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요직 중의 요직' 북미과장, 대기업으로 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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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의 감찰, 외교부 위상 축소에 흔들리는 엘리트 외교관들
역대 대통령 3명 통역한 ‘엘리트’ 외교관
“엘리트 외교관들에 대한 청와대의 불신에 좌절감”
가뜩이나 지역 전문가 양성 어려운데…외교부 차원에서도 손실
문 정부 들어서 ‘적폐'로 몰리면서 외교부 내 지역국 인기 ↓
역대 대통령 3명 통역한 ‘엘리트’ 외교관
“엘리트 외교관들에 대한 청와대의 불신에 좌절감”
가뜩이나 지역 전문가 양성 어려운데…외교부 차원에서도 손실
문 정부 들어서 ‘적폐'로 몰리면서 외교부 내 지역국 인기 ↓
외교부 북미국 북미2과의 김일범 과장(외무고시 33기)이 최근 사표를 내고 다음달 한 대기업으로 이직하기로 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북핵 협상 등 중대 국면에서 외교부 내의 ‘엘리트 코스’라 불리는 북미국 소속 과장급 외교관의 이직을 둘러싸고 외교부 안팎에서는 “청와대로부터의 감찰, 외교무대에서 외교부의 역할 축소 등 최근 외교부의 위상이 달라지면서 나타나는 상징적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 3명 통역 맡은 '실력파'
외교부에 따르면 한 대기업이 최근 김 과장을 임원급으로 영입하기로 했다. 해당 기업의 북미 사업전략 업무를 맡을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기업 관계자는 “최근 미국 셰일에너지기업 블루레이서 미드스트림에 1700억원을 투자한 것을 비롯해 조지아주 배터리공장 건설에 1조9000억원 투자, 제약업체인 앰펙 인수 등 북미 지역에서 에너지, 바이오,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와 사업 확대를 진행 중”이라며 “김 과장은 북미 지역 사업의 중책을 맡을 북미 전문가로서 영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1999년 외무고시 2부(외국어 능통자 전형) 수석으로 외교부에 입성했다. 20대 사무관 시절부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까지 통역을 보좌하는 등 ‘실력파’로 인정받았다. 이후 외교부 UN대표부, 아르빌 연락사무소, 주미 대사관 1등 서기관을 거쳐 지난해 2월부터는 북미2과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그는 주 싱가포르·덴마크 대사와 오사카 총영사를 지낸 김세택 대사의 아들이기도 하다.
외교부 내부에서는 김 과장이 “이전부터 기업에 가는 것을 원해 왔고, 이번에 기회가 와서 그만둔 것”이라는 평가다. 한 외교부 당국자는 “과장급이 외부로 이직하는 사례는 과거에도 종종 있었기 때문에 김 과장의 이직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며 “김 과장은 특히 영어 실력뿐만 아니라 일도 잘하는 ‘다재다능형’ 인재여서 전부터 외부에서 영입 제의가 몇 번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엘리트 외교관의 이적은 상당히 이례적”
하지만 ‘엘리트 코스’를 밟던 김 과장이 민간기업으로의 이직을 택한 것을 두고 엘리트 외교관들 사이에 과거와는 다른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짜고 있는 외교판에서 외교부의 역할이 축소되고, 엘리트 외교관들에 대한 청와대의 불신과 경계심에 좌절감을 느낀 것도 김 과장의 이직 이유 중 하나라는 추측이다. 한 전직 고위 외교부 관료는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겠지만, 북미과에 속해 있는 과장급 외교관이 민간 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은 지난해 말 외교부 내 ‘언론 빨대(취재원)’ 색출을 이유로 외교부 차관보부터 과장급까지 미·중·일 라인 핵심 인사 10여 명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감찰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휴대전화를 수거당하고 검찰 수사에 가까운 대면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용의선상에 이름을 올린 인물들 중에서는 북미라인 인사가 가장 많았다. 북미국은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외교정책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동맹파’다. 문 정권 출범 이후 주베트남대사로 임명된 김도현 대사를 비롯해 자주적인 대미외교를 주장하는 ‘자주파'들의 득세하면서 북미라인이 견제의 대상이 됐다는 볼멘소리가 외교부 안팎에서 나왔다.
엘리트 외교관의 이적은 김 과장뿐만이 아니다. 지난 2월에는 김경한 전 외교부 국제경제국 심의관이 포스코의 무역통상실장(전무급) 자리로 이직하기도 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사무관이나 서기관급에서도 민간 회사 등 외부로 이직을 하는 사례가 최근 있었다”고 말했다.
