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천수만이 품은 '봄날의 쉼표' 스르르~대나무숲 사이 바람과 노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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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강제윤 시인의 새로 쓰는 '섬 택리지'
<34> 충남 홍성 죽도
강제윤 시인의 새로 쓰는 '섬 택리지'
<34> 충남 홍성 죽도
봄날, 섬은 한창 바지락 작업으로 활기가 넘친다. 죽도의 바지락은 초봄부터 여름 산란 직전까지가 제철이다. 여느 때보다 찰지고 달다. 개조개도 탱글탱글 제철이다. 요즈음은 개조개를 대합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본래 대합은 백합 중에서 큰 것을 이르던 말이다. 개조개는 내자패라고도 부른다. 아무튼 섬에서는 해산물이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그래서 봄 조개 가을 낙지란 말도 생겼다. 죽도의 봄은 그렇게 영글어간다.
에너지 자립 이룬 에코아일랜드로 유명
죽도항, 어선을 타고 나가 바지락 작업을 하다 돌아온 어부가 어선을 정박시켰다. 썰물 때라 어선은 부두에 바로 접안하지 못한다. 어부는 스티로폼 조각을 바다에 띄우고 그 위에 몸을 싣는다. 능란한 몸짓이지만 위태로워 보인다. 한 조각 부표에 의지해 살아가는 어부의 생애. 섬에서의 삶은 늘 아슬아슬하다. 삶은 자주 생사의 경계를 넘나든다. 어선 옆 작은 부표에 앉아 쉬는 갈매기의 표정은 여유롭다. 갈매기는 날개라도 있으니 섬사람들보다 더 나은 생애일까? 풍파가 덮쳐 와도 날지 못하는 슬픈 섬들. 애틋하고 또 애틋하다.
죽도는 홍성군의 하나뿐인 유인도다. 통영시의 연대도가 앞서 그랬듯이 죽도 또한 근래 태양광 발전소만으로 에너지 자립을 이룬 에코아일랜드로 유명해졌다. 죽도 주민들이 직접 출연한 에너지 기업 광고가 방송되기도 했다. 죽도는 천수만 안의 섬이다. 천수만은 충남 서해안 중부, 태안반도 남단에서 남쪽으로 쭉 뻗어 내륙 깊숙이 들어온 만이다. 태안, 홍성, 보령, 서산 지역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바다를 남북으로 길게 자리한 안면도가 막아주고 있어 더없이 잔잔한 내해다. 수심이 얕다고 해서 천수만(淺水灣)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한다. 천수만의 입구는 남쪽으로 열려 있는데. 만 입구의 너비는 2㎞, 만 길이는 40㎞다.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이라 해안선 길이가 무려 284.5㎞나 된다. 천수만의 북쪽 바다에는 간월도와 황도가 있고 아래쪽 바다에는 보령의 육도와 월도 등이, 만 바깥으로는 원산도와 효자도가 천수만을 호위하듯 서 있다. 천수만이 태풍에도 더없이 잔잔한 호수 같은 것은 그 때문이다.
도미 숭어 등 다양한 어류의 서식지 천수만
천수만은 조석간만의 차가 평균 6m나 되고 수심이 10m 내외밖에 되지 않아 대형 선박이 출입할 수 없다. 오늘은 사리 때인 9물이라 조석간만의 차가 무려 9m나 된다. 이런 날은 썰물이 되면 작은 어선들도 띄우지 못한다. 선박들이 물 빠진 갯벌에 고립돼 버리기 때문이다. 오늘도 오전 여객선은 뜨지도 못했다. 계류장이 없으니 여객선은 갯벌에 처박혀 꿈쩍도 할 수 없었다. 해상교통을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인 계류장은 그리 큰 예산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시설을 해주지 않고 있는 행정에 대해 주민들의 불만이 크다. 여객선을 타고 내리는 여객들도 위태롭다. 여객의 안전을 위해서도 속히 시설이 만들어져야 마땅하다. 홍성군 서부면에 속한 죽도는 남당항에서 3.7㎞ 해상에 있다. 여객선으로 불과 10분도 안 걸릴 정도로 뭍과 가까운 섬이지만 작년 초까지만 해도 섬으로의 입도가 쉽지 않았다. 죽도는 내내 정기 여객선이 없었다. 주민이나 여행자들 누구도 자기 배가 없으면 대절선을 불러야만 섬을 드나들 수 있었다. 하지만 대절선에 대한 해경의 단속이 너무 심해 주민도 외지인도 힘겨운 세월을 살았다. 가까운 오지낙도였던 셈이다. 작년 5월 여객선이 취항하면서 접근성이 개선되자 섬을 찾는 육지인이 부쩍 늘었다. 여객선은 하루 4회 왕복하는데 화요일에는 휴항이다. 탐방객이 많을 때는 배를 더 띄우기도 한다.
