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박사 씨 마른 비메모리 분야…R&D 예산, 인재육성에 쏟아부어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불붙은 400조 비메모리 시장 쟁탈전
끝·(4) R&D 인력 양성에 성패 달렸다
인터뷰 -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
상시 인력 부족 시스템 반도체
최고급 인재 육성 사활 걸어야
이젠'新격차'전략 필요
끝·(4) R&D 인력 양성에 성패 달렸다
인터뷰 -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
상시 인력 부족 시스템 반도체
최고급 인재 육성 사활 걸어야
이젠'新격차'전략 필요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소장(전기·정보공학부 교수·사진)은 반도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그는 ‘벌크 핀펫’(3차원 반도체 소자 기술) 특허로 글로벌 기업 인텔에서 기술료도 받았다. 2015년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 회원 40만 명 중 0.1%만 가능하다는 석학회원(fellow) 자격을 얻었다. 작년엔 스스로 ‘인생을 시작한 곳’이라고 말하는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소장에 부임하는 ‘영광’을 맛보기도 했다.
모든 걸 다 이룬 것 같은 이 소장에게도 여전히 아쉬운 게 있다. 후학인 반도체 전문 인력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26일 연구소에서 만난 이 소장은 “최고급 인재가 부족하면 시스템 반도체 산업도 발전할 수 없다”며 “정부가 치밀하고 장기적인 플랜을 세워 반도체 인력을 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를 하고 있는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연구개발(R&D)’ 예산을 인력 양성에 ‘올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석·박사 역량 키워줘야”
이 소장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다. 국내 반도체 인력 시장은 상시적인 ‘공급 부족’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23개 주요 대학은 2017년 141명의 반도체 박사를 배출했다. 2014년 190명보다 25.8% 줄었다. 같은 기간 서울대 KAIST 포스텍 등 3개 대학을 졸업한 반도체 분야 박사 수도 148명에서 106명으로 쪼그라들었다.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업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국내 팹리스에 필요한 인력은 연 3000명 수준인데 공급은 1000명가량에 그치고 있다”며 “팹리스 창업이 줄면서 업체가 개발한 제품 수도 감소세”라고 설명했다.
원인이 무엇일까. 이 소장은 그 이유 중 하나로 ‘정부의 시스템 반도체 관련 R&D 과제 감소’를 꼽았다. 그는 “정부 R&D 과제에서 시스템 반도체를 포함한 반도체 분야가 몇 년째 사라졌고 연구비도 많이 줄었다”며 “돈이 부족해지자 상당수 시스템 반도체 교수가 다른 전공으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시스템 반도체 교수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같은 분야 석·박사도 씨가 말랐다. 국내 대학들은 한술 더 떠 시스템 반도체 교수의 빈자리를 돈이 되는 나노, 바이오 분야 연구자로 채우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수년째 지속되면서 지금은 주요 대학에 ‘반도체 계약학과’를 설치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해졌다는 게 이 소장의 진단이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정부 지원 강화다. 정부가 준비 중인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R&D’ 예산의 대부분을 인력 육성에 쏟아부어야 ‘살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소장은 “연 1500억원 수준의 정부 투자금으론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며 “인력 양성에 올인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시스템 반도체에서 ‘신격차’ 추진 필요
인력 양성과 함께 추진해야 할 반도체 산업 발전 전략으로 ‘신격차’를 제시했다. 잘하고 있는 분야에 집중 투자해 2위와의 격차를 더 크게 벌리는 ‘초격차’와는 다른 개념이다. 이 소장이 말하는 ‘신격차’는 메모리 반도체 등 강점이 있는 분야에 첨단 ‘신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뉴로모픽’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뉴로모픽은 사람의 뇌 신경을 모방한 차세대 반도체다. 딥러닝 등 AI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 기존 반도체보다 성능이 뛰어나면서 전력 소모량이 1억분의 1에 불과해 미래 반도체 시장을 좌우할 핵심 기술로 꼽힌다. 이 소장은 “한국이 강점을 지닌 메모리 반도체에 회로 시스템을 접목하면 AI 시스템 반도체 역할을 하는 뉴로모픽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 우대해 중국 이전 막아야
인텔, 퀄컴 등과 같은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국내 업계가 배울 만한 점으론 ‘기술 우대’ 풍토를 들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기술의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는데 유독 한국에선 ‘기술 천대’가 심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경향 탓에 시스템 반도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중국 등 해외로 짐을 싸 옮겨간다는 게 이 소장의 판단이다. 그는 “국내 연구 인력이 중국으로 가는 건 중국이 기술 가치를 후하게 쳐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24일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육성 방안인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인텔, 퀄컴이 잘하고 있는 분야에서 정면승부를 펼친다면 ‘쉽지 않을 것’이란 조언도 내놨다.
