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이면 일부 농수산물 가격이 급등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2013년에는 갈치 고등어, 2015년에는 배추, 2017년에는 계란 삼겹살이 그랬다. 작년에는 쌀 감자 채소 등 농산물 가격이 한꺼번에 뛰기도 했다. 작황 기후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다. 공산품 가격이 안 올라도 “장보기가 겁난다”는 말이 나왔다. 식탁물가 급등이라고 했다.
올해는 다르다. 농산물 가운데 작년부터 강세를 보였던 쌀을 제외하고는 크게 오른 품목이 거의 없다. 그래도 체감물가는 그다지 낮게 느껴지지 않는다고들 한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0%대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가공식품 가격이 일제히 올랐기 때문이다. 농산물 가격 안정, 공산물 가격 상승이라는 근래에 보기 드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0.5%(전년 동기 대비)에 그쳤다. 분기 기준으로 보면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65년 이후 가장 낮았다. 지난해 하반기 1.6%였던 물가상승률은 올해 들어 1월 0.8%, 2월 0.5%, 3월 0.4%로 연이어 하락했다. 월간 기준으로 보면 2016년 7월 0.4% 상승을 기록한 이후 2년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채소류 가격 하락이 소비자 물가를 낮은 수준으로 잡아줬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올해 1분기 주요 농산물 소매 가격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일제히 내렸다고 밝혔다. 감자는 16.4% 하락했다. 계란값은 5.6% 떨어졌다. 양파는 23.9%, 배추는 36.8% 급락했다. 지난겨울 따뜻한 날씨의 영향으로 생산량이 늘면서 가격이 내렸다. 갈치 고등어 등 밥상에 자주 오르는 수산물 소매가격도 일제히 내렸다.

반면 가공식품 가격은 줄줄이 올랐다. 식품업체들이 앞다퉈 가격을 인상했다. 롯데제과 월드콘은 작년보다 20%, 광동제약 비타500은 8.3% 뛰었다. 편의점 베스트셀러인 빙그레 바나나맛우유, 수요가 계속 늘고 있는 CJ제일제당의 햇반 등도 가격이 올랐다. 술값도 오르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5월 1일부터 참이슬 출고가를 6.45% 올린다. 맥주 시장 1위인 오비맥주는 이달 초 ‘카스’ 등 주요 제품 출고가를 평균 5.3% 올렸다. 음식점 중 소주와 맥주 가격의 앞자리가 5, 6자로 바뀐 곳도 나오기 시작했다. 외식업체들도 최저임금 인상 등을 이유로 가격을 올리고 있다. 작년에는 치킨 프랜차이즈가, 올해는 커피전문점들이 가격을 올렸다. 농산물 가격은 떨어지고, 통계청은 0%대 상승률을 얘기해도 생활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