천수만은 본래 수초가 많고 영양염류가 풍부해 농어·도미·민어·숭어 등의 산란장이자 다양한 어류의 서식지였다. 천수만에서는 굴, 김 양식도 활발했고 천수만으로 인해 홍성 광천 새우젓과 광천김이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 하지만 1980년부터 농경지와 담수호를 만들기 위해 대규모 간척사업이 시작돼 천수만의 북부 7.7㎞가 방조제로 막혀버렸고 155.94㎢가 매립됐다. 이 여파로 천수만은 드넓은 갯벌이 사라지고 오염도 심해져 어류의 산란장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천수만은 이제 더 이상 황금어장이 아니다. 광천 새우젓과 광천김의 명성도 퇴색되고 말았다. 가까운 미래도 내다보지 못한 마구잡이 간척으로 황금 갯벌을 죽여 버린 후과다.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죽도
죽도는 면적 0.17㎢에 불과할 정도로 작아 천천히 섬을 둘러봐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섬에 대나무가 많아 죽도라 했다는 유래처럼 섬 곳곳에는 시누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높은 산이 없고 섬 전체가 낮은 구릉과 평지다 보니 섬 어디에서든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죽도는 과거 태안군 안산면에 속했다가 1914년 서산군 안면면에 그리고 1989년부터 홍성군 서부면에 편입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죽도는 혼자가 아니다. 죽도를 어미 섬으로 인근의 올망졸망한 작은 섬 11개가 함께 무리지어 군도를 이룬다. 그래서 죽도와 11개의 무인도를 합해 열두 대섬이라고 부른다. 무인도는 지만여, 글만여, 전족도, 몽족도, 띠섬, 작은마녀 등 제각기 다른 사연과 이름을 가지고 있다. 썰물 때면 이 무인도 중 4개가 죽도와 이어진다. 무인도를 걸어서 오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죽도 사람들은 대부분 어업에 기대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다. 섬이 작아 농사지을 땅이 없었으니 어업은 숙명이었다. 죽도는 아주 젊은 섬이다. 30~40대가 10명이나 된다. 인구의 25%다. 고향을 떠났던 청년들이 다시 귀어해 정착한 까닭이다. 주민등록상 인구는 70명이지만 죽도에는 23가구 40명이 실거주하는데 어선이 23척이다. 한 가구는 배가 2척이고 배를 운항할 기력이 없는 노인 한 가구만 배가 없다. 그러니 실상 섬 주민 모두가 배를 소유하고 어업을 하는 어부들인 셈이다. 어선이 죽도 사람들의 생명선이다. 거의 100%의 주민이 배를 소유하고 어업에 종사하는 일은 다른 섬들에서는 보기 어려운 아주 희귀한 사례다. 섬은 봄에는 주꾸미가, 가을에는 꽃게와 대하가 가계를 살찌운다.
죽도는 천수만 일원이 그렇듯이 겨울철 12월부터 2월까지는 새조개의 산지이기도 하다. 남당항에서는 해마다 새조개 축제가 열린다. 하지만 올해는 생산량이 많지 않아 가격이 비쌌다. 1㎏에 10만원 정도했으니 금조개였다. 새조개의 산란철은 4월께인데 산란 직전까지가 살이 오르는 때라 가장 맛있다. 여름에도 새조개가 나지만 이때는 질기고 맛이 없다. 바지락은 종패를 뿌려 어촌계에서 공동양식을 하는데 마파지, 앞장벌 등에서 나는 바지락이 최상품이다. 죽도의 바지락은 거의 사철 내내 채취되는데 한 집당 하루 40㎏까지만 가능하다.
