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LG전자 HE사업본부 경영진은 시장조사기관이 제공한 지난 1분기 글로벌 TV 판매량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LG전자를 비롯해 TV시장을 주름잡던 삼성전자와 소니의 판매량에는 ‘빨간불(비상등)’이 켜진 반면 중국 업체 수치에는 ‘파란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TV업계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점유율 대신 수익성을 지키는 전략으로 돌아서긴 했지만 중국 업체의 성장세가 예상보다 너무 빠르다”고 우려했다.

저가 시장 잠식하는 중국

TCL / 사진=EPA
TCL / 사진=EPA
18일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TV 판매량은 각각 934만 대, 639만 대로 전년 동기 대비 4%씩 떨어졌다. 반면 중국 TCL과 하이센스 판매량은 557만 대와 371만 대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0%, 18% 증가한 수치다.

특히 TCL의 도약이 눈부셨다. 중국은 물론 미국 시장 내 30~40인치대 TV 시장을 사실상 ‘싹쓸이’하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 최대 가전 유통사 베스트바이에 따르면 이 회사 30~40인치대 TV 가격은 139.99~199.99달러에 불과하다. 55인치 4K TV도 349.99달러에 살 수 있다. 같은 크기의 삼성 저가 모델 TV(500달러대)의 70%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패널 가격 수준에 TV를 파니까 다른 업체들은 사실상 경쟁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수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투자를 등에 업은 패널 업체들이 시장에 LCD(액정표시장치)를 저가로 쏟아내면서 가격 경쟁력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55인치 4K 제품이 40만원…중국 TV의 '공습'
기술 격차 벌리는 한국

아직까지는 값싼 가격을 ‘무기’로 점유율만 높이고 있지만 중국 업체들은 프리미엄 시장 진입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OLED TV 시장 공략이 대표적이다. 아직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을 사실상 독점 생산하고 있는 LG디스플레이의 패널 생산량이 부족해 중국 업체들은 패널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LG디스플레이가 오는 3분기부터 중국 광저우 공장에서 OLED 패널을 생산하면 이를 공급받을 중국 업체들의 OLED TV 시장 공략 속도가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샤프 TCL 하이얼 창훙 등은 8K(UHD보다 4배 선명한 해상도) TV를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2500달러 이상 제품 판매량은 전년 대비 하이센스 17배, TCL 12배, 샤프 6배로 증가했다.

한국 업체들은 프리미엄 제품으로 중국 업체와의 격차를 벌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LG전자는 OLED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1분기 전체 TV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 줄었지만 OLED TV 판매량은 9% 증가했다. 삼성전자는 8K QLED TV로 8K 시장 개척의 선봉에 섰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가 난립하면서 TV업계에도 한 차례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고의 프리미엄 브랜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