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기업이 환경과 사회책임 관련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방안이 본격 추진된다. 올해 시행된 지배구조 공시 의무화에 이은 ‘2탄’이다. 상장사들은 공시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23일 한국거래소의 ‘E·S 정보공개 확대방안 검토’ 연구용역 제안 요청서에 따르면 거래소는 사회책임투자의 핵심 요소인 ESG(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의 공개 필요성에 따라 국내 실정에 맞는 E·S 공시 의무화 방안 연구에 나섰다.

사회적 책임 투자는 환경(E), 사회책임(S), 지배구조(G) 같은 비(非)재무적 요소를 고려해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올해 6월 3일까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200곳이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를 작성해 공시하도록 하면서 사회적 책임 투자의 물꼬를 텄다.

거래소 측은 “대규모 법인 대상으로 공시가 의무화된 지배구조 정보와 달리 환경·사회책임 정보는 자율공시 사항으로 공시실적이 미미하다”며 “기업의 공시부담을 최소화하면서 투자자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절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홍콩 등 6개국의 사례를 기반으로 ‘한국형 ES 공시 의무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오는 8월까지 관련 연구를 마치고 올해 안에 제도적 준비를 끝낼 방침이다.

사회적 책임 공시 의무화 방안은 2016년 국회에서 입법발의됐지만 과잉 규제라는 재계 반발에 부딪혀 계류 중이다. 사회적 책임 공시를 의무화하면 기업의 공시 부담은 상당히 커질 전망이다. 기후변화 대응 같은 일반적인 경영활동뿐 아니라 환경단체에 대한 대응까지 공개해야 한다. 사회책임 분야로는 근로조건, 노사관계, 협력사와의 상생 노력, 지역사회 기여도 등을 공시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금융감독원이 사회적 책임 공시를 의무화하겠다면서 법제화가 아닌 다른 방식을 찾겠다고 나서자 관련 논의가 다시 물살을 탔다. 지난 18일 안효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국민연금이 ESG 기준에 맞춰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증권업계에서 거래소의 이 같은 연구용역이 금감원을 중심으로 한 정부 정책에 발을 맞추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환경 관련 정보가 공개되면 수많은 환경단체가 이를 근거로 기업들을 압박할 게 눈에 보이고 노사 관계 등에 대한 공시는 훗날 법적 문제에 대한 부담으로도 작용할 것”이라며 “비재무적 요소가 재무적 요소를 뛰어넘어 기업의 생사를 흔드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