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도 없이 ILO협약 비준 권고한 경사노위…결국 경영계는 '들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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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총 "인정할 수 없다" 반발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및 관련 법 개정을 놓고 9개월간 논의했지만 노사 합의 없이 종료됐다. 경사노위는 경영계의 일부 요구 사항인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과 파업 시 직장 점거 금지를 권고하는 공익위원안을 제시하면서 정부와 국회에 ILO 핵심협약의 조속한 비준을 촉구했다.
하지만 경영계 핵심 요구사항인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과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금지’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회적 합의를 강조해온 경사노위가 노동계 주장만 받아들이고 경영계의 절박한 호소는 외면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수근 경사노위 노사관계제도 관행개선위원장은 15일 브리핑에서 “공익위원안 제시를 끝으로 ILO 핵심협약 비준 논의는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그는 “공익위원안은 ILO 핵심협약 비준과 법 개정을 위한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는 협약 비준과 법 개정을 위한 행정·입법적 조치에 조속히 들어가기를 권고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공익위원안을 토대로 노·사·정 대표자 담판을 통해 대타협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동계에 경도된 공익위원안은 인정할 수 없다”며 “경영계의 방어권 차원에서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제도 개선과 반드시 연계해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9개월간 사회적 대화 '시늉'만…ILO협약 비준 결국 勞 요구대로
“정부는 결국 경영계 요구사항 중 일부를 들어주는 척하고 노사 양측 의견을 반영했다며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권고안을 낼 겁니다. 형식상으로는 사회적 대화 과정을 거치지만 사실은 ILO 협약 비준을 강제하기 위한 것이고, 경영계는 들러리를 서는 셈입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한 경제단체 관계자가 한 말이다. 그로부터 5개월 후 그의 우려는 빗나가지 않았다. 노사관계위는 15일 브리핑을 열고 경영계 요구의 일부만 수용하면서 정부와 국회에 ILO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하는 공익위원안을 발표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 권고안은 해고자·실직자의 노동조합 가입 허용, 공무원의 노조 가입 범위 확대,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 금지규정 삭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경영계 “현찰 내주고 어음 받은 거래”
노사관계위 공익위원들은 이날 ILO 핵심협약과 관련한 논의 종료를 선언하면서 경영계가 요구한 단협 유효기간 연장(현행 2년→3년)과 사업장 내 쟁의행위(직장점거) 규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경영계 의견을 일부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경영계의 핵심 요구 사안인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문제는 국제노동기준과 헌법 취지에 어긋난다며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사업주 형사처벌 제한 요구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 과제로 넘겼다.
박수근 노사관계위 위원장은 브리핑에서 “부당노동행위 처벌 문제는 노동관계법에 규정된 형사처벌제도 정비라는 관점에서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위원회 활동 시한인 오는 7월까지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공익위원들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하는 유럽연합(EU)의 압박을 거론하며 정부와 국회에 조속한 행정·입법적 조치를 주문했다. 공익위원인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EU는 한국의 ILO 핵심협약 미 비준을 이유로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분쟁 해결 절차를 개시했고 이제 그 마지막 단계를 앞둔 긴박한 상황”이라며 “일각에선 6월까지 여유가 있다고 하지만 5월 EU 의회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행동을 취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기정사실화하면서 경영계 핵심 요구사항은 뒤로 미루거나 거부한 것을 두고 ‘기울어진 운동장’의 예견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ILO 핵심협약은 당장 하겠다면서 경영계의 방어권 요구를 뒤로 미룬 것은 현찰 내주고 어음 받은 거래”라며 “ILO 협약 비준이 성사되고 나면 경영계 요구사항을 반영해주겠느냐”고 반문했다.