이 소장은 “미국 등 선진국이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을 파고드는 게 삼성 전략의 핵심일 것”이라며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중소기업과 동반 성장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했다.
황정수/정의진 기자 hjs@hankyung.com
모든 걸 다 이룬 것 같은 이 소장에게도 여전히 아쉬운 게 있다. 후학인 반도체 전문 인력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26일 연구소에서 만난 이 소장은 “최고급 인재가 부족하면 시스템 반도체 산업도 발전할 수 없다”며 “정부가 치밀하고 장기적인 플랜을 세워 반도체 인력을 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를 하고 있는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연구개발(R&D)’ 예산을 인력 양성에 ‘올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석·박사 역량 키워줘야”
이 소장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다. 국내 반도체 인력 시장은 상시적인 ‘공급 부족’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23개 주요 대학은 2017년 141명의 반도체 박사를 배출했다. 2014년 190명보다 25.8% 줄었다. 같은 기간 서울대 KAIST 포스텍 등 3개 대학을 졸업한 반도체 분야 박사 수도 148명에서 106명으로 쪼그라들었다.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업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국내 팹리스에 필요한 인력은 연 3000명 수준인데 공급은 1000명가량에 그치고 있다”며 “팹리스 창업이 줄면서 업체가 개발한 제품 수도 감소세”라고 설명했다.
원인이 무엇일까. 이 소장은 그 이유 중 하나로 ‘정부의 시스템 반도체 관련 R&D 과제 감소’를 꼽았다. 그는 “정부 R&D 과제에서 시스템 반도체를 포함한 반도체 분야가 몇 년째 사라졌고 연구비도 많이 줄었다”며 “돈이 부족해지자 상당수 시스템 반도체 교수가 다른 전공으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시스템 반도체 교수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같은 분야 석·박사도 씨가 말랐다. 국내 대학들은 한술 더 떠 시스템 반도체 교수의 빈자리를 돈이 되는 나노, 바이오 분야 연구자로 채우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수년째 지속되면서 지금은 주요 대학에 ‘반도체 계약학과’를 설치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해졌다는 게 이 소장의 진단이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정부 지원 강화다. 정부가 준비 중인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R&D’ 예산의 대부분을 인력 육성에 쏟아부어야 ‘살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소장은 “연 1500억원 수준의 정부 투자금으론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며 “인력 양성에 올인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시스템 반도체에서 ‘신격차’ 추진 필요
인력 양성과 함께 추진해야 할 반도체 산업 발전 전략으로 ‘신격차’를 제시했다. 잘하고 있는 분야에 집중 투자해 2위와의 격차를 더 크게 벌리는 ‘초격차’와는 다른 개념이다. 이 소장이 말하는 ‘신격차’는 메모리 반도체 등 강점이 있는 분야에 첨단 ‘신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뉴로모픽’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뉴로모픽은 사람의 뇌 신경을 모방한 차세대 반도체다. 딥러닝 등 AI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 기존 반도체보다 성능이 뛰어나면서 전력 소모량이 1억분의 1에 불과해 미래 반도체 시장을 좌우할 핵심 기술로 꼽힌다. 이 소장은 “한국이 강점을 지닌 메모리 반도체에 회로 시스템을 접목하면 AI 시스템 반도체 역할을 하는 뉴로모픽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 우대해 중국 이전 막아야
인텔, 퀄컴 등과 같은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국내 업계가 배울 만한 점으론 ‘기술 우대’ 풍토를 들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기술의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는데 유독 한국에선 ‘기술 천대’가 심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경향 탓에 시스템 반도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중국 등 해외로 짐을 싸 옮겨간다는 게 이 소장의 판단이다. 그는 “국내 연구 인력이 중국으로 가는 건 중국이 기술 가치를 후하게 쳐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24일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육성 방안인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인텔, 퀄컴이 잘하고 있는 분야에서 정면승부를 펼친다면 ‘쉽지 않을 것’이란 조언도 내놨다.
이 소장은 “미국 등 선진국이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을 파고드는 게 삼성 전략의 핵심일 것”이라며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중소기업과 동반 성장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했다.
황정수/정의진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