최영 김좌진 한용운 등 걸출한 인물 배출
작은 섬이지만 죽도에는 섬 전체를 탐방할 수 있는 둘레길이 잘 조성돼 있다.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만든 길이다. 둘레길에는 바다를 관찰할 수 있는 조망대가 세 개나 있다. 첫 번째 조망대는 옹팡섬, 두 번째 조망대는 당개비, 당개비는 담깨비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당제를 모시던 당산이었다. 세 번째 조망대는 동쪽에 자리해 있는 동바지다. 동바지는 시누대 숲이다. 전망대들에는 최영 장군, 김좌진 장군, 한용운 스님 등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홍성 출신 역사 인물들이다. 만해는 결성면 성곡리, 백야는 갈산면 행산리다. 두 곳의 거리는 6.5㎞에 불과하니 바로 지척에서 두 분의 걸출한 항일 독립 영웅이 탄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최영 장군의 탄생지는 불분명하다. 철원, 서산, 개성, 홍성 등의 설이 있다. 조형물은 최영 장군 또한 홍성 출신이라 주장하고 싶은 까닭에 세워진 것이다. 둘레길에는 길을 표시하는 밧줄들이 쳐져 있는데 시선을 거스른다. 위험한 곳도 아닌데 굳이 밧줄을 칠 필요가 있나 싶다.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다. 동바지 입구에서 할머니 한 분이 굴을 까고 있다. 상뿌리에서 캐온 굴이다. 작년 12월 24일 예인선이 죽도 앞 바다를 지나가다 기름 유출 사고를 냈다. 다행히 만조 때라 피해가 적었다. 그래도 주민들이 모두 나가 기름 묻은 바위들을 닦아내는 데 3일이나 걸렸다. 하지만 지금도 기름 피해를 본 지역의 굴은 냄새가 나서 먹을 수 없다. 당개비 전망대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 해변에 외딴집 한 채가 서 있다. 이 집도 오늘 수확해온 바지락을 바구니에 담아 내놨다. 관광객들에게 팔기 위한 것이다. 집 처마에는 대나무 꼬치에 조개를 꽂아서 말리고 있다. 무슨 조개일까? 주인에게 물어보니 맛조개다. 저런 조개 꼬치는 구워서 술 안주하기 그만이다. 섬에서는 무 넣고 조리거나 국을 끓여 밥반찬을 한다. 섬 주민들은 수온 상승 영향으로 천수만의 조개들도 점점 줄어간다고 이구동성이다. 올해 새조개 작황이 안 좋은 것도 수온 상승 탓인 것 같다고 짐작한다. 지구 온난화 영향이 북극 빙하나 북극곰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 당장 우리 바다의 생태계 질서를 교란시키고 있다. 온난화 방지 대책은 미세먼지 대책만큼이나 정부가 주요 의제로 삼아야 마땅한 사안이다.
갯벌 원시어로인 독살 체험도 이채
섬 주민들은 여객선이 취항하면서부터는 주말이면 하루 500명씩이나 섬을 찾는 것이 반갑다. 섬에 활기가 돌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광객 대부분은 섬에 돈 한 푼 안 쓰고 떠난다. 그냥 쓰레기만 버리고 간다. 주민들은 그것이 걱정이다. 마을 안 갯벌에는 독살 체험장이 설치돼 있다. 독살은 해변에 돌담을 쌓아 들물 때 들어온 물고기를 썰물 때 잡는 원시어로 방법이다. 돌 그물인 것이다. 죽도에서도 과거에는 독살로 물고기를 잡던 시절이 있었다. 독살 근처에는 용난둠벙이 있다. 갯고랑이 꼭 용이 꿈틀거리는 모양이다. 안개가 많이 끼는 날 이무기가 용이 돼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죽도는 고려시대 삼별초의 난 당시 삼별초군이 화살을 만들기 위해 대나무를 베어다 썼다는 전설도 전한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강화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진도에 왕국을 세웠던 삼별초는 한때 남동쪽으로 남해도, 서해에서는 안면도까지 장악했으니 죽도 역시 삼별초 왕국의 영토였을 것이다.
개조개를 맛보기 위해 우연히 들른 포장마차, 주인 육태국, 이혜영 씨 부부는 어선을 가지고 조업하면서 민박도 겸한다. 조업을 하는 이유는 민박 오는 손님들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어서다. 혜영씨는 대기업을 다니다 남편을 만나 10여 년 전에 남편의 고향인 죽도로 귀향했다. 남편과 함께 죽도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혜영씨는 섬살이가 만족스러운데 특히 죽도의 가을을 좋아한다. 노을이 질 때면 그토록 포근할 수가 없다.
