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분기 ‘마이너스 성장’ 쇼크는 우리 경제를 총체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유기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할 나라 경제가 곳곳에서 고장난 실상이 경제성적표로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믿었던 수출마저 뒷걸음질 치면서 투자와 고용 절벽은 더욱 골이 깊어졌다. “정말 올 것이 오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그런 점에서 주목할 현상이 기업들의 탈(脫)한국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전년(446억달러)보다 11.6% 늘어난 497억8000만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년 새 109조원이 빠져나간 것이다. 경제활동의 국경이 사라진 시대에 기업의 해외 진출은 이상하게 볼 일도, 걱정만 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경제영토’를 넓히는 긍정 효과도 있다.

하지만 왕성한 해외투자와는 정반대로 국내 투자가 쪼그라드는 현실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다. 올해 1분기 국내 설비투자 증가율(-10.8%)이 21년 만에 최저치다. 더 심각한 것은 중소기업들의 해외 ‘투자 망명’이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중소기업 해외투자는 100억달러로 전년보다 31.5% 늘었다. ‘중소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던 말이 무색하다.

해외투자가 급증할 때 즉각적 결과가 ‘일자리 유출’이다. 그 파장이 어떤지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대로다. 청년 네 명 중에 한 명꼴로 ‘사실상의 백수’ 상태에서 “일자리를 달라”는 절규가 늘고 있다. 중·장년층은 다니던 직장을 잃고 마지막 생계수단으로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남은 돈마저 털리는 판국이다.

이런 고용 참사에도 소위 일자리 정부가 펴는 정책은 일자리 없애는 정책들투성이다. 기업활동을 범죄시하고, 규제개혁은 시늉에 그치면서, 노동개혁을 외면하고, 고용비용만 올려놨다. 게다가 ‘부자 증세’로 조성한 재원을 ‘공공알바’ 같은 임시 일자리에 퍼붓는 수준이다. 월 몇십만원짜리 ‘세금 쓰는 일자리’를 늘려놓고 “고용지표가 개선되고 있다”고 억지를 부린다.

이런 식의 ‘눈 가리고 아웅’이 언제까지 통할 리 없다. 경제규모가 12배 큰 미국이 1분기 0.8%(연율 3.2%) 성장할 동안 우리 경제는 되레 후퇴(-0.3%)했다. 몇몇 탁상공론가들이 주장한 가설(假說) 수준의 경제실험 이론을 ‘가본 적 없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는 수사로 밀어붙이는 오기는 이제라도 멈춰야 한다.

지난 주말 한국정치학회와 경제학회, 경영학회가 ‘정부인가 시장인가’를 주제로 연 긴급 융합토론회는 지식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토론회에선 “정부가 시장을 조정해 모든 걸 원하는 방향대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착각부터 버려야 한다” “일부 진보학자의 목소리를 정책에 그대로 담다 보니 이른바 ‘갑’에 대한 증오와 공격을 정책에 반영해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낳고 있다”는 등의 고언(苦言)이 쏟아졌지만 정부 여당이 과연 들을 생각이 있는지 의문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무한경쟁 시대다. 비슷한 성향의 무리들이 모여앉아 “우리가 다 안다”는 식으로 경제를 통제해서는 왜 안 되는지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정책책임자들은 이제라도 확증편향과 집단사고의 덫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