의 올 예산 26억원
자문회의는 경제 관련 주요 정책 방향을 대통령 곁에서 보좌하는 헌법상 최고 자문기구다. 의장인 문 대통령과 이 부의장, 5인 이내의 당연직 위원, 30인 이내의 민간위원 등으로 구성된다. 위원들은 원칙적으로 분기마다 모여 전체회의를 열게 돼 있다. 자문회의를 행정 보조하는 지원단에 배정된 올해 예산은 26억43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올해 분과회의조차 제대로 열지 못했다. 법령에 1년마다 민간위원들을 새로 뽑도록 돼 있는데, 지난해 말 기존 위원들이 해촉된 뒤 여태 새 위원들을 선발하지 못해서다. 지원단 관계자는 “대통령 직속 기구인 만큼 청와대의 약식 인사검증이 필요한데 장관 등 더 중요한 인사검증이 많다 보니 밀리고 있다”며 “이 부의장이 청와대 간담회에 참석하는 형식으로 활동을 대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정부를 통틀어서도 전체회의 실적은 부진한 편이라는 지적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국민경제자문회의 역할을 키우겠다며 지원단을 꾸린 뒤 2014~2016년 3년간 총 6회의 전체회의를 열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2017년 ‘1기 위원’을 뽑을 때도 여성 비율과 지방 안배를 신경쓰느라 위원 구성이 7개월 넘게 지연됐다”며 “그만큼 청와대가 내용보다 형식을 중시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오죽 답답하면 유튜브 하겠나”
‘조언해도 듣지 않는’ 청와대가 자문회의를 존재감 없는 기구로 만들었다는 지적도 많다. 김 전 부의장은 2017년 취임한 뒤 청와대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5월에는 “한국 경제가 침체 국면 초기 단계에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가 “성급한 판단”이라는 김동연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8월에는 문 대통령과 독대해 “소득주도성장에만 매몰돼선 안 된다”며 정책 수정을 완곡하게 당부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고언도 별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11월 김 전 부의장은 한 포럼에 참석해 “조언 역할도 받아들이는 쪽에서 잘 받아들이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며 “그동안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여러 의견을 전달했고 현실화됐으면 하는 희망도 많이 했지만 현실이 이렇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한 민간위원은 “조언해봐야 전달이 잘 안 되는 것 같아 무력감이 들었다”며 “청와대 쪽 사람에게 누가 경제정책 관련 핵심 인물인지를 물어봐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고 토로했다. 이어 “김 전 부의장도 주로 SNS를 통해 ‘장외 투쟁’을 했고 최근엔 유튜브까지 시작했다는데 오죽 답답하면 그러겠는가”라고 꼬집었다. 김 전 부의장은 지난 13일 유튜브에 올린 ‘소득주도성장, 미련 버릴 때 됐다’는 제목의 영상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민생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 활성화 필요”
전문가들은 청와대가 국민경제자문회의 역할을 지금이라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외부의 ‘쓴소리’도 경청해야 균형 잡힌 경제정책을 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문 대통령은 최근 경제 현안에 대해 김수현 정책실장과 윤종원 경제수석, 노영민 비서실장 등 청와대 내부인사에게 주로 자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초빙교수는 “경제정책은 기업 등 경제 주체들과 호흡하며 펼쳐야 하는데, 지금은 청와대 혼자 정책을 끌고 나가는 모양새”라며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경제자문회의를 활성화해 국민 의견과 정책 비판을 적극적으로 수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가 미국 백악관의 국가경제위원회(NEC)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NEC는 대통령의 경제정책 자문과 경제 부처들 간 정책 조율 역할을 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도 NEC를 모델로 한 ‘한국형 NEC’ 안이 검토됐으나 흐지부지됐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2017년 5월 보수 성향의 김 교수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 임명했다. 문 대통령은 인선 발표 자리에서 김 교수의 손을 잡고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손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문회의가 정부 경제정책의 ‘균형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자문회의의 존재감은 갈수록 희미해졌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자문회의 전체회의 개최는 두 번에 불과했다. 경제주체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본연의 역할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경제자문회의 올 예산 26억원
