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타다·에어팟 그리고 어떤 스타트업…좋은 '사용자 경험'이 팬덤과 습관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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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의 생각노트
2009년 아이폰이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그즈음 낯선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용자 경험. 뭔 소린가 했습니다. 느낌은 오는데….
그 의미를 깨닫는 데 10년이나 걸린 것은 지적 게으름 탓이었을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좋은 사용자 경험이란 무엇인가’를 느끼는 데 걸린 시간이라고 할까.
30만원짜리 노트북이 만든 감성
두 달 전쯤입니다.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 들어갔습니다. 기사가 될 만한 것을 찾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문구가 하나 눈에 들어왔습니다. ‘100만원대 울트라북을 20만원대에.’ 일리가 있었습니다. 마케팅 등 필요없는 비용을 빼면 가능하다나 어쨌다나. 뭘 누르니 펀딩에 참여하겠느냐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나중에 결제 안 하면 되지 뭐’라는 생각으로 ‘네’를 눌렀습니다. 그리고 잊고 지냈습니다.
1주일쯤 지났을까. 메시지가 왔습니다. “펀딩이 성사됐습니다.” 뭐지? 카카오뱅크에서 돈이 빠져나갔다는 메시지가 곧 따라 들어왔습니다. 노트북이 3개나 있는데….
순간 “노트북 수집하냐”고 구박할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난 기자다. 제품을 사용해보고 기사를 써야지.”
두 달 후쯤 배송된다고 했습니다. 잊고 살기로 했습니다. 며칠 뒤 메일이 왔습니다. 조립하는 장면이 담긴 아주 짧은 동영상과 함께 생산을 시작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후 1주일에 한 번 정도 소식이 왔습니다. 어댑터 등을 정할 때는 투표도 했습니다. 펀딩에 참여한 사람들이 스타일을 선택했습니다. 소식 밑에는 2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소비자가 제품을 직접 만드는 듯했습니다. 응원의 메시지도 이어졌습니다.
지난 24일 온 메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베이직스입니다. 마지막 생산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다음 소식은 배송 일정이 될 것 같습니다.” 약간 뭉클했습니다. 힘든 여정을 함께하고, 종착지에 도달한 느낌이랄까. 무언가를 사면서 이런 기대와 기다림이 있었던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할 수 있는 마케팅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경험이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서비스는 계속돼야 한다
경험 하면 타다가 떠오릅니다. 승차공유 서비스라고 하지만 11인승 차량을 이용한 콜택시라 해도 무방합니다. 차 문을 열 필요도, 기사님과 쓸데 없는 대화를 할 이유도, 계산하는 번거로움도 없습니다. 문이 열리면 타고, 도착해서 그냥 내리면 됩니다. 요즘은 잘 못 탑니다. 사용자가 많아져서. 한마디로 하면 “한 번 타면 다른 택시를 타기 싫어지는 그런 서비스” 정도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쿠팡과 카카오뱅크도 삶의 일부가 됐습니다. 쿠팡의 미래는 글의 주제에서 벗어나 생략합니다. 다만 소비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서비스가 계속되고 진화하길 바란다”고 할 것 같네요. 편하니까. 팝업창이 뜨지 않고, 결제도 쉽고, 오후에 주문하면 웬만하면 다음날 출근하면서 득템했다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카카오뱅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젊은 후배들에게 카톡으로 결혼 축의금을 전달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여기에 유선 이어폰을 못 쓰게 만들어버린 에어팟까지 포함하면 식상할까요?
이런 과정을 거쳐 ‘좋은 사용자 경험’이 무엇인지 주관적으로 정의하게 됐습니다. “다른 것을 선택하지 못하게 만드는 소비의 경험. 팬덤 또는 습관을 만드는 경험.”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한 사례는 유명합니다. 애플 기기를 사면 배터리가 충전돼 있습니다. 아이팟을 만들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누구나 매장에서 전자제품을 사면 당장 쓰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이전까지 대부분 충전이 안 된 상태로 팔렸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의 불만과 실망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품을 테스트하면서 충전되도록 했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당장 써볼 수 있도록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했습니다. 다른 기업들이 따라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요.
