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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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65)은 용감한 ‘사랑꾼’이다. 그가 부인을 처음 만난 것은 대구에서 군 복무를 할 때였다. 그는 일반 사병이었고 부인은 간호장교였다. 당시에도 장교가 병사와 사귀는 것은 징계 사유였다. 원 회장은 “선후임들 덕분에 아내와 몰래 만날 수 있었다”며 “뭐든 해야겠다고 결심하면 과감하게 추진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말 대한약사회 총무위원장을 맡아 의사와 약사 간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일조한 것도 이런 성격이 한몫했다. 그는 ‘의약분업은 피할 수 없는 변화’라는 확신을 갖고 협상을 이끌었다. ‘의약분업 전도사’로 불린 배경이다. 2년 전 협회장을 맡은 이후에는 제약·바이오업계에 변화의 바람을 주도하고 있다. 협회가 나서서 인공지능(AI) 기반 신약 개발 등의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최근 서울 논현동에 있는 한우 전문점 대가원에서 그를 만났다.

2층 테이블에 자리를 잡자 한 종업원이 원 회장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식당 주인의 조카였다. 원 회장은 “2001년 여기를 처음 찾았을 때 이 친구가 작은 꼬마였는데 벌써 이렇게 컸다”며 그에게 술을 권했다. 가까운 친척집을 찾은 것처럼 금세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약국 환자 가족관계까지 기록하는 약사

쌈채소 김치 등 간단한 밑반찬과 함께 꽤 무거워 보이는 무쇠판이 테이블 가운데 놓였다. 뜨겁게 달궈진 무쇠판에 생등심을 올리자 고소한 냄새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원 회장은 “부산 인근에서 고기를 가져오는데 아마 국내에서 최상품으로 꼽힐 것”이라며 “보름에 한 번은 꼭 찾아올 정도로 맛이 좋다”고 했다. 그가 파절임을 곁들인 고기 한 점을 건네며 맛을 보라고 권했다. “고기와 파절임을 같이 먹는 게 맛도 좋지만 건강에도 좋죠.”

원 회장은 6·25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 서울에서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집중력이 매우 뛰어났다. 한 번 책상에 앉으면 반나절이 지나도록 공부에 몰두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서울대 약대에 들어간 뒤 그는 뜻하지 않게 과대표를 맡았다. “원래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과대표가 된 뒤 제 안에 숨어 있는 리더십을 발견했죠.”

1977년 대학 졸업 후 동아제약에 입사했다. 회사생활은 즐거웠다. ‘국민 피로해소제’로 자리잡은 박카스 덕분에 회사가 급성장하던 때였다. 그러나 3년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강원 속초 인근 군부대로 발령받은 부인 때문이었다. “아내를 못 보고 지내는 게 너무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친구와 회사 동료들이 말렸지만 무작정 따라갔습니다.”

원 회장은 속초 변두리에 약국을 차렸다. 입소문이 나면서 약국을 찾는 환자가 늘어났다. 비법은 환자와 적극 소통하는 것이었다. “약국을 찾는 환자는 빼놓지 않고 가족관계 등의 사적인 정보를 메모했어요. 그렇게 관심을 보였더니 차츰 믿음이 쌓였고 제가 처방해준 약은 누구나 꼬박꼬박 잘 챙겨 먹더라고요. 그러다 약 잘 지어주는 약국이라고 소문도 났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어떤 어려운 일도 소통과 신뢰가 쌓이면 풀 수 있다는 것을요.”

“어차피 할 일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만들어라”

원 회장은 애주가다. 한때는 폭탄주 스무 잔도 거뜬했을 정도로 주량도 만만찮았다. 요즘은 건강 때문에 술을 줄였다고 했다. 그는 “고기에는 폭탄주가 잘 어울린다”며 잔을 돌렸다. 폭탄주 한 잔을 쭉 들이켠 원 회장은 요리 실력을 자랑했다. “평소 집에서 요리를 즐겨 합니다. 제일 자신 있는 요리는 제육볶음이에요. 두 사위가 가끔 제육볶음 해달라고 조를 정도지요.” 비결을 물었다. “음식 맛의 70%는 식재료에서 결정납니다. 이 집 음식도 그래요. 맛을 인위적으로 더하지 않고 원재료 맛을 그대로 살리는 게 비결 같아요.”

