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주총' 바뀔까…정부 내실화 방안에 기대·불만 교차
주주총회는 주식회사의 최고 의사 결정기구다.

그러나 주주들이 30분 사이에 몇 번 박수 치고 만장일치로 회의를 끝내는 게 대부분 국내 기업 주총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정부가 이런 뻔한 주총을 바꿔보겠다고 나섰다.

금융위가 24일 발표한 '상장회사 등의 주총 내실화 방안'은 국내 기업의 형식적인 주총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상장사는 주주들의 주총 참여를 원하지 않는다는 듯이 수백개 기업이 일시에 주총을 열고 주주들은 시세차익에만 관심을 두고 자신이 보유한 의결권 행사는 외면해오면서 후진적인 문화와 관행이 악순환의 고리를 타고 켜켜이 쌓여 고질병처럼 심해진 문제다.

특히 섀도보팅이 폐지된 이후로는 기업들의 주총 안건이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부결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섀도보팅은 주주 의결권을 한국예탁결제원이 대신 행사하던 제도였으나 2017년 말 폐지됐다.

금융위에 따르면 섀도보팅 폐지 이후 정기 주총에서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안건이 부결된 상장기업 숫자는 작년 76개사에서 올해 183개사로 2배 이상 늘었다.

이런 문제의 근원에는 제도적인 허점도 있었다.

예컨대 의결권 행사 기준일에는 주식을 갖고 있었지만, 주총 때에는 이미 매각한 상태여서 주총에 참여할 이유가 없어진 공투표 문제 등이 이런 사례다.

즉 현재는 주총 개최 90일 전에 해당 주식을 보유한 주주가 주총 참여 대상이 되는데, 코스닥 상장사 주주의 평균 주식보유 기간은 약 2개월에 불과하다.

주총이 특정일에 몰리는 '슈퍼주총데이' 관행도 주주들의 주총 참여를 막는 걸림돌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주총이 가장 많이 열리는 날짜 3일에 대한 주총 집중도는 2017년 70.6%에서 작년 60.7%, 올해 57.8%로 소폭 완화됐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에 금융위는 의결권 행사 기준일을 '주총일 전 90일 이내'에서 '주총일 전 60일 이내'로 변경하고 특정일에 주총을 개최할 수 있는 기업 수를 제한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주주들이 안건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도록 주총소집 통지 시한도 '주총 전 2주'에서 '주총 전 4주'로 변경하기로 했다.

금융위의 이번 주총 내실화 방안은 선진국 제도나 해외 주요 성공 사례도 참고한 것이다.

실제로 주총소집 통지 기한은 미국이 10∼60일(인터넷 공고시 40일), 독일 30일, 호주 4주, 영국 3주 등에 이른다
'슈퍼주총데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제시된 주총 개최 기업 수 제한은 대만의 사례를 참고로 했다.

대만의 경우 2015년부터 일자별로 최대 100개 기업만 주총을 열도록 사전에 인터넷으로 신청받는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금융위는 상장사에 주주의 이메일 주소를 제공하고 주주 전자투표의 대체 인증수단을 확대하는 등의 방안도 이번에 제시했다.

금융위 박정훈 자본시장정책관은 "주주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왔는데 제도적인 한계가 있었다"며 "이번 방안은 그런 제도적 한계에서 벗어나 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번 개선안이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지켜볼 문제다.

그러나 아직은 기대와 함께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이번 방안에 대해 "그간 전문가들이 제안하던 부분들이 많이 반영됐다"며 "이번 발표 내용대로 시행된다면 시장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그는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 내역을 주총 전에 사전 공시하도록 한다면 일반 개인 주주들의 판단에 좋은 참고가 될 텐데 이 부분이 빠진 것은 아쉽다"고 덧붙였다.

특히 섀도보팅제 폐지 이후 의결정족수 개정을 주장해온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측은 "근본적인 대책이 빠졌다"며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이 단체 관계자는 "의결권 행사 기준일을 주총 전 60일로 당길 경우 현행 배당 관련 제도와 배치되는 부분도 생길 수 있다"며 "여러 제도를 면밀하게 살펴보고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