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우의 현장분석] 문제투성이 국기원, 글로벌 스탠더드로 개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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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빗장이 채워진 출입문. 들어가려 자와 막으려는 자. 고성이 오가고 몸싸움은 기본이다. 일촉즉발의 상황. 여야가 대치한 국회의사당이 아니다. 태권도의 발전과 세계적인 보급을 위한 중심축인 국기원 세계태권도본부 얘기다.
지난 25일 서울 역삼동 국기원에서 국기원 임시이사회가 열렸다. 발전위원회를 중심으로 개정된 새로운 정관과 신임 이사 및 신임 원장 선임 등의 안건을 상정하고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국기원은 현재 원장과 사무총장이 업무방해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상태. 태권도계 내외부의 잡음이 심해지자 국기원은 지난해 9월 발전위원회를 구성해 올해 1월 수정된 정관 개정안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인가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문체부는 거부했다. 정관 개정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셀프 개혁의 한계'가 실질적인 이유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문체부와 국기원의 대치는 이날 열린 이사회에서 고스란히 표출됐다. 지난 1월초 새 정관 안의 승인을 문체부가 거부하자 국기원은 1월 말 다시 공청회 등을 거쳐 '정상화 로드맵'이란 자구안을 발표했고, 이를 기반으로 임시이사회를 소집했다.
문제는 ‘날치기성’ 원장 선임에서 촉발됐다. 이날 이사회는 정관 개정을 비롯해 신임 이사 및 신임 원장 추대 등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순서가 문제였다. 선거제도 개편 등 핵심 사안이 담긴 정관 개정안은 안건 4번에 놓고, 1~3번에 이사 연임과 신임 이사 선임, 원장 선임의 건을 배치한 것. 이사회는 정관을 개정한 뒤 그 기준에 따라 국기원장을 새롭게 선출하자는 정부 측의 기존 방침을 어기고 원장 선임 안건을 선순위로 배치했다. 이런 식으로 임시이사회를 강행함으로써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해온 문체부에 맞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새 원장을 먼저 마지막에 정관 개정안을 처리하려던 이사회의 계획은 무산됐다. 이사회의 졸속 처리 계획에 당연직 이사인 문체부가 강력히 반대하면서 4시간여의 마라톤 회의가 이어졌다. 문체부가 '예산 집행 철회'라는 초강수를 던지면서 원장 선임 안건은 무효가 됐고, 새로운 원장을 뽑는 선거 전까지 원장 직무대행 체제로 가기로 했다. 정관 개정안은 그 이후에 승인됐다. 자칫하면 정관 개정안 승인은 미뤄지고 ‘셀프 개혁안 마련'에 이어 이사회의 입맛대로 새 원장을 선임하는 ’셀프 임명‘까지 한 방에 처리되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될 뻔했다. 이사회의 뜻대로 원장을 임명하는 것은 전횡으로 지적 받아온 터였다.
승인된 새 정관의 핵심은 원장 선거제도 개편이다. 70인 이상으로 '원장선출위원회'를 꾸려 참석 위원 과반수 득표로 공모 지원자 중 1인을 뽑아 이사회 및 문체부 장관에게 보고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무소불위와도 같았던 국기원 이사회의 기득권을 대부분 내려놨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는 평가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원장 자리를 둘러싼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한 데다 새 정관의 세부 항목에 대해서는 문체부와 국기원 이사회 간의 이견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몇 달 앞으로 다가온 원장 선거를 두고도 벌써부터 잡음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태권도의 10대 문화콘텐츠화'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중점 사업 가운데 체육·스포츠 분야의 유일한 과제다. 그만큼 태권도는 중요한 스포츠 유산이자 글로벌 콘텐츠이다. 올림픽 종목이라는 장점에 힘입어 세계적인 산업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크다. 일자리 창출 효과는 어떤가.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에 따르면 지난 5년 간 전 세계 130여개 국가로 파견된 봉사단원 가운데 현지 국가에 지도자 또는 태권도 행정직으로 잔류하거나 취업한 사람이 50여명이나 된다. HR(인적자원) 전문가들은 이들의 파급력이 일반 취업의 5배를 넘는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성인 태권도 인구는 날이 갈수록 줄고 있다. 1만여 개에 달하는 자영업 태권도장은 콘텐츠 부족을 호소한다. 해외에서 활약 중인 사범들은 세계 본부의 위상 추락에 수십 년 공든 탑이 무너질까 노심초사하고 잇다. 포승줄에 묶여 검찰로 향하는 국기원장의 모습이 담긴 유튜브 영상은 해외 조회수만 수십만을 훌쩍 넘겼다.
태권도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대표적 문화유산이자 스포츠유산이다. ’국기(國技) 태권도‘라고 하지 않는가. 국기란 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즐겨 내려오는 대표적인 운동이나 기예로서, 씨름이나 태권도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이미 수십년 동안 한류의 원조로서 세계에 보급돼온 게 태권도이다. 그런 점에서 태권도는 ’우리 것‘인 동시에 ’세계의 것‘이다. 세계태권도본부라는 이름에 걸맞게 국기원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추고 세계와 소통해야 하지 않을까.
