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가에서는 공모펀드 매니저를 ‘정파(正派)’, 한국형 헤지펀드 매니저를 ‘사파(邪派)’라고 부른다. 무협지에 나오는 단어를 차용해 쓰는 표현이다. 요즘은 사파 전성시대다. 최근 수년간 헤지펀드가 고수익을 내면서 공매도, 메자닌투자 등을 적극 활용할 줄 알아야 펀드매니저 ‘명함’을 내밀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저평가된 주식을 사서 묵묵히 기다려 수익을 올리는 롱온리(매수일변) 전략은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다. ‘이름값’이 비싼 스타매니저들도 헤지펀드 운용사로 급속히 몰려들고 있다.

하지만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주식투자 원칙을 묵묵히 지키며 수익을 내는 젊은 공모펀드 매니저들도 있다.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 2팀이 운용하는 가치주 펀드 ‘한국투자중소밸류’는 올해 수익률이 22.63%에 달한다. 공모 액티브 주식형펀드 평균 수익률(7.59%)을 15%포인트 이상 앞서는 압도적 1위다. 타임폴리오자산운용, 씨앗자산운용 등 내로라하는 헤지펀드를 제치고 정파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정통 가치투자로 이룬 성과

운좋게 한두 종목이 터져서 이룬 성과가 아니다. 이 펀드는 80~100개 내외의 종목에 철저히 분산투자한다. 종목별 편입비중은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1~2% 수준이다. 단기 수익성 보다 중·장기 안정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 김기백 주식운용 2팀장은 “올해 정보기술(IT)주와 자동차 부품주 등 소외됐던 주식들이 빛을 보면서 수익률이 개선됐다”며 “반등할 때 무섭게 오르는 게 중소형 가치주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투자전략은 가치투자의 대가로 꼽히는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대표의 수제자였던 엄덕기 전 한국운용 매니저로부터 가치투자 전략을 전수받아 자신의 노하우를 접목했다. 시장의 주도주를 찾기보다 소외된 가치주를 담아 주가가 오르면 차익을 실현하는 식으로 운용한다. 시장에 덜 알려진 종목들을 중심으로 ‘진주’를 찾는다.

◆“사업보고서 행간 읽어야”

김 팀장은 투자 아이디어를 주로 전자공시를 통해 얻는다. 그는 “사업보고서를 꼼꼼히 살펴보면 기업의 사업방향은 물론 협력사와 경쟁사의 움직임, 산업동향까지 파악할 수 있다”며 “실적전망 위주로 압축적으로 쓰인 증권사 보고서만 봐서는 깊은 분석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주식운용2팀 매니저들은 하루에 수백통의 전자공시를 열어보고 각 기업의 재무상황을 엑셀 파일에 기록한다.

영업이익 뿐 아니라 영업활동 현금흐름, 투자활동 현금흐름, 부채비율, 자회사 실적 등 ‘5대 핵심 재무제표 항목’을 꼼꼼히 살펴본다. 의문이 생기는 부분은 기업탐방과 투자설명회를 통해 해결한다. 이 펀드를 담당하는 3명의 펀드매니저가 실행하는 기업분석은 연 1000회에 달한다.

김 팀장은 이익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데 저평가된 기업에 높은 점수를 준다. 2017년에 처음으로 투자한 패션업체 F&F가 대표적이다. 김 팀장은 2017년 초 이 회사의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다가 영업이익률은 그대로인데 매출총이익률(매출총이익/전체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증권가에서 실적을 볼 때는 주로 영업이익을 보지만 여기에는 판매관리비가 포함되기 때문에 진짜 경쟁력을 확인하려면 매출총이익(매출-매출원가)을 같이 봐야한다”는 게 김 팀장의 설명이다.

그는 “F&F는 새 브랜드를 내놓으면서 일시적으로 광고비 등 판관비가 높아졌던 상황이었다”며 “매출총이익은 꾸준히 늘고 있었기 때문에 브랜드 경쟁력이 개선되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1만5000원 가량이었던 이 회사 주식을 쓸어담아 상당량을 4만~5만원에 처분했다.

원재료 가격 등락에 따라 실적개선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도 눈여겨 본다. 작년에는 신대양제지 등 골판지주로 수익을 올렸고, 올해는 참치 값 상승의 수혜를 기대할 수 있는 동원산업을 주목하고 있다.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 투자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해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그의 책상 앞에는 잡보장경의 한 구절이 붙어있다. 시장의 열기가 특정 업종에 집중돼 과도하게 오를 때면 이 구절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김 팀장은 “코스닥 상장사 중 증권사 분석 보고서가 나오는 종목은 30%가 안 된다”며 “시장의 돈도 주도주라고 하는 몇몇 종목에 몰리는 경향이 있다”며 고 말했다. 그는 “그만큼 나머지 기업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회도 많다고 생각한다”며 “단기 성과에 자만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며 투자하겠다”고 덧붙였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