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펀드 몰락이 '코리아디스카운트'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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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코스피지수는 세계에서 가장 저평가된 증시 중 하나로 꼽힌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전문가들은 공모펀드의 몰락이 국내 증시 저평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증시가 오를만하면 펀드 환매에 따른 기관 매도가 끊임 없이 나오면서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스피 발목 잡는 펀드 환매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외국인 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54조7862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반면 같은 기간 국내 자산운용사(투자신탁)들은 49조1386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투자자들이 공모펀드에 등을 돌리면서 대규모 자금이 빠져나간 결과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는 1682.77에서 2179.31으로 고작 30.9% 올랐다. 같은 기간 미국 S&P500 지수는 3배 올랐고 일본 닛케이225 지수도 2배 넘게 상승했다. 적지 않은 외국인 자금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공모펀드 환매를 중심으로 한 국내 기관 매도가 발목을 잡으면서 주요국 지수와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결과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현재 코스피지수의 주가순자산비율(PBR: 주가/주당순자산)은 0.86배로 미국(3.90배), 일본(1.69배), 영국(1.68)은 물론 대만(1.52배), 중국(1.40배) 등 신흥국에도 미치지 못한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사장은 “한국 증시 저평가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국내 펀드자금이 들어오지 않는 문제가 더 크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의 외국인 비중이 높아지면서 변동성이 더욱 커진 문제도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미국은 주식형 펀드 자산이 전체 상장사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0%에 달한다. 일본과 영국도 각각 25%와 21%다. 한국은 4%에 불과하다. 2009년에는 펀드 자산 비중이 12%에 달했지만 공모펀드가 몰락하면서 3분의1로 쪼그라들었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마다 외국인 대량매도가 나타나면서 시장은 큰 충격을 받는다. 위기상황에서 국내 기관이 버텨줘야 하는데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수혈할 자금이 없다. 외국인 자금의 영향력이 워낙 커지다보니 국내 증시가 점점 더 외부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은 “펀드가 기업이익 증가와 가계자산 증대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 성장의 열매가 대부분 외국인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급성장한 헤지펀드는 증시에 毒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헤지펀드 시장은 증시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형 헤지펀드’의 순자산 규모는 30조6132억원에 달한다. 2016년말 6조6925억원에서 4배 이상 커졌다. 주식형 공모펀드들이 저평가된 주식을 매수해 오래 보유하는 ‘롱온리’ 전략을 쓰는 반면 헤지펀드는 주로 공매도를 활용한 롱쇼트, 메자닌(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 대체투자 등을 활용한다.
공매도란 특정 종목의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 매도 주문을 내는 투자 전략이다. 헤지펀드가 급성장하면서 공매도를 하기 위해 빌려놓은 자금인 대차잔액규모는 2017년초 48조1031억원에서 현재 68조2549억원으로 41.9% 늘었다. 한 공모펀드 매니저는 “공매도가 항상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락장에서 공매도가 몰리면 지수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작년부터 전환사채(CB) 발행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도 메자닌을 활용하는 헤지펀드 자금이 증가한 것과 관련이 깊다. CB는 주가가 떨어지면 주식으로 바꿀 때 적용되는 전환가액을 낮춰 조정(리픽싱)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CB전환에 따른 ‘매물 폭탄’이 쏟아지면 지분이 희석돼 주가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부동산 항공기 등에 투자하는 대체투자 자금은 아예 주식시장으로 들어올 일이 없다.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은 “부동산에 쏠린 자산을 생산적인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여야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며 “코스닥 활성화 등 증시 부양 정책이 성공하려면 공모펀드 시장부터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외국인 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54조7862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반면 같은 기간 국내 자산운용사(투자신탁)들은 49조1386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투자자들이 공모펀드에 등을 돌리면서 대규모 자금이 빠져나간 결과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는 1682.77에서 2179.31으로 고작 30.9% 올랐다. 같은 기간 미국 S&P500 지수는 3배 올랐고 일본 닛케이225 지수도 2배 넘게 상승했다. 적지 않은 외국인 자금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공모펀드 환매를 중심으로 한 국내 기관 매도가 발목을 잡으면서 주요국 지수와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결과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현재 코스피지수의 주가순자산비율(PBR: 주가/주당순자산)은 0.86배로 미국(3.90배), 일본(1.69배), 영국(1.68)은 물론 대만(1.52배), 중국(1.40배) 등 신흥국에도 미치지 못한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사장은 “한국 증시 저평가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국내 펀드자금이 들어오지 않는 문제가 더 크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의 외국인 비중이 높아지면서 변동성이 더욱 커진 문제도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미국은 주식형 펀드 자산이 전체 상장사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0%에 달한다. 일본과 영국도 각각 25%와 21%다. 한국은 4%에 불과하다. 2009년에는 펀드 자산 비중이 12%에 달했지만 공모펀드가 몰락하면서 3분의1로 쪼그라들었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마다 외국인 대량매도가 나타나면서 시장은 큰 충격을 받는다. 위기상황에서 국내 기관이 버텨줘야 하는데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수혈할 자금이 없다. 외국인 자금의 영향력이 워낙 커지다보니 국내 증시가 점점 더 외부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은 “펀드가 기업이익 증가와 가계자산 증대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 성장의 열매가 대부분 외국인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급성장한 헤지펀드는 증시에 毒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헤지펀드 시장은 증시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형 헤지펀드’의 순자산 규모는 30조6132억원에 달한다. 2016년말 6조6925억원에서 4배 이상 커졌다. 주식형 공모펀드들이 저평가된 주식을 매수해 오래 보유하는 ‘롱온리’ 전략을 쓰는 반면 헤지펀드는 주로 공매도를 활용한 롱쇼트, 메자닌(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 대체투자 등을 활용한다.
공매도란 특정 종목의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 매도 주문을 내는 투자 전략이다. 헤지펀드가 급성장하면서 공매도를 하기 위해 빌려놓은 자금인 대차잔액규모는 2017년초 48조1031억원에서 현재 68조2549억원으로 41.9% 늘었다. 한 공모펀드 매니저는 “공매도가 항상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락장에서 공매도가 몰리면 지수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작년부터 전환사채(CB) 발행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도 메자닌을 활용하는 헤지펀드 자금이 증가한 것과 관련이 깊다. CB는 주가가 떨어지면 주식으로 바꿀 때 적용되는 전환가액을 낮춰 조정(리픽싱)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CB전환에 따른 ‘매물 폭탄’이 쏟아지면 지분이 희석돼 주가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부동산 항공기 등에 투자하는 대체투자 자금은 아예 주식시장으로 들어올 일이 없다.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은 “부동산에 쏠린 자산을 생산적인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여야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며 “코스닥 활성화 등 증시 부양 정책이 성공하려면 공모펀드 시장부터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