1983년 속초 생활을 접고 서울로 올라온 그는 대치동에 약국을 개업했다. 환자가 많이 찾아 재산도 제법 모았다. 1991년 주변의 권유로 강남구약사회 회장이 됐다. 한의사와 약사 간 분쟁, 의약분업, 약대 6년제 전환 등 굵직한 사안들을 그때 다뤘다. 그는 “여기저기서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옳다고 생각한 것을 실행에 옮기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2000년 의약분업 협상을 진행하다가 과로로 뇌졸중 증상을 겪기도 했다. 의사가 휴식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가는 집념을 보였다.

“옳다고 여겼더라도 반대를 뚫고 끝까지 추진하는 게 어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제일 싫어하는 말이 ‘어차피 할 일이라면 즐겨라’라는 겁니다. 일이란 게 즐기면서 하기란 쉽지 않거든요. 저는 직원들에게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 만들라’고 해요. 저 스스로도 중책을 맡을 때마다 ‘이 일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되새깁니다.”

서울시약사회 부회장, 대한약사회 총무위원장을 거쳐 2004년 직선제로 뽑힌 첫 대한약사회장이 됐다. 한창 보폭을 넓히고 있을 즈음 원 회장은 뜻밖의 악재와 맞닥뜨렸다. 건강검진에서 간암이 발견됐다. 당시 간암 5년 생존율은 47%밖에 안 됐다. 간이식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미국에 살던 처남이 간 일부를 떼주겠다고 달려왔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원 회장은 건강을 회복했다. “아내와 결혼할 때 처남은 초등학생이었어요. 처남이라기보다 조카처럼 대하면서 지냈는데 흔쾌히 어려운 결정을 내려줘 고맙고도 미안했습니다.”

제약업계도 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투병 얘기로 분위가 가라앉을 때쯤 이 식당 별미로 꼽히는 깍두기 볶음밥이 나왔다. 원 회장은 그릇에 밥을 덜어주며 “고기보다 이걸 먹으러 온다”며 웃었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진 않았지만 고슬고슬한 밥에서 중독성 있는 매콤달콤한 맛이 났다. 잠시 그릇에 숟가락이 부딪치는 소리만 방을 채웠다.

제약업계는 최근 큰 난관을 만났다. 정부가 복제약(제네릭)의 무분별한 범람을 막기 위해 공동 생동시험(제네릭이 오리지널 약과 효과와 안전성 측면에서 동일한지 검증하는 시험을 여러 제약사가 공동으로 하는 것)을 폐지하고 약가를 지금보다 최대 15% 낮추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0여 개에 달하는 고혈압약에 발암 물질인 N-니트로소디메틸아민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게 계기가 됐다. 제네릭에 의존하는 국내 제약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연구개발비를 분담할 수 있는 공동 생동시험이 없어지면 개발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 중소 제약사의 반발이 거세다.

원 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정부와 업계 입장을 조율하느라 분주하다. 그는 “세상의 변화를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 반 발짝이라도 앞서가야 한다는 논리로 회원사인 제약업계를 설득했다”고 했다. 발사르탄 사태에 대한 책임 소재를 떠나 좋은 약을 개발해 국민 눈높이에 맞춰야 하는 게 제약업계의 소명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변화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게 뻔히 보이는데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가만히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변화할 시점을 놓치고 도태되기 일쑤죠. 이제 국내 제약사들은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신약뿐 아니라 양질의 제네릭을 개발해야죠. 중소 제약사들이 해외로 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협회가 징검다리를 놔주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마중물 역할 하겠다”