자문회의는 경제 관련 주요 정책 방향을 대통령 곁에서 보좌하는 헌법상 최고 자문기구다. 의장인 문 대통령과 이 부의장, 5인 이내의 당연직 위원, 30인 이내의 민간위원 등으로 구성된다. 위원들은 원칙적으로 분기마다 모여 전체회의를 열게 돼 있다. 자문회의를 행정 보조하는 지원단에 배정된 올해 예산은 26억43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올해 분과회의조차 제대로 열지 못했다. 법령에 1년마다 민간위원들을 새로 뽑도록 돼 있는데, 지난해 말 기존 위원들이 해촉된 뒤 여태 새 위원들을 선발하지 못해서다. 지원단 관계자는 “대통령 직속 기구인 만큼 청와대의 약식 인사검증이 필요한데 장관 등 더 중요한 인사검증이 많다 보니 밀리고 있다”며 “이 부의장이 청와대 간담회에 참석하는 형식으로 활동을 대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정부를 통틀어서도 전체회의 실적은 부진한 편이라는 지적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국민경제자문회의 역할을 키우겠다며 지원단을 꾸린 뒤 2014~2016년 3년간 총 6회의 전체회의를 열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2017년 ‘1기 위원’을 뽑을 때도 여성 비율과 지방 안배를 신경쓰느라 위원 구성이 7개월 넘게 지연됐다”며 “그만큼 청와대가 내용보다 형식을 중시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오죽 답답하면 유튜브 하겠나”
‘조언해도 듣지 않는’ 청와대가 자문회의를 존재감 없는 기구로 만들었다는 지적도 많다. 김 전 부의장은 2017년 취임한 뒤 청와대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5월에는 “한국 경제가 침체 국면 초기 단계에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가 “성급한 판단”이라는 김동연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8월에는 문 대통령과 독대해 “소득주도성장에만 매몰돼선 안 된다”며 정책 수정을 완곡하게 당부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고언도 별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11월 김 전 부의장은 한 포럼에 참석해 “조언 역할도 받아들이는 쪽에서 잘 받아들이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며 “그동안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여러 의견을 전달했고 현실화됐으면 하는 희망도 많이 했지만 현실이 이렇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한 민간위원은 “조언해봐야 전달이 잘 안 되는 것 같아 무력감이 들었다”며 “청와대 쪽 사람에게 누가 경제정책 관련 핵심 인물인지를 물어봐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고 토로했다. 이어 “김 전 부의장도 주로 SNS를 통해 ‘장외 투쟁’을 했고 최근엔 유튜브까지 시작했다는데 오죽 답답하면 그러겠는가”라고 꼬집었다. 김 전 부의장은 지난 13일 유튜브에 올린 ‘소득주도성장, 미련 버릴 때 됐다’는 제목의 영상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민생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 활성화 필요”
전문가들은 청와대가 국민경제자문회의 역할을 지금이라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외부의 ‘쓴소리’도 경청해야 균형 잡힌 경제정책을 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문 대통령은 최근 경제 현안에 대해 김수현 정책실장과 윤종원 경제수석, 노영민 비서실장 등 청와대 내부인사에게 주로 자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초빙교수는 “경제정책은 기업 등 경제 주체들과 호흡하며 펼쳐야 하는데, 지금은 청와대 혼자 정책을 끌고 나가는 모양새”라며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경제자문회의를 활성화해 국민 의견과 정책 비판을 적극적으로 수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가 미국 백악관의 국가경제위원회(NEC)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NEC는 대통령의 경제정책 자문과 경제 부처들 간 정책 조율 역할을 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도 NEC를 모델로 한 ‘한국형 NEC’ 안이 검토됐으나 흐지부지됐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