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학회와 한국경영학회, 한국정치학회 소속 교수들이 26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융합 대토론회’를 열었다. 3개 학회가 공동 주제로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한국경제학회와 한국경영학회, 한국정치학회 소속 교수들이 26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융합 대토론회’를 열었다. 3개 학회가 공동 주제로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국내 경제·경영·정치학계가 26일 “문재인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 고용 부진과 소득 양극화 등의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한국경제학회와 한국경영학회, 한국정치학회는 이날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정부인가? 시장인가?’를 주제로 융합대토론회를 열고 출범 2주년(5월 10일)을 맞는 현 정부의 정책에 비판과 제언을 쏟아냈다. 참석자들은 정부의 과잉 시장 개입을 비판하며 “정부가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나, 규제를 풀면 시장이 무질서에 빠질 것이라는 인식부터 버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들 3개 학회가 공동 연구 주제를 놓고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토론자로 나선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와 사회에 대한 현 정부의 개입은 과거 개발연대 시절보다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시장을 직접 통제하는 것을 주요 정책수단으로 삼고 일자리도 민간 창출을 유도하는 대신 스스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연금을 활용해 민간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것도 이 같은 사례로 꼽았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은행 등 금융권에 대한 장악력을 키우고 공기업 통제 강도도 더 높였다”고 비판했다. 강명세 세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이 같은 정부의 경제정책이 취지와 다르게 오히려 불평등 악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시장 끌고 갈 수 있다고 착각…고용·분배 참사만 불렀다"

국내 대표적인 경제·경영·정치학회가 26일 이례적으로 한데 모여 ‘정부인가? 시장인가?’란 주제를 놓고 융합 토론회를 열었다. 정부의 시장 개입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는 학계 전반의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정부가 시장의 가격 결정이나 민간 기업의 경영상 결정에 깊이 개입하면서 경제, 사회적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또 정부의 개입이 글로벌 혁신 경쟁 속에서 과도한 규제를 낳고 있다는 위기감도 반영됐다.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정부가 시장을 원하는 방향대로 끌고갈 수 있다는 착각부터 버려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부 개입에 흔들리는 시장

토론자로 나선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개발연대 시대에는 정부가 경제와 사회에 깊게 개입했다”며 “이를 통해 고속성장을 주도했지만 대·중소기업 양극화, 소외계층 확대 등의 구조적 문제가 야기됐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도 방향만 다를 뿐 비슷한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고 봤다. 그는 “현 정부는 과거 정부가 야기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논리를 내세워 시장 개입 강도를 높이고 있다”며 “최근에는 오히려 과거 정부 때보다 시장 개입을 더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 개입이 고용(공공일자리 창출), 경영(국민연금의 경영 개입, 근로시간 단축), 가격 결정(최저임금 인상, 공시지가 현실화) 등 전방위로 확장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참석자들은 정부 개입이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봤다. 박 교수는 “최저임금 대상자의 60~70%가 10인 미만 기업에 다니는데 최저임금을 올리면 이들의 일자리가 없어지기 마련”이라며 “생산성 향상보다 빠른 속도로 임금이 올라가면 기업에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현석 KAIST 인문사회학부 교수는“정부는 저소득층 소득을 확대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인상했지만 한국의 임금협상은 대기업 노조에 의해 주도되고 있고 반대로 노동시장 외부자에 대한 연대는 매우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대기업, 중견기업 근로자 등의 임금 복지 수준을 높여줬지만 반대로 구직자의 노동시장 진입 가능성은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정부가 연공서열식 임금 구조를 유지한 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강행한 것도 구직자를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고 봤다.

강명세 세종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정부가 경제적 불평등 완화를 겨냥해 일련의 친노동 고용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성공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강 연구위원은 “정부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고용정책의 사회적 합의를 시도하고 있지만 민주노총 등이 불참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더 중요한 점은 민주노총이 전국 노동자의 이해를 대표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고 말했다.

“정부가 해결사라는 인식 버려야”

참석자들은 정부의 간섭 확대는 시장의 자율성을 꺾는 규제로 이어진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일부 진보학자의 목소리를 정책에 그대로 담다 보니 이른바 ‘갑’을 향한 증오와 공격을 정책에 담고 이는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정수 교수는 “정부가 규제를 푸는 순간 시장이 무질서에 빠질 것이라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며 “정부가 제도를 통해 시장을 선도할 수 있고 부가가치 창출에 앞장설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서도 탈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시장 간섭을 줄이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업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의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공정위 등 기관 수장 임면권이 있고 운영에도 참여하고 있다”며 “정부가 이들 기관을 통해 시장에 개입하며 자율성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어 “이들 기관 위원장의 임기와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법을 마련해야 한다”며 “실력있는 전문가를 위원장으로 영입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동시에 이해관계가 있는 여러 기관의 영향력을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경봉/김익환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