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타결 임박 美·中 협상, 자유무역 복원 아니다
“미·중 무역협상이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13일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이 워싱턴DC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미·중 정상회담 일정은 오리무중이다. 이달 말까지 실무협상을 마무리하고 5월 말에 정상회담을 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미합의 쟁점에 대한 돌파구가 전격적으로 마련되지 않는다면 협상은 원점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내 지지세력을 겨냥해 협상의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할 최적의 합의 시점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신의 불확실성 즉, ‘트럼프 리스크’를 미국의 위협적인 협상 자산으로 유동화하는 데 성공했다. 양측은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애드벌룬을 띄우고 있지만 몇 가지 핵심 쟁점에서는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첫째는 ‘이행 메커니즘의 비대칭성’ 문제다. 지식재산권 보호나 강제 기술이전 금지 등 미국의 주요 요구사항에 대해 중국은 이를 수용하고 관련 입법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은 입법 자체보다도 그 이행 여부에 더 큰 방점을 두고 이를 제도화하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즉 ‘이행 사무소’를 설치해 실무급에서 장관급까지 월별, 분기별, 반기별 양자 회의에서 이행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미국은 이행 평가의 절차나 방식 및 약속 위반에 따른 처벌 권한을 자국에만 부여하고 중국에는 미국의 조치에 대한 보복 권한마저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독립적인 패널 혹은 양국 합동 평가단 구성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반발하고 있다.

둘째는 ‘산업정책의 전면적 수정에 대한 중국의 수용 가능성 여부’ 문제다. 미국은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에서 맺었던 국유기업에 관한 규정을 일종의 모범 기준으로 삼아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즉, 외국기업과 경쟁하는 중국 국유기업의 상업적 행위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획기적으로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맞서 중국은 점진적인 개혁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국유기업을 어떻게 정의하고 보조금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협상의 성패뿐만 아니라 중국의 미래가 달린 핵심 의제다. 미국은 이 문제를 일본과 유럽연합(EU), 캐나다, 호주 등과 함께 복수국 협정으로 다자화할 방안도 논의 중이다.

셋째는 ‘2500억달러에 달하는 중국산 수입품에 이미 부과된 미국 관세의 존치 여부’를 둘러싼 불협화음이다. 중국은 협상 선결 요건으로 관세부터 없애라고 아우성이다. 반면 미국은 중국의 협상 이행 여부를 봐가며 현재의 관세를 미래 협상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미·중 무역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자유무역질서로의 복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보호주의 공세는 타깃을 바꿔 계속될 것이고 중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트럼프는 다음 상대로 일본과 독일을 향해 창(槍)을 겨눌 태세지만 언제든지 한국을 다시 찌를 수도 있다. 미 안보조항 232조의 발동 대상도 철강과 자동차에서 반도체와 조선, 항공 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로서는 시나리오별 비상계획을 구축해야 할 때다. ‘저가공세’와 ‘물량털기’로 한국 시장을 교란하는 중국 제품에 대해서는 무역구제제도를 재정비해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견제로 중국의 산업정책이 흔들리는 지금, 문화·관광·의료·교육·금융·게임 등 서비스 산업의 혁신적인 생태계 조성 작업이 시급하다. 디지털기술로 무장한 이종(異種)사업자와의 무한경쟁이 글로벌 차원에서 빠르게 전개되고 있지만 한국 기업들은 규제에 눌려 꼼짝달싹 못 하고 있다. 산업계 주도로 기업 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악성 규제부터 파악해 ‘부처별 1일 1악성규제 폐지’를 호소하는 청와대 청원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