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민·기사 내 우파, '메르켈 흔들기'
사민당, 메르켈 교체 반대…지지율 하락으로 조기총선시 불리
지방선거 결과·사민당 중간평가 등이 변수


지난해 극심한 혼란을 겪던 독일 정가가 안정기에 들어섰지만,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조기 퇴진론은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다.

메르켈 총리가 지난해 말 '권력 내려놓기' 승부수로 정치적 위기에서 한숨을 돌렸지만, 권력 기반이 약화한 틈을 타고 '메르켈 흔들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향후 지방선거 결과 등에 따라 14년 째 총리직을 이어온 메르켈 총리의 입지는 더욱 약화할 수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정치적 구도상 메르켈 총리가 조기에 물러날 가능성은 크지 않은 분위기다.
메르켈의 '끝까지 간다'…솔솔부는 조기퇴진론 이겨낼까
◇ 권력기반 약화된 메르켈에 당내 보수세력 조기 퇴진론 제기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난민 문제 등을 둘러싼 대연정의 잇따른 난맥상과 지방선거에서의 부진한 성적표로 여론의 압박을 받자 10월 말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총리직 유지의 기반인 기독민주당 대표직을 포기하고 2021년까지인 잔여 임기만 채운 후 사실상 정계은퇴를 하겠다고 '깜짝' 선언을 한 것이다.

이에 여론은 우호적으로 돌아섰다.

더구나 12월 기독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메르켈 총리가 후계자로 낙점해온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가 당선되면서 우호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그러나 최근 기민당과 자매정당인 기독사회당 내부에서는 메르켈 총리의 조기 퇴진론이 제기됐다.

크람프-카렌바우어 대표에게 총리직을 넘겨주라는 주장이다.

기민-기사당 연합의 보수적 의원모임인 '가치연합'을 이끄는 알렉산더 미취 의원은 지난달 지역신문 파사우어뉴프레세와의 인터뷰에서 메르켈 총리가 조속한 시기에 총리직을 크람프-카렌바우어 대표에게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내각 구성을 통해 독일을 위한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기민·기사당 내 우파세력은 메르켈 총리의 친(親)난민정책 등에 대해 꾸준히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최근 기민·기사당 연합 내 우파세력은 메르켈 총리의 측근인 페터 알트마이어 경제에너지부 장관도 겨냥하고 있다.

알트마이어 장관 주도로 이달 중순 발표된 '국가산업전략 2030'을 놓고, 국가의 시장간섭이 크다는 이유로 거세게 비판했다.

알트마이어 장관에 대한 공격의 최종 목표지는 메르켈 총리일 수 있다.

크람프-카렌바우어가 대표직에 오른 후 안정적인 리더십을 보이면서 '포스트 메르켈'로서의 입지를 구축하는 점도 조기 퇴진론의 군불을 떼고 있다.

크람프-카렌바우어 대표는 적대적이던 당내 보수세력에도 손을 내밀며 당을 안정화시켰다.

더구나, 기독민주당 우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당 대표 선거에서 나섰던 프리드리히 메르츠 전 원내대표가 경제에너지부 장관직을 노리면서, 크람프-카렌바우어와 메르츠 간의 연대설도 흘러나왔다.

기민·기사당 연합의 지지층 이탈 현상이 계속되는 현상도 '메르켈 흔들기'를 부추긴다.

지난 21일 발표된 엠니드 여론조사에서 기민·기사당 연합의 지지율은 28%로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메르켈의 '끝까지 간다'…솔솔부는 조기퇴진론 이겨낼까
◇ 기민 주류·사민, 메르켈 조기퇴진 반대
그러나 현재로선 조기 퇴진론의 현실성은 크지 않다.

메르켈 총리의 우호세력인 기민당 주류가 조기 퇴진론을 비판하고 나섰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분의 2가 메르켈 총리의 잔여 임기 수행을 지지했다.

특히 대연정의 소수파인 사회민주당이 메르켈 총리의 교체를 원하지 않는다.

메르켈 총리와 크람프-카렌바우어 대표와의 우호적인 관계도 이어지고 있다.

메르켈 총리가 유럽의회 선거 캠페인에 나서지 않는 이유도 크람프-카렌바우어 대표의 활동 공간을 넓혀주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사민당의 지지율 부진 현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조기 총선을 초래할 수 있는 메르켈 총리의 퇴진이 달갑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민당은 엠니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18%에 불과했다.

2017년 총선 득표율 20%보다 낮은 데다, 지지율 상승세인 녹색당(19%)에도 뒤처졌다.

사민당이 메르켈 총리의 퇴진 후 대연정을 탈퇴하고, 기민·기사당 연합이 새로운 연정 파트너를 찾지 못해 조기 총선이 실시될 경우 사민당으로서는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셈이다.

기민·기사당 연합은 사민당이 돌아설 경우 녹색당, 자유민주당과 연정 구성에 나서려 하겠지만, 총선 득표율(8.9%)보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녹색당은 연정 참여보다 조기 총선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민주당의 라르스 클링바일 사무총장은 지난 16일 일간 자르브뤼커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메르켈 총리의 조기 퇴진 시 크람프-카렌바우어 대표를 총리로 선출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메르켈 총리의 조기 퇴진 문제는 올해 옛 동독지역인 작센, 브란덴부르크, 튀링겐(州)에서 치러지는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불거질 수 있다.

기민·기사당 연합이 부진한 결과를 얻을 경우 메르켈 총리의 입지가 약화할 수밖에 없다.

사민당 역시 성적표가 기대 이하일 경우 당내에서 대연정 탈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사민당이 올해 12월 전당대회를 열어 대연정 참여에 대한 중간평가를 진행하는 점도 메르켈 총리의 잔여 임기 수행 여부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