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회사가 지난해 말까지 화주와 체결한 장기운송계약(CVC)을 전액 매출로 회계처리할 수 있다는 감독지침이 나왔다. 올해 새 리스기준서(IFRS1116호)가 시행되면서 CVC 계약의 매출인식을 놓고 해운사들과 외부감사인(회계법인)간 충돌이 잇따른 데 따른 조치다.
23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신(新)리스기준서 시행에 따른 해운사·화주간 CVC 회계처리 관련 감독지침’에 따르면 작년 말까지 맺은 CVC 계약은 회계처리에 오류가 없는 경우 계약 종료시까지 전액 매출로 잡을 수 있다. 올해 이후 맺는 계약에 대해선 건별로 기업과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이 협의해 판단하도록 했다.
CVC 계약이란 선박을 이용해 특정 장소로 여러 차례 화물을 운송하기 위한 장기 계약이다. 해외에서 수입한 철광석 등 원재료를 벌크선에 싣고 국내로 옮기는 계약을 10년간 맺는 식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권에서 주로 이용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해운회사는 예전 회계처리 기준에 따라 CVC 계약 전체를 운송계약으로 회계처리해 매출로 잡았다. 그러나 “IFRS1116호에 따르면 화주가 인건비나 운항비 등을 부담하지 않고 단순히 선박만 사용하는 것은 금융리스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매출로 잡으면 안된다”는 의견이 회계업계에서 제기됐다
한 회계사는 “CVC 계약에 대한 매출인식을 놓고 회사와 감사인간 분쟁이 잇따라 발생했다”며 “이미 ‘적정’을 준 과거 재무제표에 수정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선문 금융위 회계감독팀장은 “신 리스기준서의 경과규정에 따라 과거 기준상으로 판단오류가 없다면 매출로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감독지침 발표로 혜택을 받게 된 곳은 에이치라인해운, 팬오션, 대한해운, SK해운, 현대글로비스 등 국제회계기준(IFRS)을 체택한 8개 벌크선 사업자들이다. 이들은 올해에만 총 6367억원, 계약 잔여기간까지 모두 합치면 최대 6조1543억원의 매출 감소를 피하게 됐다고 선주협회는 추정했다.
CVC 계약이 가장 많은 에이치라인해운의 경우 올해 3350억원, 계약 잔여기간까지 최대 3조3889원의 매출 감소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에이치라인해운은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가 한진해운으로부터 벌크선 사업부 등을 인수해 설립한 회사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이번 감독지침이 나오면서 에이치라인해운의 IPO를 둘러싸고 제기됐던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됐다”고 설명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한국전력 3개 화주는 최대 7조원의 부채 증가를 피할 수 있게 됐다. CVC 계약이 금융리스로 분류될 경우 화주도 그만큼 부채를 쌓아야 하기 때문에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