5월에 받아볼 노트북의 성능은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준 메시지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은 소비자와 한배를 타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생활경제부장 junyk@hankyung.com
그 의미를 깨닫는 데 10년이나 걸린 것은 지적 게으름 탓이었을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좋은 사용자 경험이란 무엇인가’를 느끼는 데 걸린 시간이라고 할까.
30만원짜리 노트북이 만든 감성
두 달 전쯤입니다.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 들어갔습니다. 기사가 될 만한 것을 찾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문구가 하나 눈에 들어왔습니다. ‘100만원대 울트라북을 20만원대에.’ 일리가 있었습니다. 마케팅 등 필요없는 비용을 빼면 가능하다나 어쨌다나. 뭘 누르니 펀딩에 참여하겠느냐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나중에 결제 안 하면 되지 뭐’라는 생각으로 ‘네’를 눌렀습니다. 그리고 잊고 지냈습니다.
1주일쯤 지났을까. 메시지가 왔습니다. “펀딩이 성사됐습니다.” 뭐지? 카카오뱅크에서 돈이 빠져나갔다는 메시지가 곧 따라 들어왔습니다. 노트북이 3개나 있는데….
순간 “노트북 수집하냐”고 구박할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난 기자다. 제품을 사용해보고 기사를 써야지.”
두 달 후쯤 배송된다고 했습니다. 잊고 살기로 했습니다. 며칠 뒤 메일이 왔습니다. 조립하는 장면이 담긴 아주 짧은 동영상과 함께 생산을 시작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후 1주일에 한 번 정도 소식이 왔습니다. 어댑터 등을 정할 때는 투표도 했습니다. 펀딩에 참여한 사람들이 스타일을 선택했습니다. 소식 밑에는 2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소비자가 제품을 직접 만드는 듯했습니다. 응원의 메시지도 이어졌습니다.
지난 24일 온 메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베이직스입니다. 마지막 생산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다음 소식은 배송 일정이 될 것 같습니다.” 약간 뭉클했습니다. 힘든 여정을 함께하고, 종착지에 도달한 느낌이랄까. 무언가를 사면서 이런 기대와 기다림이 있었던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할 수 있는 마케팅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경험이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서비스는 계속돼야 한다
경험 하면 타다가 떠오릅니다. 승차공유 서비스라고 하지만 11인승 차량을 이용한 콜택시라 해도 무방합니다. 차 문을 열 필요도, 기사님과 쓸데 없는 대화를 할 이유도, 계산하는 번거로움도 없습니다. 문이 열리면 타고, 도착해서 그냥 내리면 됩니다. 요즘은 잘 못 탑니다. 사용자가 많아져서. 한마디로 하면 “한 번 타면 다른 택시를 타기 싫어지는 그런 서비스” 정도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쿠팡과 카카오뱅크도 삶의 일부가 됐습니다. 쿠팡의 미래는 글의 주제에서 벗어나 생략합니다. 다만 소비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서비스가 계속되고 진화하길 바란다”고 할 것 같네요. 편하니까. 팝업창이 뜨지 않고, 결제도 쉽고, 오후에 주문하면 웬만하면 다음날 출근하면서 득템했다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카카오뱅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젊은 후배들에게 카톡으로 결혼 축의금을 전달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여기에 유선 이어폰을 못 쓰게 만들어버린 에어팟까지 포함하면 식상할까요?
이런 과정을 거쳐 ‘좋은 사용자 경험’이 무엇인지 주관적으로 정의하게 됐습니다. “다른 것을 선택하지 못하게 만드는 소비의 경험. 팬덤 또는 습관을 만드는 경험.”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한 사례는 유명합니다. 애플 기기를 사면 배터리가 충전돼 있습니다. 아이팟을 만들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누구나 매장에서 전자제품을 사면 당장 쓰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이전까지 대부분 충전이 안 된 상태로 팔렸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의 불만과 실망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품을 테스트하면서 충전되도록 했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당장 써볼 수 있도록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했습니다. 다른 기업들이 따라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요.
5월에 받아볼 노트북의 성능은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준 메시지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은 소비자와 한배를 타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생활경제부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