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개편안 등을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대상 안건)으로 추진하기 위한 여야 4당(자유한국당 제외)의 ‘선거법 공조’ 체제가 깨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패스트트랙 지정의 캐스팅보트를 쥔 바른미래당 내분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6일 같은 당 의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누구보다 사법 개혁 의지를 갖고 일한 두 분(권은희, 오신환 의원) 마음에 상처를 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잠시 성찰과 숙고의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전날 두 의원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위원직에서 강제 사임시킨 데 대한 공개 사과다. 두 의원은 선거제 개편안 등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데 부정적인 견해를 보여 왔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오 의원 대신 특위 위원으로 임명된 채이배 의원과 함께 국회 의원회관을 돌며 권은희, 신용현 의원 등 당 소속 일부 의원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특위 위원 불법 교체’ 논란에도 전날까지 패스트트랙 처리를 강하게 밀어붙이던 김 원내대표가 이런 행보를 보이자 당 안팎에선 “당내 거센 반발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패스트트랙 지정을 포기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바른미래당의 원외 지역위원장 전체 81명 중 49명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위선과 독재로 당의 분열에 앞장서고 있는 손학규 대표, 김 원내대표를 보면 분노와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다”며 지도부의 총사퇴를 요구했다. 이들은 또 당 운영과 관련, “안철수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의 공동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의원도 이날 국회에서 “안 전 대표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중지를 모아 당이 거듭 태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고, 저도 그런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유승민)계는 이날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당 지도부 탄핵 절차에 들어갔다. 김 원내대표 측근인 임재훈 의원은 “아직까지 김 원내대표가 사퇴할 뜻은 없다”고 했다.

선거법 공조에 참여한 다른 정당에서도 패스트트랙 추진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금은 (패스트트랙 추진이) 어려울 것 같다”며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바른미래당 의원총회 결과에 따라 패스트트랙 진행이 올스톱될 수 있다”고 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