부부의 가을은 더없이 낭만적이다. 새우잡이를 나갔다 들어오는 저녁이면 돗자리 하나 챙겨서 해변으로 간다. 별이 쏟아지는 해변에서 부부는 돗자리에 앉아 별을 보며 맥주를 마신다. 그때의 행복감은 뭐라 표현할 수 없다. 섬살이가 고되기도 하지만 섬을 떠날 수 없는 이유다.
■강제윤 시인은
강제윤 시인은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섬 답사 공동체 인문학습원인 섬학교 교장이다.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통영은 맛있다》 《섬을 걷다》 《바다의 노스텔지어, 파시》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에너지 자립 이룬 에코아일랜드로 유명
죽도항, 어선을 타고 나가 바지락 작업을 하다 돌아온 어부가 어선을 정박시켰다. 썰물 때라 어선은 부두에 바로 접안하지 못한다. 어부는 스티로폼 조각을 바다에 띄우고 그 위에 몸을 싣는다. 능란한 몸짓이지만 위태로워 보인다. 한 조각 부표에 의지해 살아가는 어부의 생애. 섬에서의 삶은 늘 아슬아슬하다. 삶은 자주 생사의 경계를 넘나든다. 어선 옆 작은 부표에 앉아 쉬는 갈매기의 표정은 여유롭다. 갈매기는 날개라도 있으니 섬사람들보다 더 나은 생애일까? 풍파가 덮쳐 와도 날지 못하는 슬픈 섬들. 애틋하고 또 애틋하다.
죽도는 홍성군의 하나뿐인 유인도다. 통영시의 연대도가 앞서 그랬듯이 죽도 또한 근래 태양광 발전소만으로 에너지 자립을 이룬 에코아일랜드로 유명해졌다. 죽도 주민들이 직접 출연한 에너지 기업 광고가 방송되기도 했다. 죽도는 천수만 안의 섬이다. 천수만은 충남 서해안 중부, 태안반도 남단에서 남쪽으로 쭉 뻗어 내륙 깊숙이 들어온 만이다. 태안, 홍성, 보령, 서산 지역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바다를 남북으로 길게 자리한 안면도가 막아주고 있어 더없이 잔잔한 내해다. 수심이 얕다고 해서 천수만(淺水灣)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한다. 천수만의 입구는 남쪽으로 열려 있는데. 만 입구의 너비는 2㎞, 만 길이는 40㎞다.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이라 해안선 길이가 무려 284.5㎞나 된다. 천수만의 북쪽 바다에는 간월도와 황도가 있고 아래쪽 바다에는 보령의 육도와 월도 등이, 만 바깥으로는 원산도와 효자도가 천수만을 호위하듯 서 있다. 천수만이 태풍에도 더없이 잔잔한 호수 같은 것은 그 때문이다.
도미 숭어 등 다양한 어류의 서식지 천수만
천수만은 조석간만의 차가 평균 6m나 되고 수심이 10m 내외밖에 되지 않아 대형 선박이 출입할 수 없다. 오늘은 사리 때인 9물이라 조석간만의 차가 무려 9m나 된다. 이런 날은 썰물이 되면 작은 어선들도 띄우지 못한다. 선박들이 물 빠진 갯벌에 고립돼 버리기 때문이다. 오늘도 오전 여객선은 뜨지도 못했다. 계류장이 없으니 여객선은 갯벌에 처박혀 꿈쩍도 할 수 없었다. 해상교통을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인 계류장은 그리 큰 예산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시설을 해주지 않고 있는 행정에 대해 주민들의 불만이 크다. 여객선을 타고 내리는 여객들도 위태롭다. 여객의 안전을 위해서도 속히 시설이 만들어져야 마땅하다. 홍성군 서부면에 속한 죽도는 남당항에서 3.7㎞ 해상에 있다. 여객선으로 불과 10분도 안 걸릴 정도로 뭍과 가까운 섬이지만 작년 초까지만 해도 섬으로의 입도가 쉽지 않았다. 죽도는 내내 정기 여객선이 없었다. 주민이나 여행자들 누구도 자기 배가 없으면 대절선을 불러야만 섬을 드나들 수 있었다. 하지만 대절선에 대한 해경의 단속이 너무 심해 주민도 외지인도 힘겨운 세월을 살았다. 가까운 오지낙도였던 셈이다. 작년 5월 여객선이 취항하면서 접근성이 개선되자 섬을 찾는 육지인이 부쩍 늘었다. 여객선은 하루 4회 왕복하는데 화요일에는 휴항이다. 탐방객이 많을 때는 배를 더 띄우기도 한다.
