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의 한반도는 지금]'푸틴 보험' 들러간 김정은의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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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4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지난 2월, 그를 태운 특급열차가 중국 대륙을 관통해 하노이까지 남순(南巡)을 감행했다면 이번엔 두만강을 건너 시베리아횡단철로를 따라 러시아 극동의 항구도시를 찾은 것이다. 북·러 접경역(驛)인 하산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총 327㎞다.
김정은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 지는 불분명하다. 올해 말까지인 북한 송출 노동자들의 본국 송환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란 말들이 나오고 있으나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 북한 노동자 송출 금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사항이다. 러시아도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이 같은 제재에 서명했다. 러시아 역시 크림반도의 일로 유엔 제재를 받고 있다. 북한의 곤궁과 김정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푸틴 대통령이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거스를 이유는 없다.
김정은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행을 택한 데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가장 유력한 것은 사회주의 동맹의 복원이다. 김정일 사망 후 2012년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김정은은 집권 기반을 마련하는데 분주했다. 장성택 등 친중파를 제거하면서 중국과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뒀다. 러시아와의 관계 역시 예전같지 않았다. 평양 내 친러파는 김정일 체제 때 일찌감치 제거됐다.
핵무력을 완성하려는 북한 김씨 일가의 집요한 노력은 중국과 러시아에도 골칫거리였다. 이런 이유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2016년, 2017년에 유엔 안보리가 역대 최강의 대북 제재를 시행하려할 때 주저없이 이에 동참했다.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특별대표나 해리 헤리스 주한미대사가 “유엔 대북 제재는 러시아가 서명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핵무력을 완성한 북한은 작년부터 중국과의 화해를 시작했다. 그 결과 김정은과 시 주석은 무려 세 번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푸틴 대통령과는 이번이 첫 정상회담이지만, 한 번 관계를 튼 이상 좀 더 자주 만날 가능성이 높다. 당장 중·러가 북한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러와 친교를 틀 수 있다는 건 김정은에게 꽤 큰 자산이다. 일종의 ‘보험’이라는 얘기다.
블라디보스토크 북·러 정상회담은 김정은이 미국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비건 대표는 불과 며칠 전에 모스크바를 다녀갔다. 김정은을 만날 푸틴 대통령에게 북핵 제거에 관한 백악관의 의중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으로선 우리 정부로부터 4·11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듣기보다는 푸틴 대통령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전달받는 게 훨씬 편할 수 밖에 없다. 미국과 한편이라고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 김정은에겐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행위다. 적어도 외형상 김정은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배수의 진을 친 상태다.
김정은이 올 초 신년사에서 얘기한 다자회담이란 새로운 틀을 모색할 지도 관심사다. 일본 언론들은 푸틴 대통령이 과거 6자회담과 같은 다자회담을 제안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개입을 원하는 일본 정부의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 전망이다. 실제 많은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 역시 북핵 제거, 더 나아가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개입하고 싶어한다고 보고 있다. 크림반도 문제로 미국 및 국제사회와 척을 지고 있는 푸틴 대통령에게 북한은 활용하기 좋은 지렛대다.
김정은은 아마도 푸틴 대통령의 제안을 부정도 긍정도 않는 선에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2002년 중국이 제안한 6자회담을 북한이 수용한 것은 미국과의 양자 핵담판을 원했기 때문이다. 6자회담 자리에라도 미국이 나와야 어떻해든 담판을 짓고, 뭔가를 얻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부시 행정부는 철저하게 북한과의 양자회담을 거부했다. 과거의 선례를 감안하면,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양자회담 대신에 굳이 중·러·일을 끌어들여 6자회담을 하려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다만, 다자회담을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협상전략으로 활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사공이 많아지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다. 혼란의 와중이라야 더 얻을 게 많다고 판단한다면 북한이 의외의 선택을 내릴 수도 있다. 25일 푸틴-김정은의 정상회담은 나름 흥미진진한 정치 이벤트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김정은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 지는 불분명하다. 올해 말까지인 북한 송출 노동자들의 본국 송환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란 말들이 나오고 있으나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 북한 노동자 송출 금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사항이다. 러시아도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이 같은 제재에 서명했다. 러시아 역시 크림반도의 일로 유엔 제재를 받고 있다. 북한의 곤궁과 김정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푸틴 대통령이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거스를 이유는 없다.
김정은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행을 택한 데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가장 유력한 것은 사회주의 동맹의 복원이다. 김정일 사망 후 2012년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김정은은 집권 기반을 마련하는데 분주했다. 장성택 등 친중파를 제거하면서 중국과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뒀다. 러시아와의 관계 역시 예전같지 않았다. 평양 내 친러파는 김정일 체제 때 일찌감치 제거됐다.
핵무력을 완성하려는 북한 김씨 일가의 집요한 노력은 중국과 러시아에도 골칫거리였다. 이런 이유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2016년, 2017년에 유엔 안보리가 역대 최강의 대북 제재를 시행하려할 때 주저없이 이에 동참했다.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특별대표나 해리 헤리스 주한미대사가 “유엔 대북 제재는 러시아가 서명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핵무력을 완성한 북한은 작년부터 중국과의 화해를 시작했다. 그 결과 김정은과 시 주석은 무려 세 번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푸틴 대통령과는 이번이 첫 정상회담이지만, 한 번 관계를 튼 이상 좀 더 자주 만날 가능성이 높다. 당장 중·러가 북한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러와 친교를 틀 수 있다는 건 김정은에게 꽤 큰 자산이다. 일종의 ‘보험’이라는 얘기다.
블라디보스토크 북·러 정상회담은 김정은이 미국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비건 대표는 불과 며칠 전에 모스크바를 다녀갔다. 김정은을 만날 푸틴 대통령에게 북핵 제거에 관한 백악관의 의중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으로선 우리 정부로부터 4·11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듣기보다는 푸틴 대통령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전달받는 게 훨씬 편할 수 밖에 없다. 미국과 한편이라고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 김정은에겐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행위다. 적어도 외형상 김정은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배수의 진을 친 상태다.
김정은이 올 초 신년사에서 얘기한 다자회담이란 새로운 틀을 모색할 지도 관심사다. 일본 언론들은 푸틴 대통령이 과거 6자회담과 같은 다자회담을 제안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개입을 원하는 일본 정부의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 전망이다. 실제 많은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 역시 북핵 제거, 더 나아가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개입하고 싶어한다고 보고 있다. 크림반도 문제로 미국 및 국제사회와 척을 지고 있는 푸틴 대통령에게 북한은 활용하기 좋은 지렛대다.
김정은은 아마도 푸틴 대통령의 제안을 부정도 긍정도 않는 선에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2002년 중국이 제안한 6자회담을 북한이 수용한 것은 미국과의 양자 핵담판을 원했기 때문이다. 6자회담 자리에라도 미국이 나와야 어떻해든 담판을 짓고, 뭔가를 얻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부시 행정부는 철저하게 북한과의 양자회담을 거부했다. 과거의 선례를 감안하면,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양자회담 대신에 굳이 중·러·일을 끌어들여 6자회담을 하려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다만, 다자회담을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협상전략으로 활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사공이 많아지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다. 혼란의 와중이라야 더 얻을 게 많다고 판단한다면 북한이 의외의 선택을 내릴 수도 있다. 25일 푸틴-김정은의 정상회담은 나름 흥미진진한 정치 이벤트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