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사설 깊이 읽기] 고교 무상교육, 중장기적 재원조달이 먼저 해결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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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설] 고교 교육 질 떨어뜨리고 '무상'만 확대, 안될 일이다
정부와 여당이 논란 많은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올해 2학기부터 바로 시행하겠다고 나섰다. 우선은 고3 학생부터 하되 후년부터는 전면 확대한다는 일정까지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1년 앞당겨 이행하겠다는 것인데, 너무 서두른다는 인상을 준다. 재정을 총괄하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시기상조론’을 폈던 게 불과 넉 달 전이다.
고교 무상교육이라는 큰 정책을 시행하겠다며 내놓은 재정 추계와 재원대책은 5년짜리에 그쳤다. 정부와 교육청이 47.5%씩 부담하고 지방자치단체가 5%를 맡는 방식에 벌써부터 교육청이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안 그래도 정파가 다르면 사사건건 정부와 맞서는 게 교육청들이다. 설사 지금은 동의해도 선거로 교육감이 바뀌어 돈을 못 내겠다고 하면 4~5년 전 ‘누리과정 사태’가 되풀이 안 된다는 보장이 없다. 재원대책과 분담원칙에 대한 합의도 없이 정부가 3~5세 보육(누리과정)을 통합 책임지겠다며 서둘러 발표한 뒤의 혼란과 극심한 갈등을 그새 잊었나.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이 무색하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한국만 고교 무상교육을 않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고교의 실상을 안다면 그런 말을 쉽게 못 할 것이다. OECD의 선진국들은 고교과정에서도 수월성 교육에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등으로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게 일반적이다. 최근 문제가 된 기초학력 미달률 급증 등을 봐도 하향평준화된 한국의 공교육은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전인교육은커녕 ‘건전하고 독립적인 자유 시민’의 소양교육도 부실한 게 우리 고교 교육이다. 기초 체력을 함양하는 체육수업도 사라지고 음악 미술 같은 최소한의 ‘감성 교육’도 기대하기 어렵다. 단적으로 중산층 수준의 취미라도 하나 갖는 데 고교 교과가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 4차 산업혁명에 맞춘 교과과정 대수술이 무상교육보다 우선돼야 한다. 성급한 무상교육 확대는 수년째 사립대 등록금까지 동결하도록 압박해온 것과 다를 게 없다. 포퓰리즘 기반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등록금 동결이 어려운 처지의 학생들에게 얼마간 도움이 되겠지만, 대학 경쟁력 저하라는 더 큰 문제점을 낳고 있다.
재원 조달 문제도 교육재정의 구조조정이라는 큰 틀에서 볼 필요가 있다. 학생은 해마다 급감하는데 내국세의 20.27%를 무조건 시·도 교육청에 배정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은 그대로다. 2015년 892만 명이었던 학령인구가 올해 805만 명으로 줄었으나 교육청에 보내는 돈은 39조원에서 55조원으로 늘었다.
이런 돈은 방치한 채 무상교육 예산을 새로 편성하겠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학생 청년들을 겨냥한 무상시리즈가 몰려나오는 판에 ‘총선용’이라는 비판까지 들으며 정부가 서두를 이유는 없다. 입법화 과정에서라도 무상교육의 대상과 속도에서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교과과정 선(先)정상화, 교육재정의 구조조정과 함께 가도 늦지 않다.
사설 읽기 포인트
무상교육은 국민 세금이 재원
조기시행보다 자율권 확대 등
교과과정 정상화 선행되어야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고교 무상교육제 조기 시행’ 발표로 비롯된 논쟁점은 크게 봐서 세 가지다. 중앙 정부와 각 시·도 교육청 사이에 재원 부담에 관한 충분한 합의 없이 발표된 것에서 양쪽의 견해 차이가 벌써 나오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단순히 당장 어느 쪽에서 필요한 경비를 대느냐 하는 차원을 넘는다. 궁극적으로 무상교육제 유지에 따른 지속적인 비용 문제인 만큼, 다른 복지제도와 마찬가지로 중장기적 재원조달 계획과 방안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 제기하는 쪽의 주된 논거다. 그래야 이 제도가 지속가능하다.
재원 문제와 관련되면, 교육재정 전반에 걸친 일대 혁신으로 논의가 확장돼야 할 것이다. 과도한 저출산으로 인해 학령인구는 급감하는 데 교육 예산은 매년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투입(투자, input) 대비 산출(결과, output)이 부족한 경우를 ‘부실’이라고 규정한다면 교육이야말로 부실이 심한 분야다. ‘공공’을 지향해온 한국의 의료도 그런 영역이다. 한국의 공교육은 어떻게 봐도 부실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체력, 예체능 역량 등 모든 면에서 그렇다.
교육의 부실을 계속 방치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도 그렇다. 한정된 국가 경영의 재원을 꼭 필요한 곳에, 가장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 것은 교육예산만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초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학교는 미래에 대비한 적절한 교육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교과과정 점검, 교사 재교육, 필요하면 학교와 교육제도 전반에 걸친 일대 개혁도 불사해야 할 시점이다. 무상교육에 몰두하기에 앞서 이런 소프트웨어 혁신을 도모하는 게 먼저가 돼야 한다.
