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극우정당 44년 만에 원내 진입…독재자 프랑코 '망령' 부활
스페인에서 ‘반(反)이슬람’ ‘스페인 민족주의’ 등을 내세운 극우정당 복스(Vox·목소리)가 28일(현지시간) 열린 총선거에서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극우정당이 의회에 진출하기는 1975년 스페인 민주화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우파 국민당의 부패 스캔들 등에 염증을 느낀 우파 성향의 유권자들이 대거 표를 몰아준 덕분으로 풀이된다.

29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전날 진행된 총선 개표가 99.9% 진행된 가운데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좌파 사회노동당이 29%의 득표율로 전체 350석 가운데 123석을 확보했다. 현재 84석에서 39석을 추가하면서 원내 최대 정당에 올랐다.

제1당이었던 국민당은 66석(16.7%)을 차지하는 데 그쳐 2당으로 내려앉았다. 국민당은 지난해 6월 마리아노 라호이 전 총리가 부패 스캔들로 의회의 불신임을 받아 총리직을 내준 데 이어 의석수도 반 토막이 났다. 중도우파 성향의 시민당은 현재보다 25석 많은 57석(15.9%)을 가져갔고, 급진좌파 포데모스는 42석(14.3%)을 차지했다.

사회노동당은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급진좌파 포데모스와 민족주의 정파로 구성된 연정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도우파 시민당과 연합하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

좌파연합 연정이 구성되면 스페인 경제의 성장 둔화와 재정 악화 우려가 커질 전망이다. 산체스 총리는 수요를 진작시켜 경제를 살리겠다며 최저임금 인상 등을 공약으로 내놨다. 또 누진 소득세 강화, 대기업·고소득자 세율 인상 등 ‘부자 증세’도 추진할 계획이다. 연정 후보로 거론되는 포데모스도 소득세 최고세율 55%로 인상, 대기업 법인세율 상향, 실업급여 확대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선 극우정당 복스의 약진이 눈길을 끌었다. 복스는 10.2%의 득표율로 24석을 확보하며 창당 5년 만에 원내 입성에 성공했다. 스페인은 1975년 민주화되기 전까지 38년간 파시스트 독재자로 군림했던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철권통치를 받았다. 이때의 기억 때문에 스페인에선 극우 성향 정당이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민주헌법을 회복한 이후 중앙과 지방을 통틀어 의회에 진출한 역사도 없었다. 그러나 프랑코 정권 이후 44년 만에 ‘극우 무풍지대’ 스페인의 정치 지형이 바뀌게 됐다.

복스는 ‘스페인을 다시 위대하게(Make Spain Great Again)’를 내세우고 카탈루냐의 독립 반대, 이민정책 강화, 반이슬람, 낙태법 강화 등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다문화주의를 반대하면서 스페인 민족주의에 호소한다는 특징 때문에 유럽에 퍼진 극우·포퓰리즘 기류와 맥을 같이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복스에 대한 깜짝 지지는 ‘반유럽연합(EU)’을 특징으로 하는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의 극우정당과는 달리 스페인 내부 문제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부패 스캔들 등 국민당의 실정에 실망하거나 카탈루냐 분리독립에 반대하는 이들이 복스에 표를 던졌다는 얘기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