“6월이 마지노선”…다급해진 정부
정부는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ILO 100주년 총회 전에 핵심협약 비준 관련 논의를 마무리짓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ILO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총회에 참석해 연설해줄 것을 요청한 데다 집권 3년차를 넘기면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동력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노사관계위에서의 ILO 관련 논의가 종결됨에 따라 부대표(차관)급 또는 대표(장관)급 담판을 통해 대타협을 시도할 계획이다. 하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영계는 이날 공익위원안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경총 관계자는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파업 시 사업장 점거 금지와 ILO 핵심협약은 가격이 맞지 않는 거래”라며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등 기업들의 호소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합의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타협에 실패하고 정부 단독 입법안이 마련되더라도 국회 논의는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정부·여당은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를 국회에 계류돼 있는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안과 ‘빅딜’로 해결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지만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절대 불가’ 입장이기 때문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사노위 논의 과정에 EU 경제보복설 등 공포 마케팅까지 등장하는 등 사회 갈등이 커지고 있다”며 “국회에서는 ILO 핵심협약 비준만이 아니라 노사관계 제도·관행 전반에 관한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하지만 경영계 핵심 요구사항인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과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금지’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회적 합의를 강조해온 경사노위가 노동계 주장만 받아들이고 경영계의 절박한 호소는 외면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수근 경사노위 노사관계제도 관행개선위원장은 15일 브리핑에서 “공익위원안 제시를 끝으로 ILO 핵심협약 비준 논의는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그는 “공익위원안은 ILO 핵심협약 비준과 법 개정을 위한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는 협약 비준과 법 개정을 위한 행정·입법적 조치에 조속히 들어가기를 권고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공익위원안을 토대로 노·사·정 대표자 담판을 통해 대타협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동계에 경도된 공익위원안은 인정할 수 없다”며 “경영계의 방어권 차원에서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제도 개선과 반드시 연계해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9개월간 사회적 대화 '시늉'만…ILO협약 비준 결국 勞 요구대로
“정부는 결국 경영계 요구사항 중 일부를 들어주는 척하고 노사 양측 의견을 반영했다며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권고안을 낼 겁니다. 형식상으로는 사회적 대화 과정을 거치지만 사실은 ILO 협약 비준을 강제하기 위한 것이고, 경영계는 들러리를 서는 셈입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한 경제단체 관계자가 한 말이다. 그로부터 5개월 후 그의 우려는 빗나가지 않았다. 노사관계위는 15일 브리핑을 열고 경영계 요구의 일부만 수용하면서 정부와 국회에 ILO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하는 공익위원안을 발표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 권고안은 해고자·실직자의 노동조합 가입 허용, 공무원의 노조 가입 범위 확대,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 금지규정 삭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경영계 “현찰 내주고 어음 받은 거래”
노사관계위 공익위원들은 이날 ILO 핵심협약과 관련한 논의 종료를 선언하면서 경영계가 요구한 단협 유효기간 연장(현행 2년→3년)과 사업장 내 쟁의행위(직장점거) 규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경영계 의견을 일부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경영계의 핵심 요구 사안인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문제는 국제노동기준과 헌법 취지에 어긋난다며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사업주 형사처벌 제한 요구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 과제로 넘겼다.
박수근 노사관계위 위원장은 브리핑에서 “부당노동행위 처벌 문제는 노동관계법에 규정된 형사처벌제도 정비라는 관점에서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위원회 활동 시한인 오는 7월까지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공익위원들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하는 유럽연합(EU)의 압박을 거론하며 정부와 국회에 조속한 행정·입법적 조치를 주문했다. 공익위원인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EU는 한국의 ILO 핵심협약 미 비준을 이유로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분쟁 해결 절차를 개시했고 이제 그 마지막 단계를 앞둔 긴박한 상황”이라며 “일각에선 6월까지 여유가 있다고 하지만 5월 EU 의회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행동을 취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기정사실화하면서 경영계 핵심 요구사항은 뒤로 미루거나 거부한 것을 두고 ‘기울어진 운동장’의 예견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ILO 핵심협약은 당장 하겠다면서 경영계의 방어권 요구를 뒤로 미룬 것은 현찰 내주고 어음 받은 거래”라며 “ILO 협약 비준이 성사되고 나면 경영계 요구사항을 반영해주겠느냐”고 반문했다.
“6월이 마지노선”…다급해진 정부
정부는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ILO 100주년 총회 전에 핵심협약 비준 관련 논의를 마무리짓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ILO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총회에 참석해 연설해줄 것을 요청한 데다 집권 3년차를 넘기면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동력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노사관계위에서의 ILO 관련 논의가 종결됨에 따라 부대표(차관)급 또는 대표(장관)급 담판을 통해 대타협을 시도할 계획이다. 하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영계는 이날 공익위원안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경총 관계자는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파업 시 사업장 점거 금지와 ILO 핵심협약은 가격이 맞지 않는 거래”라며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등 기업들의 호소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합의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타협에 실패하고 정부 단독 입법안이 마련되더라도 국회 논의는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정부·여당은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를 국회에 계류돼 있는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안과 ‘빅딜’로 해결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지만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절대 불가’ 입장이기 때문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사노위 논의 과정에 EU 경제보복설 등 공포 마케팅까지 등장하는 등 사회 갈등이 커지고 있다”며 “국회에서는 ILO 핵심협약 비준만이 아니라 노사관계 제도·관행 전반에 관한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