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간판 대기업들이 협력사의 연구개발(R&D)과 제조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인적물적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중소 협력사의 기술과 제조 혁신이 본사 경쟁력으로 직결된다는 인식이 산업 전반에 폭넓게 확산된 결과다. 최근 들어선 사업적으로 직접 연관을 맺고 있는 1차 협력사뿐 아니라 2, 3차 협력사 지원도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사상 최대 실적에 기여한 임직원의 공로를 평가해 특별상여금을 지급했다. 재계가 눈여겨본 대목은 DS(반도체부품)부문 2차 협력사 89곳에 지급한 43억2000만원의 성과 인센티브다. 과거 1차 협력사에 줬던 우수 협력사 성과 인센티브를 이날 처음으로 2차 협력사에 지급했다. 협력사 임직원이 흘린 구슬땀이 세계 1위 제품 경쟁력의 토대가 됐다는 게 삼성전자 경영진의 판단이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협력사에 지급한 성과 인센티브는 총 897억원에 달한다. 관련 제도를 도입한 2010년 이후 가장 많은 금액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8월 3차 협력사를 지원하기 위한 전용 펀드도 조성했다. R&D 부문 4000억원, 물품대금 지원 3000억원 등 총 7000억원 규모다. 1, 2차 협력사를 지원하는 펀드를 3차 협력사로 확대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는 2010년부터 기업은행, 산업은행, 우리은행과 함께 1조원 규모의 상생펀드를 조성해 기술개발, 설비투자, 운전자금 목적의 대출금을 1차 협력사 등에 저리로 지원해왔다.

최저임금제로 인한 인건비 상승이나 원자재값 인상에 따른 비용 부담도 지원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초 500억원 규모의 상생협력기금을 새로 조성해 2, 3차 협력사 약 1300곳을 지원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다. 회사 한 곳당 평균 400만원을 지원했다. 삼성전자도 지난해부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협력사의 인건비 인상분을 납품 단가에 연동해 올려주고 있다.

협력사 임직원 교육 프로그램도 대기업들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주요 상생 분야다. SK그룹은 2006년부터 그룹 협력사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동반성장아카데미)을 운영하고 있다. SK가 관련 비용을 전액 지원한다. 2017년부터는 동반성장아카데미 참여 대상을 1차 협력사에서 2, 3차 협력사로 확대했다. 현대자동차는 협력사 채용박람회, R&D 테크 페스티벌 등 협력사 공동으로 진행하는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자동차부품 생태계의 경쟁력이 완성차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판단에서다.

대규모 투자 등 핵심 전략을 정하는 과정에서도 협력사와의 상생이 주요 변수로 검토된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산업집적지)에 120조원 규모의 중장기 투자를 결정하면서 협력사를 위한 동반성장 전략을 함께 내놨다. 동반 입주하는 협력사 50여 곳에 R&D 인프라와 인력 교육 등으로 1조2200억원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해외 협력사도 지원한다. LG전자는 올해부터 협력사의 제조 공정 자동화 등을 지원하는 스마트팩토리 대상에 해외 협력사를 포함시켰다. 제조 현장의 혁신엔 국내외 구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협력사 임직원을 직접 고용하는 추세도 확산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11월 전국 130여 개의 서비스센터에서 근무하는 협력사 직원 3900여 명을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별도 자회사를 설립하지 않고 LG전자가 이들 임직원을 직접 고용하는 방식이다. 오랜 기간 노조와 쌓아온 노사 신뢰관계가 협력사와의 상생으로 이어졌다. LG전자는 1993년 수직적 관계의 ‘노사(勞使)’가 아닌 수평적 관계의 ‘노경(勞經)’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경영진과 임직원이 상호 협력하는 문화를 만들고 있다. LG전자에 앞서 삼성전자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도 지난해 협력사 직원 8700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삼성과 LG가 잇따라 협력사 직원을 직접 고용하면서 이런 움직임이 재계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