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소유한 한국가구박물관도 경매
저당잡힌 성락원
25일 대법원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성락원 내 건물과 토지 지분 일부가 경매되고 있다. 당초 이달 1일 1차 경매가 있을 예정이었지만 기일이 변경됐다. 아직 새 경매일자는 정해지지 않았다.
경매 대상은 성락원 내 한옥(지하 1층~지상 2층, 492㎡)과 한옥이 자리 잡은 토지(1101㎡)의 일부 지분(144㎡)이다. 감정가격은 건물 1억9355만원, 토지 4억4568만원 등이다. 2015년 일부 토지 지분에 2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한 L씨가 경매에 부쳤다.
후손들이 돈을 갚는다고 해도 경매는 계속 진행된다. 토지 지분 일부를 가진 J씨도 성락원을 경매에 넣었기 때문이다. J씨는 2015년 경매로 이 지분을 취득했다. 그는 이어 2018년 7월 일부 후손으로부터 일부 지분을 추가 매입했다. J씨는 공유물 분할을 이유로 성락원을 경매에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를 경매로 매각한 뒤 돈을 지분대로 나눠 갖자는 취지다. 한옥이 깔고 앉은 땅은 7명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J씨를 제외한 6명이 심상응의 후손이다.
복원사업 중에 경매
심상응의 별장이었던 성락원은 고종의 아들 의친왕 이강이 넘겨받아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다. 전남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 부용동과 함께 한국 3대 전통정원으로 꼽힌다. 서울의 대표적 부촌인 성북동의 북한산 자락에 자리잡았다. 수령 200~300년 된 나무들, 소(沼), 연못, 폭포, 계곡 등이 고풍스러운 한옥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심상응의 5대손 고(故) 심상준 제남기업 회장은 1950년 4월 성락원을 매입했다. 심 회장은 한국 원양어업의 개척자로 불린다. 심 회장의 며느리가 관장으로 있는 한국가구박물관이 성락원을 관리해왔다. 1992년 사적 제378호로, 2008년 명승 제35호로 지정됐다. 현재 복원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복원사업이 벌어지는 와중에 경매가 이어지고 있다. 후손들이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아서다. 한국가구박물관도 경매에 나왔다. 감정가격 486억원에 다음달 13일 1차 경매에 들어간다.
한국가구박물관은 전통가옥과 목가구, 유기, 옹기류 등을 전시하고 있다. 서울 시내와 남산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있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때는 정상 부인들이 찾았다. 2013년엔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2014년에는 시진핑 주석 내외가 방문했다. 올초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칼둔 칼리파 알무바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의 회동 장소로 쓰였다. 법무법인 효현의 김재권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등기부등본을 보면 후손들이 성락원과 한국가구박물관을 담보로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쓴 것으로 나타난다”며 “대규모 문화재를 개인이 관리하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소유자 계속 늘어
경매가 이어지면서 성락원의 주인도 늘고 있다. 성락원은 여러 필지의 땅과 건물로 이뤄져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심상응의 후손들이 땅과 건물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경매로 나온 땅을 계속 새로운 이들이 낙찰받고 있다. 한옥이 깔고 앉은 땅 일부 지분을 낙찰받은 뒤 경매에 부친 J씨 외에 작년 또 다른 J씨가 성락원 내 다른 땅을 낙찰받았다. 경매가 진행될수록 주인이 늘어나는 구조다.
소유자가 늘어나면 보존은 어려워진다. 이해관계가 상충할 경우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다. 일부가 투자 목적으로 낙찰받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대표는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소유한 토지에 건물이 들어서 있어 법정지상권이 성립되지 않는다”며 “일부 지분권자가 법정지상권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건물 철거를 요구하면 법적으론 철거를 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심상응의 후손들은 서울에 남은 한국 전통 정원의 가치를 알린다는 이유로 복원 사업이 끝나기에 앞서 6월 11일까지 성락원을 시민에게 임시 개방하기로 했다. 한국가구박물관 관계자는 “한국 전통정원이 있던 모습대로 복원되길 바란다는 뜻에서 개방했다”며 “많은 이들이 전통정원의 가치를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정철/전형진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