문화부 차장 seeyou@hankyung.com
지난 25일 서울 역삼동 국기원에서 국기원 임시이사회가 열렸다. 발전위원회를 중심으로 개정된 새로운 정관과 신임 이사 및 신임 원장 선임 등의 안건을 상정하고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국기원은 현재 원장과 사무총장이 업무방해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상태. 태권도계 내외부의 잡음이 심해지자 국기원은 지난해 9월 발전위원회를 구성해 올해 1월 수정된 정관 개정안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인가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문체부는 거부했다. 정관 개정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셀프 개혁의 한계'가 실질적인 이유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문체부와 국기원의 대치는 이날 열린 이사회에서 고스란히 표출됐다. 지난 1월초 새 정관 안의 승인을 문체부가 거부하자 국기원은 1월 말 다시 공청회 등을 거쳐 '정상화 로드맵'이란 자구안을 발표했고, 이를 기반으로 임시이사회를 소집했다.
문제는 ‘날치기성’ 원장 선임에서 촉발됐다. 이날 이사회는 정관 개정을 비롯해 신임 이사 및 신임 원장 추대 등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순서가 문제였다. 선거제도 개편 등 핵심 사안이 담긴 정관 개정안은 안건 4번에 놓고, 1~3번에 이사 연임과 신임 이사 선임, 원장 선임의 건을 배치한 것. 이사회는 정관을 개정한 뒤 그 기준에 따라 국기원장을 새롭게 선출하자는 정부 측의 기존 방침을 어기고 원장 선임 안건을 선순위로 배치했다. 이런 식으로 임시이사회를 강행함으로써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해온 문체부에 맞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새 원장을 먼저 마지막에 정관 개정안을 처리하려던 이사회의 계획은 무산됐다. 이사회의 졸속 처리 계획에 당연직 이사인 문체부가 강력히 반대하면서 4시간여의 마라톤 회의가 이어졌다. 문체부가 '예산 집행 철회'라는 초강수를 던지면서 원장 선임 안건은 무효가 됐고, 새로운 원장을 뽑는 선거 전까지 원장 직무대행 체제로 가기로 했다. 정관 개정안은 그 이후에 승인됐다. 자칫하면 정관 개정안 승인은 미뤄지고 ‘셀프 개혁안 마련'에 이어 이사회의 입맛대로 새 원장을 선임하는 ’셀프 임명‘까지 한 방에 처리되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될 뻔했다. 이사회의 뜻대로 원장을 임명하는 것은 전횡으로 지적 받아온 터였다.
승인된 새 정관의 핵심은 원장 선거제도 개편이다. 70인 이상으로 '원장선출위원회'를 꾸려 참석 위원 과반수 득표로 공모 지원자 중 1인을 뽑아 이사회 및 문체부 장관에게 보고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무소불위와도 같았던 국기원 이사회의 기득권을 대부분 내려놨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는 평가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원장 자리를 둘러싼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한 데다 새 정관의 세부 항목에 대해서는 문체부와 국기원 이사회 간의 이견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몇 달 앞으로 다가온 원장 선거를 두고도 벌써부터 잡음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태권도의 10대 문화콘텐츠화'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중점 사업 가운데 체육·스포츠 분야의 유일한 과제다. 그만큼 태권도는 중요한 스포츠 유산이자 글로벌 콘텐츠이다. 올림픽 종목이라는 장점에 힘입어 세계적인 산업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크다. 일자리 창출 효과는 어떤가.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에 따르면 지난 5년 간 전 세계 130여개 국가로 파견된 봉사단원 가운데 현지 국가에 지도자 또는 태권도 행정직으로 잔류하거나 취업한 사람이 50여명이나 된다. HR(인적자원) 전문가들은 이들의 파급력이 일반 취업의 5배를 넘는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성인 태권도 인구는 날이 갈수록 줄고 있다. 1만여 개에 달하는 자영업 태권도장은 콘텐츠 부족을 호소한다. 해외에서 활약 중인 사범들은 세계 본부의 위상 추락에 수십 년 공든 탑이 무너질까 노심초사하고 잇다. 포승줄에 묶여 검찰로 향하는 국기원장의 모습이 담긴 유튜브 영상은 해외 조회수만 수십만을 훌쩍 넘겼다.
태권도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대표적 문화유산이자 스포츠유산이다. ’국기(國技) 태권도‘라고 하지 않는가. 국기란 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즐겨 내려오는 대표적인 운동이나 기예로서, 씨름이나 태권도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이미 수십년 동안 한류의 원조로서 세계에 보급돼온 게 태권도이다. 그런 점에서 태권도는 ’우리 것‘인 동시에 ’세계의 것‘이다. 세계태권도본부라는 이름에 걸맞게 국기원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추고 세계와 소통해야 하지 않을까.
문화부 차장 see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