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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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저스펙’ 사회였다. 변호사나 회계사 자격증이 있으면 굴지의 대기업에 과장급 또는 대리급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경영학석사(MBA) 학위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유명대학에서 MBA 학위를 따오면 글로벌 투자은행(IB), 외국계 전략컨설팅 회사에 어렵지 않게 입사할 수 있었다. 국내 대기업들은 해외 유명 MBA 출신들을 팀장급 또는 임원급으로 모셔가기도 했다.

이제는 얘기가 달라졌다. 한국 사회도 ‘고스펙’ 사회가 되면서 해외 MBA 학위만으로 남부럽지 않은 좋은 일자리를 얻기가 어려워졌다. 10년여에 걸친 학습효과를 통해 기업들은 해외 MBA 출신도 업무 능력은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기업들은 MBA 출신들이 무엇을 공부했는지, 그리고 어떤 분야에 강점이 있는지 등을 꼼꼼히 따져 사람을 뽑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최근 몇 년 새 국내 대학 MBA의 인기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해외 MBA=이직의 보증수표’라는 공식이 깨지면서 MBA 지원생들이 비용 대비 효과, 즉 ‘가성비’를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직장인들 입장에서 해외 MBA는 일과 학업의 병행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국내 MBA는 상당수 대학이 직장인들을 위한 ‘야간반’ 또는 ‘주말반’을 개설해놓고 있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다닐 수 있다. MBA를 이수하는 데 들어가는 학비도 국내 MBA는 해외 MBA의 3분의 1 수준이다.

인맥 형성의 내실면에서도 국내 MBA가 해외 MBA를 앞서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해외 MBA는 졸업생 대부분이 미국에 남거나 자신들의 고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MBA 과정을 마친 뒤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탄탄한 네트워크, 저렴한 학비…한국형 MBA가 '답'
반면 국내 MBA는 졸업생 대다수가 국내 기업 금융회사 등에서 맹활약을 이어가기 때문에 졸업 이후에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상부상조할 수 있다. 한양대 MBA에 재학 중인 이보형 BT스틸 대표는 “학위를 끝낸 이후에도 한국에서 계속 일할 사람이라면 국내 대학에서 MBA를 다니면서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국내 MBA의 수준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업그레이드된 것도 국내 MBA가 인기를 끄는 요인 중 하나다. 서울 지역 주요 대학 중 상당수가 해외 대학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복수(국내 대학+해외 대학) 학위 취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교수진도 상당 부분 해외 전문가로 채우고 있다. 또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직장인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MBA 과정도 운영하고 있다.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은 국내 대학 중 가장 세분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현재 한양 MBA, 프로페셔널 MBA, 인터내셔널 MBA 등 3개 교육과정에서 18개 세부 전공트랙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한양 MBA는 미래 최고경영자(CEO) 양성을 목표로 설계됐다. 조직인사, 회계, 재무금융, 글로벌 비즈니스 등 CEO들이 알아야 할 다양한 분야를 가르친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aSSIST)와 핀란드 알토대가 공동 운영하는 ‘알토대 EMBA’ 프로그램은 국내에 개설된 EMBA 중 유일하게 졸업생 전원이 국내와 유럽 명문대 정규 석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수업이 주말에만 진행돼 평일에 시간을 내기 힘든 직장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국내 최초로 전일제 MBA 과정을 도입한 KAIST는 비즈니스 애널리틱스에 특화된 과정인 테크노MBA와 정보미디어MBA, 금융 전문가를 키워내기 위한 금융MBA, 직장인 맞춤형 과정인 야간 프로페셔널MBA 등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중앙대 MBA는 실무에 특화된 CAU리더MBA(야간·토요일 전일제)와 다양한 외국인 학생과 함께 수업하는 글로벌MBA(풀타임)로 구성돼 있다. 이 중 글로벌 MBA는 전체 학생의 절반가량이 외국인 유학생으로 채워져 있어 학생들에게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할 기회를 제공한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