천수만은 본래 수초가 많고 영양염류가 풍부해 농어·도미·민어·숭어 등의 산란장이자 다양한 어류의 서식지였다. 천수만에서는 굴, 김 양식도 활발했고 천수만으로 인해 홍성 광천 새우젓과 광천김이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 하지만 1980년부터 농경지와 담수호를 만들기 위해 대규모 간척사업이 시작돼 천수만의 북부 7.7㎞가 방조제로 막혀버렸고 155.94㎢가 매립됐다. 이 여파로 천수만은 드넓은 갯벌이 사라지고 오염도 심해져 어류의 산란장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천수만은 이제 더 이상 황금어장이 아니다. 광천 새우젓과 광천김의 명성도 퇴색되고 말았다. 가까운 미래도 내다보지 못한 마구잡이 간척으로 황금 갯벌을 죽여 버린 후과다.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죽도
죽도는 면적 0.17㎢에 불과할 정도로 작아 천천히 섬을 둘러봐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섬에 대나무가 많아 죽도라 했다는 유래처럼 섬 곳곳에는 시누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높은 산이 없고 섬 전체가 낮은 구릉과 평지다 보니 섬 어디에서든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죽도는 과거 태안군 안산면에 속했다가 1914년 서산군 안면면에 그리고 1989년부터 홍성군 서부면에 편입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죽도는 혼자가 아니다. 죽도를 어미 섬으로 인근의 올망졸망한 작은 섬 11개가 함께 무리지어 군도를 이룬다. 그래서 죽도와 11개의 무인도를 합해 열두 대섬이라고 부른다. 무인도는 지만여, 글만여, 전족도, 몽족도, 띠섬, 작은마녀 등 제각기 다른 사연과 이름을 가지고 있다. 썰물 때면 이 무인도 중 4개가 죽도와 이어진다. 무인도를 걸어서 오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죽도 사람들은 대부분 어업에 기대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다. 섬이 작아 농사지을 땅이 없었으니 어업은 숙명이었다. 죽도는 아주 젊은 섬이다. 30~40대가 10명이나 된다. 인구의 25%다. 고향을 떠났던 청년들이 다시 귀어해 정착한 까닭이다. 주민등록상 인구는 70명이지만 죽도에는 23가구 40명이 실거주하는데 어선이 23척이다. 한 가구는 배가 2척이고 배를 운항할 기력이 없는 노인 한 가구만 배가 없다. 그러니 실상 섬 주민 모두가 배를 소유하고 어업을 하는 어부들인 셈이다. 어선이 죽도 사람들의 생명선이다. 거의 100%의 주민이 배를 소유하고 어업에 종사하는 일은 다른 섬들에서는 보기 어려운 아주 희귀한 사례다. 섬은 봄에는 주꾸미가, 가을에는 꽃게와 대하가 가계를 살찌운다.
죽도는 천수만 일원이 그렇듯이 겨울철 12월부터 2월까지는 새조개의 산지이기도 하다. 남당항에서는 해마다 새조개 축제가 열린다. 하지만 올해는 생산량이 많지 않아 가격이 비쌌다. 1㎏에 10만원 정도했으니 금조개였다. 새조개의 산란철은 4월께인데 산란 직전까지가 살이 오르는 때라 가장 맛있다. 여름에도 새조개가 나지만 이때는 질기고 맛이 없다. 바지락은 종패를 뿌려 어촌계에서 공동양식을 하는데 마파지, 앞장벌 등에서 나는 바지락이 최상품이다. 죽도의 바지락은 거의 사철 내내 채취되는데 한 집당 하루 40㎏까지만 가능하다.
