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과거를 조작하는 권력은 미래가 없다
‘디스토피아(dystopia)’는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utopia)’와 반대되는 가상사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존 스튜어트 밀이 1868년 영국 의회 연설에서 영국의 아일랜드 억압을 비판하며 처음 사용했다. 디스토피아의 전형인 통제사회는 많은 작가들이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소재가 됐다.

조지 오웰(1903~1950)이 1949년 발표한 《1984》는 전체주의라는 거대한 지배 체제 아래에서 인간성이 어떻게 말살되고 파멸해 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웰의 마지막 작품으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예브게니 자미아틴의 《우리들》과 더불어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꼽힌다.

[다시 읽는 명저] 과거를 조작하는 권력은 미래가 없다
오웰은 사회주의자였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통일노동자당 민병대에 입대해 파시즘과 맞서 싸웠다. 그러나 그곳에서 체감한 것은 스탈린 공산주의와 전체주의의 위험성이었다. 오웰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스탈린 체제를 예리하게 풍자한 《동물농장》을 펴내 일약 명성을 얻었다. 당시만 해도 영국에서는 2차대전 당시 동맹국이었던 소련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하는 분위기여서 출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1949년은 냉전의 광기가 전 세계를 덮치던 시기였고, 《1984》는 소련의 전체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읽혔다.

자유 억압한 스탈린 전체주의 비판

오웰이 《1984》에서 그린 미래 세계는 육체적 자유는 물론이고 인간의 사고나 감정까지 당(黨)이 지배하는 암울한 세상으로 묘사된다. 소설의 무대인 오세아니아는 내부당원, 외부당원, 무산계급(프롤)의 3개 계층으로 나뉜 전체주의 국가다. 당은 영원히 늙지도 않고, 정말로 존재하는 것인지도 헷갈리는 ‘빅 브러더’를 내세워 지배체제를 공고히 한다. 모든 건물에는 빅 브러더의 얼굴이 새겨진 포스터가 나붙고 동전과 우표, 담뱃갑에까지 빅 브러더의 얼굴이 등장한다. 현대사회의 텔레비전이나 폐쇄회로TV(CCTV)를 연상케 하는 텔레스크린을 도시 곳곳에 설치해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생각과 사상을 세뇌시킨다. 체제에 반항하는 사람은 비밀경찰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증발’된다. 언어와 역사는 철저히 통제되고 성 본능조차 오직 당에 충성할 자녀를 생산하는 수단으로 억압된다.

오웰은 개인이 빅 브러더의 철저한 감시 아래 살아가는 국가의 도구라는 사실을 통해 전체주의 체제를 비판한다. 《1984》에서 당은 지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이용한다. 오세아니아는 다른 강대국인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와 끊임없이 전쟁을 이어간다. 주민들을 가난하고 배고프게 만들어야 반란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웰은 “현대전의 1차적인 목적은 전반적인 삶의 수준을 높이지 않으면서 공산품을 소진하는 데 있다”고 썼다. 당이 내건 3대 슬로건은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역설(逆說)로 이뤄져 있다. 지배층의 시선에서 보면 지속적인 전쟁이 자신들의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인 것이다.

오웰은 전체주의 정권이 어떻게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상징을 조작하고 사상을 통제하는지 보여준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외부당원으로 진리부 기록국에서 일한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임무는 과거 기록을 조작하는 것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강령에 따라 신문, 잡지, 책 등을 현시점에 맞게 조작하고 재생산한다.

빅브러더가 감시하는 사회 '경고'

당의 지배를 유지하는 또 하나의 수단은 ‘신어(newspeak)’로 대표되는 언어정책이다. 언어에는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각, 정체성이 배어 있다. 당은 과거부터 써온 정상적인 언어를 ‘구어(舊語)’라고 해서 폐기하고, 이를 대체하는 ‘신어(新語)’를 보급한다. 글의 체계를 단순화시키고 어휘를 줄여 사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좋다(good)’의 반대말인 ‘나쁘다(bad)’를 없애는 대신 ‘안 좋다(un-good)’를 쓰도록 한다. ‘탁월하다’ ‘근사하다’는 단어는 없애버린다. 사고의 폭을 좁히고 단순화시켜 체제에 저항한다는 생각조차 못하게 하는 사상통제 수단이라고 오웰은 지적한다.

당에 반발심을 갖고 있던 주인공 스미스는 줄리아와 금지된 사랑을 하고, 당의 전복을 꿈꾸지만 비극으로 끝난다. 호감을 갖고 있던 내부당원 오브라이언을 만나 반체제 지하조직인 형제단에 가입하지만 사상경찰이 쳐놓은 함정이었다. 결국 스미스는 거듭된 고문과 세뇌 끝에 빅 브러더에 복종하고 처형된다.

오웰은 1940년대에 전자기술을 통해 개인의 삶과 사고를 통제하는 빅 브러더의 출현을 경고했다. 미래에 대한 통찰력은 그의 천재성을 드러내 준다. 과거를 조작하고 사상을 통제하는 행태가 소련과 오세아니아만의 일은 아니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사상 통제와 주민 감시가 이뤄지고 있고, 정권 유지를 위해 전쟁을 이용하고 있다. 정보기술(IT) 발전과 함께 사생활을 감시하는 ‘빅 브러더 사회’ 출현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오웰이 《1984》를 통해 던지는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양준영 논설위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