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락원에 있는 송석정. 한경DB
200년 간 베일에 싸여 있다 지난 23일부터 개방된 ‘한국 3대 정원’ 성락원(城樂園)이 예약 하루 만에 개방 기한인 6월11일까지 모두 마감됐다. 성락원을 관리하는 한국가구박물관의 홈페이지와 전화는 예약자들이 몰려 마비될 정도였다. 이에 대해 한국가구박물관 측은 양해를 구하며 가을에 다시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가구박물관이 이 정원을 관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락원의 역사와 관계가 깊다. 성락원은 조선시대 서울 도성 안에 위치했던 몇 안 되는 별서정원(別墅庭園·별장에 딸린 정원)으로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한국 전통 정원이다. 성락원은 1790년대 황지사라는 인물이 처음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19세기 들어 철종(재위 1849∼1863)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정원으로 사용됐고, 일제강점기에는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이 35년간 별저로 이용했다. 이후 한국 원양업의 선구자로 꼽히는 고(故) 심상준 제남기업 회장이 1950년 성락원을 사들였다.

심상준 회장은 심상응 판서의 5대손이다. 또 한국가구박물관의 관장을 맡고 있는 정미숙씨는 심상준 회장의 아들 심철씨의 부인이다. 아버지가 되찾은 조상의 정원을 후손들이 관리하게 되면서 한국가구박물관이 성락원을 맡게됐다.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한 정 관장은 정일형 전 외교부장관과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 여사의 딸로서 정대철 민주평화당 고문의 동생이다.
1961년 대선조선에서 철강선 10척을 건조해 진수식에 나선 심상준 회장. 심완씨제공
함흥 출신인 심 회장은 고향에서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1941년 메이지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1943년 조선생필품 회사를 설립, 중국과의 무역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 당시 무역 사업을 하며 중국 상하이에서 알게 된 이가 미국인 공군장교 윔스였다. 윔스는 해방 이후 1946년 미군정 장관의 특별보좌관으로 한국에 와 있었는데, 심 대표는 윔스의 추천으로 미 군정청 자문역으로 일했다. 그리고 부산에서 대원기업을 경영하며 미국 원조물자의 보관 출고 등을 대행해 큰 돈을 벌었다.

심 회장은 부를 축적하자 1950년 4월 성락원 일대의 정원과 땅을 사들였다. 집안의 뿌리를 되찾은 심 회장은 ‘도성 밖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정원’이라는 뜻을 담아 ‘성락원’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두 달 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수물자의 하역, 수송 등으로 사업을 넓혔지만, 심 회장은 사업이 계속 될 수 있을지 항상 의문을 가졌다.

심 회장은 피난길에 오른 뒤 부산에서 답을 찾았다. 1951년 제동산업을 설립해 수산업으로 방향을 틀었던 것. 즉 제동산업은 제남기업의 모태다.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온 심회장은 성락원에 경복궁 경회루를 본따 송석정을 지었다.

송석정을 짓고난 뒤 심 회장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80달러에 불과했던 1957년, 심 회장은 한국 최초의 원양어선인 ‘지남호’를 인도양에 띄워 참치 어획에 성공한다. 당시 지남호의 항해사가 훗날 한국 최초의 참치 통조림을 생산한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이다. 김 회장은 “심상준 회장은 원양어업의 대부로서 한국 원양어업을 개척하신 분”이라며 “스타기질도 있고 상식을 뛰어넘는 ‘돈키호테’ 같은 기업가”라고 평가했다.
 200년만에 일반인에게 공개된 성락원 전경. 한경DB
하지만 심 회장도 위기를 겪게 된다. 심 회장은 1973년 파산으로 경쟁입찰에 부쳐진 부실기업 한국수산개발공사(수공)를 떠안으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한국수산개발공사는 오일쇼크와 200해리 경제수역 등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다 1982년 문을 닫았고 심 회장은 이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된다. 심 회장은 일선에서 물러난 뒤 성락원에서 머물렀다. 1991년 미국 오마하 네브래스카 주립대학병원에서 74세로 작고하기 한해 전까지 심 회장은 정원을 가꾸는데 정성을 쏟았다.

이후 심 회장의 며느리인 정 관장은 1993년 한국가구박물관을 개관하며 성락원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한국가구박물관은 한국을 방문하는 저명 인사들이 꼭 찾아가 보는 명소로 거듭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G20 정상들까지 식사를 즐기고 차를 마시는 공간이 됐다.

한 기업가의 흥망성쇠를 함께 했던 성락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후손들의 가세가 기울면서 성락원을 담보로 돈을 빌렸고 이 때문에 일부 필지의 경매가 줄을 잇고 있는 것. 성락원의 필지는 18개에 달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소유권이 복잡해지면 관리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원활한 관리를 위해 구입하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심 회장의 후손들이 관리하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