최영 김좌진 한용운 등 걸출한 인물 배출
작은 섬이지만 죽도에는 섬 전체를 탐방할 수 있는 둘레길이 잘 조성돼 있다.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만든 길이다. 둘레길에는 바다를 관찰할 수 있는 조망대가 세 개나 있다. 첫 번째 조망대는 옹팡섬, 두 번째 조망대는 당개비, 당개비는 담깨비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당제를 모시던 당산이었다. 세 번째 조망대는 동쪽에 자리해 있는 동바지다. 동바지는 시누대 숲이다. 전망대들에는 최영 장군, 김좌진 장군, 한용운 스님 등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홍성 출신 역사 인물들이다. 만해는 결성면 성곡리, 백야는 갈산면 행산리다. 두 곳의 거리는 6.5㎞에 불과하니 바로 지척에서 두 분의 걸출한 항일 독립 영웅이 탄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최영 장군의 탄생지는 불분명하다. 철원, 서산, 개성, 홍성 등의 설이 있다. 조형물은 최영 장군 또한 홍성 출신이라 주장하고 싶은 까닭에 세워진 것이다. 둘레길에는 길을 표시하는 밧줄들이 쳐져 있는데 시선을 거스른다. 위험한 곳도 아닌데 굳이 밧줄을 칠 필요가 있나 싶다.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다. 동바지 입구에서 할머니 한 분이 굴을 까고 있다. 상뿌리에서 캐온 굴이다. 작년 12월 24일 예인선이 죽도 앞 바다를 지나가다 기름 유출 사고를 냈다. 다행히 만조 때라 피해가 적었다. 그래도 주민들이 모두 나가 기름 묻은 바위들을 닦아내는 데 3일이나 걸렸다. 하지만 지금도 기름 피해를 본 지역의 굴은 냄새가 나서 먹을 수 없다. 당개비 전망대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 해변에 외딴집 한 채가 서 있다. 이 집도 오늘 수확해온 바지락을 바구니에 담아 내놨다. 관광객들에게 팔기 위한 것이다. 집 처마에는 대나무 꼬치에 조개를 꽂아서 말리고 있다. 무슨 조개일까? 주인에게 물어보니 맛조개다. 저런 조개 꼬치는 구워서 술 안주하기 그만이다. 섬에서는 무 넣고 조리거나 국을 끓여 밥반찬을 한다. 섬 주민들은 수온 상승 영향으로 천수만의 조개들도 점점 줄어간다고 이구동성이다. 올해 새조개 작황이 안 좋은 것도 수온 상승 탓인 것 같다고 짐작한다. 지구 온난화 영향이 북극 빙하나 북극곰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 당장 우리 바다의 생태계 질서를 교란시키고 있다. 온난화 방지 대책은 미세먼지 대책만큼이나 정부가 주요 의제로 삼아야 마땅한 사안이다.
갯벌 원시어로인 독살 체험도 이채
섬 주민들은 여객선이 취항하면서부터는 주말이면 하루 500명씩이나 섬을 찾는 것이 반갑다. 섬에 활기가 돌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광객 대부분은 섬에 돈 한 푼 안 쓰고 떠난다. 그냥 쓰레기만 버리고 간다. 주민들은 그것이 걱정이다. 마을 안 갯벌에는 독살 체험장이 설치돼 있다. 독살은 해변에 돌담을 쌓아 들물 때 들어온 물고기를 썰물 때 잡는 원시어로 방법이다. 돌 그물인 것이다. 죽도에서도 과거에는 독살로 물고기를 잡던 시절이 있었다. 독살 근처에는 용난둠벙이 있다. 갯고랑이 꼭 용이 꿈틀거리는 모양이다. 안개가 많이 끼는 날 이무기가 용이 돼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죽도는 고려시대 삼별초의 난 당시 삼별초군이 화살을 만들기 위해 대나무를 베어다 썼다는 전설도 전한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강화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진도에 왕국을 세웠던 삼별초는 한때 남동쪽으로 남해도, 서해에서는 안면도까지 장악했으니 죽도 역시 삼별초 왕국의 영토였을 것이다.
개조개를 맛보기 위해 우연히 들른 포장마차, 주인 육태국, 이혜영 씨 부부는 어선을 가지고 조업하면서 민박도 겸한다. 조업을 하는 이유는 민박 오는 손님들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어서다. 혜영씨는 대기업을 다니다 남편을 만나 10여 년 전에 남편의 고향인 죽도로 귀향했다. 남편과 함께 죽도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혜영씨는 섬살이가 만족스러운데 특히 죽도의 가을을 좋아한다. 노을이 질 때면 그토록 포근할 수가 없다.
부부의 가을은 더없이 낭만적이다. 새우잡이를 나갔다 들어오는 저녁이면 돗자리 하나 챙겨서 해변으로 간다. 별이 쏟아지는 해변에서 부부는 돗자리에 앉아 별을 보며 맥주를 마신다. 그때의 행복감은 뭐라 표현할 수 없다. 섬살이가 고되기도 하지만 섬을 떠날 수 없는 이유다.
■강제윤 시인은
강제윤 시인은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섬 답사 공동체 인문학습원인 섬학교 교장이다.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통영은 맛있다》 《섬을 걷다》 《바다의 노스텔지어, 파시》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