교육예산에 대한 개편과 공교육에 대한 대수술은 전체 재정의 효율화와 국가기능의 재조정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몇 년 새 공공의 비대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하지만 성과 점검은 뒤따르지 않았다. 공공개혁 측면에서도 교육제도 전반의 개혁 논의는 필요하다. 요컨대 무상제도 확대에 앞서 교육 수준 높이기, 경쟁력 강화로 부실에서 벗어나기가 더 시급하다. 미래 사회에 대한 준비를 교육에서부터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
huhws@hankyung.com
정부와 여당이 논란 많은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올해 2학기부터 바로 시행하겠다고 나섰다. 우선은 고3 학생부터 하되 후년부터는 전면 확대한다는 일정까지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1년 앞당겨 이행하겠다는 것인데, 너무 서두른다는 인상을 준다. 재정을 총괄하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시기상조론’을 폈던 게 불과 넉 달 전이다.
고교 무상교육이라는 큰 정책을 시행하겠다며 내놓은 재정 추계와 재원대책은 5년짜리에 그쳤다. 정부와 교육청이 47.5%씩 부담하고 지방자치단체가 5%를 맡는 방식에 벌써부터 교육청이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안 그래도 정파가 다르면 사사건건 정부와 맞서는 게 교육청들이다. 설사 지금은 동의해도 선거로 교육감이 바뀌어 돈을 못 내겠다고 하면 4~5년 전 ‘누리과정 사태’가 되풀이 안 된다는 보장이 없다. 재원대책과 분담원칙에 대한 합의도 없이 정부가 3~5세 보육(누리과정)을 통합 책임지겠다며 서둘러 발표한 뒤의 혼란과 극심한 갈등을 그새 잊었나.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이 무색하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한국만 고교 무상교육을 않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고교의 실상을 안다면 그런 말을 쉽게 못 할 것이다. OECD의 선진국들은 고교과정에서도 수월성 교육에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등으로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게 일반적이다. 최근 문제가 된 기초학력 미달률 급증 등을 봐도 하향평준화된 한국의 공교육은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전인교육은커녕 ‘건전하고 독립적인 자유 시민’의 소양교육도 부실한 게 우리 고교 교육이다. 기초 체력을 함양하는 체육수업도 사라지고 음악 미술 같은 최소한의 ‘감성 교육’도 기대하기 어렵다. 단적으로 중산층 수준의 취미라도 하나 갖는 데 고교 교과가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 4차 산업혁명에 맞춘 교과과정 대수술이 무상교육보다 우선돼야 한다. 성급한 무상교육 확대는 수년째 사립대 등록금까지 동결하도록 압박해온 것과 다를 게 없다. 포퓰리즘 기반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등록금 동결이 어려운 처지의 학생들에게 얼마간 도움이 되겠지만, 대학 경쟁력 저하라는 더 큰 문제점을 낳고 있다.
재원 조달 문제도 교육재정의 구조조정이라는 큰 틀에서 볼 필요가 있다. 학생은 해마다 급감하는데 내국세의 20.27%를 무조건 시·도 교육청에 배정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은 그대로다. 2015년 892만 명이었던 학령인구가 올해 805만 명으로 줄었으나 교육청에 보내는 돈은 39조원에서 55조원으로 늘었다.
이런 돈은 방치한 채 무상교육 예산을 새로 편성하겠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학생 청년들을 겨냥한 무상시리즈가 몰려나오는 판에 ‘총선용’이라는 비판까지 들으며 정부가 서두를 이유는 없다. 입법화 과정에서라도 무상교육의 대상과 속도에서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교과과정 선(先)정상화, 교육재정의 구조조정과 함께 가도 늦지 않다.
사설 읽기 포인트
무상교육은 국민 세금이 재원
조기시행보다 자율권 확대 등
교과과정 정상화 선행되어야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고교 무상교육제 조기 시행’ 발표로 비롯된 논쟁점은 크게 봐서 세 가지다. 중앙 정부와 각 시·도 교육청 사이에 재원 부담에 관한 충분한 합의 없이 발표된 것에서 양쪽의 견해 차이가 벌써 나오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단순히 당장 어느 쪽에서 필요한 경비를 대느냐 하는 차원을 넘는다. 궁극적으로 무상교육제 유지에 따른 지속적인 비용 문제인 만큼, 다른 복지제도와 마찬가지로 중장기적 재원조달 계획과 방안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 제기하는 쪽의 주된 논거다. 그래야 이 제도가 지속가능하다.
재원 문제와 관련되면, 교육재정 전반에 걸친 일대 혁신으로 논의가 확장돼야 할 것이다. 과도한 저출산으로 인해 학령인구는 급감하는 데 교육 예산은 매년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투입(투자, input) 대비 산출(결과, output)이 부족한 경우를 ‘부실’이라고 규정한다면 교육이야말로 부실이 심한 분야다. ‘공공’을 지향해온 한국의 의료도 그런 영역이다. 한국의 공교육은 어떻게 봐도 부실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체력, 예체능 역량 등 모든 면에서 그렇다.
교육의 부실을 계속 방치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도 그렇다. 한정된 국가 경영의 재원을 꼭 필요한 곳에, 가장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 것은 교육예산만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초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학교는 미래에 대비한 적절한 교육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교과과정 점검, 교사 재교육, 필요하면 학교와 교육제도 전반에 걸친 일대 개혁도 불사해야 할 시점이다. 무상교육에 몰두하기에 앞서 이런 소프트웨어 혁신을 도모하는 게 먼저가 돼야 한다.
교육예산에 대한 개편과 공교육에 대한 대수술은 전체 재정의 효율화와 국가기능의 재조정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몇 년 새 공공의 비대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하지만 성과 점검은 뒤따르지 않았다. 공공개혁 측면에서도 교육제도 전반의 개혁 논의는 필요하다. 요컨대 무상제도 확대에 앞서 교육 수준 높이기, 경쟁력 강화로 부실에서 벗어나기가 더 시급하다. 미래 사회에 대한 준비를 교육에서부터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