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업 재정난 속 '금호아트홀 연세'로 이동…김봄소리 첫 공연
공연계 "금호아시아나 사세 위축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
'굴곡의 19년' 금호아트홀 광화문 시대 저문다
일주일 후면 클래식 명소인 금호아트홀이 광화문 시대를 마감한다.

2000년 완공 시기를 기준으로 하면 근 19년 만에 광화문을 떠난다.

19일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 따르면 종로구 새문안로 대우건설빌딩에 위치한 이 공연장은 오는 30일 마지막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다음 달 1일부터는 연세대학교 내 '금호아트홀 연세'에 새 둥지를 튼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법률사무소가 빌딩 소유주인 도이치자산운용과 사무실 임대차 계약을 하면서 금호아트홀이 쓰던 공간 사용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 결정은 핵심 기업인 아시아나항공 매각까지 결정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재정적 어려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금호아트홀이 위치한 대우건설빌딩은 원래 2000년 준공 이래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옥으로 사용하다 지난 2006년 금호 가족이 된 대우건설이 2008년에 입주해 건물명을 바꿨고, 금호아시아나 본사는 이전해 나갔다.

박삼구 당시 회장은 공격적 경영으로 대우건설, 대한통운을 잇달아 인수해 재계 7위까지 몸집을 불렸지만, 이런 무리한 행보는 재무구조를 악화시켜 결국 경영권까지 채권단에 넘겨야 했다.

대우건설빌딩도 2013년 도이치자산운용에 매각됐다.

금호아트홀은 건물주가 바뀐 이후 대우건설을 통한 재임대 형식으로 버텼지만, 대우건설 사옥 이전이 결정된 이후 재임대 계약이 불발됐다.

건물 사용자가 금호아트홀 유지를 원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건설은 오는 5월 이사한다.

이에 따라 광화문 금호아트홀은 시내 중심부 높은 임대료를 낼 필요가 없는 '금호아트홀 연세'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기게 됐다.

재단 관계자는 "금호아트홀의 폐관은 이미 아시아나항공의 회계상 문제가 제기되기 전인 작년 12월에 정리된 사항"이라며 "재단은 앞으로도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영재는 기르고, 문화는 가꾸고'라는 목적사업을 활발히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계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금호아트홀이 정부 부처와 대기업, 언론사가 밀집된 광화문을 떠난다는 것은 아시아나항공 매각 결정과 더불어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사세 위축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며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시일이 걸릴지라도 모회사가 정상궤도를 찾아 예술지원사업을 이어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굴곡의 19년' 금호아트홀 광화문 시대 저문다
광화문을 떠나는 금호아트홀이 그간 클래식계에 한 공헌은 적지 않다.

390석 규모의 광화문 금호아트홀은 완벽한 음향 설계 시스템을 갖춘 공연장으로 널리 사랑받았다.

재단은 이곳에서 금호 영재·영아티스트 콘서트, 아름다운 목요일 콘서트 등을 열어 한국 클래식을 풍성하게 했다.

아트홀 완공 전인 1997년 시작한 '아름다운 목요일' 시리즈는 정경화, 정명화 등 한국 대표 연주자뿐 아니라 외르크 데무스, 하인츠 홀리거, 이고르 오짐, 미리암 프리드, 매튜 발리 등 해외 거장을 소개하는 장이었다.

1998년 시작한 '금호영재콘서트'는 '영재는 기르고, 문화는 가꾸고'란 재단 모토에 따라 어린 학생들을 위한 오디션과 독주 무대를 제공했다.

20년간 이 프로그램이 배출한 음악 영재가 1천여명에 달한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손열음·선우예권, 바이올리니스트 고(故) 권혁주·김봄소리·신지아·양인모·임지영·최예은, 첼리스트 고봉인·문태국, 플루티스트 조성현, 오보이스트 함경,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등 이곳을 스쳐 간 스타가 즐비하다.

특히 지원을 시작한 1990년대 후반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직후 문화계 전반이 흔들릴 때여서 더욱 뜻깊다.

정든 광화문을 떠나며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이유다.

재단 예술지원사업이 여기서 멈추는 건 아니다.

기존 프로그램은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계속 진행한다.

금호아트홀 연세는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2015년 연세대학교 캠퍼스에 건설 및 기증한 390석 규모 클래식 전용 홀이다.
'굴곡의 19년' 금호아트홀 광화문 시대 저문다
광화문에 작별을 고하고 새 출발을 응원하는 공연도 열린다.

오는 25일에는 실내악 앙상블 금호아시아나솔로이스츠가 광화문 금호아트홀에서 '메모리스 인 광화문'을 펼친다.

비올리스트 이한나, 첼리스트 김민지, 피아니스트 김다솔,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바이올리니스트 이재형이 브람스 피아노 사중주 1번과 슈만 피아노 오중주 E-flat을 선보인다.

이날 금호아트홀 로비에는 그간 금호아트홀에서의 공연 사진들을 영상으로 상영한다.

광화문에서의 마지막 공연은 오는 30일 김진승 바이올린 독주회다.

다음 달 2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의 첫 '아름다운 목요일' 콘서트 '다 카포: 처음부터, 새롭게'는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가 포문을 연다.

김봄소리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금호악기은행 수혜자로 1774년 제작된 J.B. 과다니니, 투린을 지원받아 사용한 인연이 있다.

이날 하마마츠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를 석권한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와 함께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32번,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소나타 2번 등을 들려줄 예정이다.
'굴곡의 19년' 금호아트홀 광화문 시대 저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