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와 홍영표 원내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와 홍영표 원내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공조’가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바른미래당이 29일 기존 여야 합의를 깨고 독자적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을 들고 나오자 민주평화당이 곧바로 반발하면서 자중지란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당의 물리적 저지에 이어 범(汎)여권의 내분으로 선거제 개편과 공수처 설치를 위한 패스트트랙 추진 동력이 약화되는 모양새다.

공수처법 놓고 파열음…여야 4당 '패스트트랙 공조' 균열 조짐
바른미래 “2개 공수처법, 동시 상정해야”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이날 대표 발의한 공수처 설치·운영법은 여야 4당이 지난 25일 합의한 더불어민주당안(案)과 비교해 크게 네 가지가 다르다. 먼저 기관명부터가 민주당안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바른미래당안은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다. 권 의원은 “공수처의 수사 대상을 여야 합의안의 ‘고위공직자 범죄 전반’에서 ‘부패 범죄’로 구체화했기 때문에 기관명도 달라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른미래당안은 판사, 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에 대한 기소 권한을 민간 위원이 참여하는 ‘기소심의위원회’에 두도록 규정했다.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공수처 인사권은 대통령이 아니라 공수처장이 갖도록 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 회의에서 “이미 제출된 여야 합의안과 함께 두 개 법안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한다”며 “민주당 등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패스트트랙 추진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가 별도의 공수처 법안 발의란 카드를 꺼내 든 것은 패스트트랙 추진을 둘러싼 당내 반발을 누그러뜨리고 여야 대치 정국을 풀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김 원내대표는 사개특위 위원이었던 권 의원이 지난 25일 “공수처법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하자, 그를 위원직에서 사임시켰다. 이에 유승민 의원을 주축으로 한 바른정당계는 “특위 위원 교체는 불법”이라며 거세게 항의했고, 김삼화 김수민 의원 등 안철수계도 당직에서 사퇴하는 등 당내 분란이 걷잡을 수 없는 양상으로 치달았다.

김 원내대표는 “사개특위 위원에서 사임된 권은희 오신환 의원과 지난 주말 동안 많은 논의를 했고, 새 법안을 내놓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고 했다. 그러나 김 원내대표 발언 직후 오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법안 제출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반박해 당 내홍은 좀체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앞줄 오른쪽)와 나경원 원내대표(가운데)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의원들과 함께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앞줄 오른쪽)와 나경원 원내대표(가운데)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의원들과 함께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한국당 반대 속 새 변수로 떠오른 평화당

패스트트랙의 추진 동력 상실을 우려하는 민주당은 일단 “수용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우리당 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민주당은 사개특위에서 바른미래당 요구를 반영해 여야 합의안을 수정하는 방안, 합의안과 바른미래당안을 합해 새로운 법안을 상정하는 방안을 놓고 논의 뒤 이같이 결정했다. 정의당도 바른미래당 안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공수처 설치 자체를 거부해온 한국당은 “꼼수 법안”이라며 ‘수용 불가’ 방침을 강조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선거법·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과정 자체가 불법이라 (바른미래당안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사개특위 소속 윤한홍 의원도 “기존 합의안을 국회 본회의에 올리기 위한 ‘꼼수 발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당은 이날도 민주당 등의 패스트트랙 기습 추진을 대비해 사개특위 회의장으로 예상되는 국회 본청 220호를 육탄 봉쇄했다.

정치권에선 거대 양당 외에 이날 바른미래당 제안에 반대 의사를 밝힌 민주평화당이 ‘패스트트랙 정국’의 또 다른 변수로 떠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는 “새로운 공수처법을 별도 발의한다는 것 자체가 여야 4당 합의를 깨는 것이고, 패스트트랙 제도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복수 안건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다는 건 특위 위원들이 서로 다른 두 개 법안을 동시에 찬성하는 모순이 생긴다”는 것이다. 민주평화당은 만약 두 개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동시 상정되면 사개특위 위원인 박지원 의원을 특위 회의에 불참시킬 계획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법이 사개특위에서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통과하려면 18명의 특위 위원 중 지정 요건인 5분의 3이 넘는 11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현재 패스트트랙 찬성파는 민주당 소속 위원 8명과 바른미래당 위원 2명, 박 의원 등 11명이다. 만약 박 의원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공수처법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는 게 불가능하다. 장 원내대표는 “4당 원내대표들의 재논의를 거쳐 두 법안의 절충점을 찾아 단일안으로 발의하는 데는 동의한다”고 언급해 여지를 남겼다.

하헌형/김소현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