원 회장은 “제약·바이오산업은 국민산업”이라고 여러 차례 힘줘 말했다.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키우려면 민관이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도 했다. 지난 3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75억원을 투입해 공동 설립한 AI 신약개발지원센터도 그 일환이다. AI 신약개발지원센터는 AI를 활용해 신약 개발 성공률을 높이는 게 목표다. 제약사와 AI 기업을 연결해주고 전문 인력을 교육하는 등 여러 업무를 하게 된다. 그는 “공공 부문에 기업이 쓸 수 있는 데이터가 많으니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신약 개발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AI를 활용해 의약품을 개발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해보자는 것”이라며 “민관 협력의 모범 사례가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해외 제약·바이오 기업과 파트너십을 모색하는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전략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한·벨기에 헬스케어포럼, 한·영 생명과학포럼 등을 개최하며 해외 기업과 국내 제약사 간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벨기에 같은 신흥 제약 강국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많고 함께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이제 한 회사가 자기 연구소만 가지고 신약을 개발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정부도 오픈이노베이션을 추진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합니다.”

그는 제약·바이오산업을 옥죄고 있는 규제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원 회장은 “제약·바이오산업은 국민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규제할 부분은 확실히 규제하는 게 맞다”면서도 “정부가 여론의 눈치만 보지 말고 여론을 선도하는 리더십을 발휘해 규제 혁신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개인의 의료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게 허용해야 합니다. 유전자치료제 등 재생의료 분야도 윤리 문제에 너무 매몰돼 있습니다. 줄기세포 연구가 비교적 자유로운 나라들이라고 윤리의식이 없는 게 아니잖아요. 규제 때문에 우리가 뒤처지고 있는 게 너무 많아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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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의 역사는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제약산업 발전을 위해 회원사들이 모여 설립한 조선약품공업협회가 출발점이다. 현재 회원사는 194개다. “제약·바이오산업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국민산업’”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최근 한·벨기에 헬스케어포럼, 한·영 생명과학포럼 등을 열며 해외 기업들과 다각도로 협력을 모색하는 오픈이노베이션 기회를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지난달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인공지능 신약개발지원센터를 공동 설립해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신약을 개발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약력

△1954년 서울 출생
△1973년 용산고 졸업
△1977년 서울대 약대 졸업
△1979~1981년 동아제약 개발부 근무
△1991~1994년 서울 강남구약사회 회장
△2002년 대한약사회 정책기획단 단장
△2003년 강원대 대학원 약학박사
△2004~2008년 대한약사회 회장
△2008~2012년 제18대 국회의원
△2012~2017년 이화여대 헬스커뮤니케이션연구원 원장
△2017년~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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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목 회장의 단골집 대가원

생등심만 파는 한우집…깍두기 볶음밥 별미


서울 논현동에 있는 대가원은 여러 부위 가운데 생등심만 파는 한우 전문점이다. 특등급 고기를 사용한다. 매장에서 직접 숙성해 맛이 담백하고 육질이 부드럽다. 높은 온도에서 무쇠판에 고기를 구워 육즙이 빠지지 않아 풍미가 좋다. 1인분에 3만9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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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식당의 별미 중 하나는 깍두기 볶음밥(3000원)이다. 파채로 파기름을 낸 다음 잘게 썬 깍두기를 밥과 함께 볶는다. 고기를 먹고 난 뒤 식사로 냉면 등의 다른 메뉴도 있지만 깍두기 볶음밥이 많이 나간다.

식당 관계자는 “깍두기 볶음밥을 먹으려고 찾는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소고기를 듬뿍 넣은 된장국에 밥을 넣고 자작하게 끓인 된장밥(3000원)도 인기가 좋다.

대가원은 140석의 대규모 식당이다. 1층은 입식으로 돼 있고 2층은 6명 이상 들어갈 수 있는 방들이 있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영업한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