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종목 10% 이상 담지 마라"…'깨알 규제'에 발목잡힌 공모펀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주식형 펀드의 추락
(3) 마음대로 투자 못하는 공모펀드
(3) 마음대로 투자 못하는 공모펀드

굴지의 주식형 공모펀드를 운용하다 몇 년 전 사모펀드로 이직한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공모펀드가 위기에 처한 이유를 묻자 이같이 반문했다. 공모펀드 운용 시절 ‘스타 펀드매니저’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금융업이 기본적으로 규제 산업인 건 인정하지만 룰 자체가 팀이나 선수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건 곤란하지 않으냐”며 “공모펀드는 사모펀드 쪽으로 한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루하루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5년 ‘모험 자본 육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사모펀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그 결과 사모펀드의 일종인 헤지펀드는 최근 설정액 30조원을 돌파하는 등 고속 성장했다. 헤지펀드는 일반 주식형 펀드와 다르게 공매도나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 투자, 기업공개(IPO) 등 다양한 투자 전략을 활용해 시장 평균을 웃도는 절대 수익을 추구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헤지펀드의 지난 3년간 평균 수익률은 10.15%로 공모펀드(3.89%)의 세 배 수준에 육박했다. 장이 좋지 않았던 지난 1년간 공모펀드는 -9.56% 손실을 냈지만 헤지펀드는 오히려 0.33%의 수익을 올렸다.
공모펀드는 헤지펀드 등 사모펀드에 비해 촘촘하게 짜인 규제로 운용상 제약이 크다는 게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대표적인 규제가 ‘10% 룰’이다. 현행 자본시장법 81조는 개별 펀드가 투자한 특정 종목이 전체 자산의 10%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고 있다. 반면 사모펀드는 이 같은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최근 헤지펀드에서 자주 쓰이는 CB·BW 등 메자닌 투자(주식과 채권의 중간 형태 자산에 투자하는 것)도 공모펀드엔 ‘그림의 떡’이다. 현행 금융투자업규정에 따르면 펀드가 무보증 회사채에 투자할 경우 대상 기업은 둘 이상의 신용평가회사로부터 신용등급을 부여받아야 한다. 문제는 CB·BW를 주로 발행하는 코스닥 상장사나 벤처기업 등이 열악한 자금력 탓에 수천만~수억원의 수수료가 드는 신용평가 심사를 회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자산운용사의 한 주식 담당 펀드매니저는 “메자닌 투자는 해당 기업의 주식을 직접 매수하는 것에 비해 리스크를 낮추면서도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전략”이라며 “대부분의 CB·BW가 무보증 회사채로 발행되는 상황에서 규제가 풀리지 않는 한 공모펀드가 메자닌 투자에 나설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규제의 덫’에 걸려 곤욕을 치르는 사례도 있다. 금융감독원은 2017년 초 외국환 업무를 미등록한 상태에서 관련 업무를 취급했다는 이유로 자산운용사 25곳을 검찰에 고발했다.
현행 외국환거래법에 따르면 외국환 업무를 수행하는 금융회사 등은 기획재정부에 사전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과거 외환이 부족하던 시절 정부가 대량의 외환 거래를 감시·감독하려는 취지에서 마련된 법이다. 펀드가 이미 금감원 인가를 받아 해외 펀드 매매가 가능했음에도 단지 외국환 업무를 미등록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 대상이 된 것이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운용사가 펀드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외화증권을 매수하거나 해외 부동산을 취득하는 행위는 현행 자본시장법상 집합투자업 수행에 이미 포함된 것”이라며 “금융당국에도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지만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 우리도 답답하다”고 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