김 과장의 이적은 외교부의 지역 전문가 양성 차원에서도 뼈아픈 손실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외교부 내에 지역 외교를 관할하는 지역국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대표적인 지역 전문가를 잃었다는 평가다. 지역국의 인기는 문 정권 출범 이후 기존의 지역 외교라인들이 ‘적폐’로 몰리며 불이익을 받으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후반에 북미라인을 총괄하던 김홍균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관행과 달리 영전을 하지 못한 채 퇴직했다. 그와 함께 대북정책의 중추적 역할을 맡았던장호진 전 총리 외교보좌관, 조현동 전 외교부 기획조정실장 등도 현 정부 출범 후 새 보직을 받지 못했다. 한 외교부 관계자는 “자신들도 한발 삐끗하면 적폐로 몰릴 수 있다는 심적 부담이 지역국이 아닌 다자, 개발 등 부서로 젊은 외교관들의 발길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대통령 3명 통역 맡은 '실력파'
외교부에 따르면 한 대기업이 최근 김 과장을 임원급으로 영입하기로 했다. 해당 기업의 북미 사업전략 업무를 맡을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기업 관계자는 “최근 미국 셰일에너지기업 블루레이서 미드스트림에 1700억원을 투자한 것을 비롯해 조지아주 배터리공장 건설에 1조9000억원 투자, 제약업체인 앰펙 인수 등 북미 지역에서 에너지, 바이오,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와 사업 확대를 진행 중”이라며 “김 과장은 북미 지역 사업의 중책을 맡을 북미 전문가로서 영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1999년 외무고시 2부(외국어 능통자 전형) 수석으로 외교부에 입성했다. 20대 사무관 시절부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까지 통역을 보좌하는 등 ‘실력파’로 인정받았다. 이후 외교부 UN대표부, 아르빌 연락사무소, 주미 대사관 1등 서기관을 거쳐 지난해 2월부터는 북미2과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그는 주 싱가포르·덴마크 대사와 오사카 총영사를 지낸 김세택 대사의 아들이기도 하다.
외교부 내부에서는 김 과장이 “이전부터 기업에 가는 것을 원해 왔고, 이번에 기회가 와서 그만둔 것”이라는 평가다. 한 외교부 당국자는 “과장급이 외부로 이직하는 사례는 과거에도 종종 있었기 때문에 김 과장의 이직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며 “김 과장은 특히 영어 실력뿐만 아니라 일도 잘하는 ‘다재다능형’ 인재여서 전부터 외부에서 영입 제의가 몇 번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엘리트 외교관의 이적은 상당히 이례적”
하지만 ‘엘리트 코스’를 밟던 김 과장이 민간기업으로의 이직을 택한 것을 두고 엘리트 외교관들 사이에 과거와는 다른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짜고 있는 외교판에서 외교부의 역할이 축소되고, 엘리트 외교관들에 대한 청와대의 불신과 경계심에 좌절감을 느낀 것도 김 과장의 이직 이유 중 하나라는 추측이다. 한 전직 고위 외교부 관료는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겠지만, 북미과에 속해 있는 과장급 외교관이 민간 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은 지난해 말 외교부 내 ‘언론 빨대(취재원)’ 색출을 이유로 외교부 차관보부터 과장급까지 미·중·일 라인 핵심 인사 10여 명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감찰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휴대전화를 수거당하고 검찰 수사에 가까운 대면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용의선상에 이름을 올린 인물들 중에서는 북미라인 인사가 가장 많았다. 북미국은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외교정책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동맹파’다. 문 정권 출범 이후 주베트남대사로 임명된 김도현 대사를 비롯해 자주적인 대미외교를 주장하는 ‘자주파'들의 득세하면서 북미라인이 견제의 대상이 됐다는 볼멘소리가 외교부 안팎에서 나왔다.
엘리트 외교관의 이적은 김 과장뿐만이 아니다. 지난 2월에는 김경한 전 외교부 국제경제국 심의관이 포스코의 무역통상실장(전무급) 자리로 이직하기도 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사무관이나 서기관급에서도 민간 회사 등 외부로 이직을 하는 사례가 최근 있었다”고 말했다.
김 과장의 이적은 외교부의 지역 전문가 양성 차원에서도 뼈아픈 손실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외교부 내에 지역 외교를 관할하는 지역국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대표적인 지역 전문가를 잃었다는 평가다. 지역국의 인기는 문 정권 출범 이후 기존의 지역 외교라인들이 ‘적폐’로 몰리며 불이익을 받으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후반에 북미라인을 총괄하던 김홍균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관행과 달리 영전을 하지 못한 채 퇴직했다. 그와 함께 대북정책의 중추적 역할을 맡았던장호진 전 총리 외교보좌관, 조현동 전 외교부 기획조정실장 등도 현 정부 출범 후 새 보직을 받지 못했다. 한 외교부 관계자는 “자신들도 한발 삐끗하면 적폐로 몰릴 수 있다는 심적 부담이 지역국이 아닌 다자, 개발 등 부서로 젊은 외교관들의 발길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