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캘리포니아대 모르슈트 교수팀
합성생물학 기술로 유전자 조작
세포끼리 신호 주고받아 조직 만들어
스스로 3차원 생체구조 형성
“정 박사! 서둘러 간세포를 배양해 간조직을 만들어줘. 간암 환자의 간을 이식해야겠어.”
#장면2
“이 박사! 교통사고로 얼굴 일부가 함몰된 환자가 발생했어. 그 부위의 크기와 모양을 스캔했으니 그대로 피부세포를 배양해 조직을 만들어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조만간 실험실에서 세포를 배양해 인체 조직이나 장기를 만들고 이를 환자에게 이식하는 일이 일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조직과 장기를 이식하려면 자기자신 또는 타인에게서 조직과 장기를 확보해야 한다. 이게 쉽지 않은 일이다 보니 장기 공여자와 수여자의 수급 불일치가 발생하기 일쑤다. 장기를 이식받지 못하고 매년 사망하는 대기 환자가 국내에서만 1만 명이 넘는 이유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연구자가 대안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인간의 유전자를 포함한 특정 장기를 갖는 무균돼지 같은 동물을 키워 필요할 때 동물 장기를 꺼내 인간에게 이식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세포를 잉크로 사용하는 바이오 3차원(3D) 프린터로 조직이나 장기를 출력하는 기술도 연구 중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이미 3D 구조로 짜인 조직과 장기를 직접 활용하려 한다는 측면에서 인간이 세포의 기능을 원하는 대로 조작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인공세포 제작이 가능한 합성생물학
인간의 조직과 장기는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세포가 분화하면서 형성된다. 세포끼리 생체 신호를 주고받은 뒤 서로 엉겨 붙어서 조직을 생성하고 이 조직이 발전하면 장기가 된다. 이런 과정은 모두 세포 안에 존재하는 유전자에 암호화돼 있다. 연구자들은 이 암호를 해독하는 데 수십여 년간 심혈을 기울이는 중이다. 그 덕분에 인체의 비밀이 하나씩 벗겨지고 있다.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읽고 암호를 풀어 인간이 의도한 대로 세포를 합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합성생물학’이란 분야가 발전했다. 합성생물학이란 세포의 생명 현상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세포를 조작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학적 조직을 설계 및 합성하거나 이미 존재하는 생명체를 변형시키는 방법을 탐구한다.
합성생물학은 생명 정보를 저장하고 있는 암호인 유전자를 빠르게 읽는 기술과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유전자 재조합기술에서 출발했다. 세포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려면 유전자 조각들을 연결해 새로운 유전자 회로를 제작하고 이를 세포에 도입하면 된다. 마치 전자제품의 전자회로를 만드는 것과 같다. 미국의 크레이그벤터연구소는 세포의 유전자 전체를 합성해 인공세포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인간이 세포의 기능을 직접 설계한 세포를 만들 수 있음을 보인 것이다.
세포 스스로 장기가 되는 기술 개발
‘세포의 자기조직화’라는 개념이 있다. 세포와 세포가 서로 생체 신호를 전달하고 각 세포가 서로의 표면을 인지하면서 세포 스스로 3D 구조를 형성하는 현상이다.
최근 레오나르도 모르슈트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팀과 웬델 림 스탠퍼드대 교수팀은 중요한 성과를 올렸다. 합성생물학 기술을 활용해 세포의 유전자를 조작함으로써 세포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아 원하는 형태의 조직을 형성하게 하는 ‘세포 자기조립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연구팀은 유전자를 재합성해 세포가 서로를 인식할 수 있게 돕는 물질을 세포 표면에 붙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포끼리 모이기 시작했고 최종적으로는 연구팀이 의도했던 3D 구조가 만들어졌다. 아직 초기 단계의 기술이지만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세포를 조작해 세포 스스로가 3D의 생체조직을 구성하게 했다는 점에서 인공 장기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다.
호모 데우스 시대 머지않아
이제 인간은 태초에 신이 그랬던 것처럼 세포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원하는 조직이나 장기, 더 나아가 생명체를 창조하고 싶어한다. 탈모 환자에게 모낭을 이식하거나 간경화 환자에게 타인의 건강한 간조직을 이식하는 지금처럼 공여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세포를 조작함으로써 필요한 조직과 장기를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인간 수명이 100세에서 200세로 늘어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생물학은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를 이해하는 과학적 탐구를 넘어서고 있다. 인공세포를 통해 새로운 조직, 장기, 생명체를 제조할 수 있는 ‘발명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인간은 유전공학의 발달로 유전자를 개량하고 새 장기를 이식받아 젊고 건강한 육체로 장수하는 ‘호모 데우스’(신이 된 인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시대가 머지않았다. 세포·혈관도 있다…3D 프린터로 만든 인공심장
이스라엘 과학자들이 지난 4월 15일 3차원(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체리 크기의 인공심장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세포와 혈관·심실 등으로 가득한 인공심장을 3D 프린터로 구현한 것은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