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속도를 내려면 순풍(順風)만 필요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배를 몰아본 사람은 안다. 처음 배를 움직일 때는 순풍이 도움을 준다. 일정한 속도가 붙고 나면 그만이다. 순풍이 주는 추진력은 배와 바람의 상대속도로 결정되기 때문에, 바람과 배의 속도가 같아지면 더 이상 힘을 얻지 못한다. 배가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역풍(逆風)이 필요하다. 맞바람의 방향에 맞춰 적당히 돛의 각도를 틀어주면 강한 추진력이 생긴다. 배가 빨라질수록 강한 바람을 맞으면서 추진력은 점점 더 세진다.

항공기를 운항할 때도 마찬가지다. 비행기가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날개의 양력을 높여줄 역풍이 필요하다. 착륙할 때도 역풍을 받아야 활주로에서 빨리 멈출 수 있다. 공항마다 풍향에 맞춰 활주로의 이착륙 방향을 수시로 조정하는 이유다.

순풍과 역풍의 역설(逆說)은 물리학의 세계에만 있지 않다. ‘순풍에 돛 단 듯이’ 일사천리로 내달리려다가 낭패를 당하고 패가망신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 주위에 넘쳐난다. 1961년 미국에서 벌어진 ‘피그만 사건’이 전형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옛 소련과의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은 친(親)소련 공산당 정권을 수립한 ‘눈엣가시’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한 비밀작전을 폈다. 1400명의 쿠바 출신 정예요원으로 편성한 특공대를 피그만에 상륙시켜 ‘토벌’에 나서게 했다.

이들이 쿠바 땅에 발을 들여놓으면 내부에서 봉기가 일어나 카스트로 당시 정권이 붕괴될 것이라는 게 작전 시나리오(케네디도서관 기록물)였다. 이를 위해 쿠바 출신 망명자들을 ‘비밀리에’ 모집해 훈련시켰다. 결과는 대재앙이었다. 특공대원들은 제대로 상륙도 못한 채 쿠바군에 사살당하거나 포로가 됐다. 쿠바 정부를 전복하기는커녕, 국제적인 망신을 톡톡히 당한 데 더해 포로 송환을 위해 카스트로 정부에 5300만달러의 원조까지 제공해야 했다.

‘피그만 작전’은 조금만 짚어봤어도 찾아냈을 허점이 수두룩했다. 1400명의 지원자를 비밀리에 모집한다는 것부터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쿠바인들이 ‘마중물 봉기’에 나설 것이라던 예상도 ‘희망사항’이었다. 놀랍게도, 이렇게 엉성하고 황당한 작전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동안 케네디 정부 내의 누구도 반대의견을 내지 않았다. 딘 러스크 국무장관,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앨런 덜레스 CIA(중앙정보부) 부장 등 결정에 참여한 참모들이 모두 친구사이였던 탓이다.

성장 배경과 출신학교는 물론 사고방식까지 비슷했던 이들에게 ‘다른 목소리’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당시 대통령 특별보좌관이었던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는 “그들은 국사를 다루면서 사교클럽의 회원인 양 처신했다. 중요한 결정들이 클럽 회비를 얼마나 낼지 걱정하는 소규모 이사회처럼 훈훈한 동료애 속에서 이뤄졌다”는 회고를 남겼다. 미국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가 명명한 ‘집단사고(groupthink)’는 이 사건에서 유래했다. 친한 사람들끼리만 모여 있으면 정신능력과 현실 검증능력은 물론, 도덕적 판단력까지 떨어져 잘못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숱한 ‘불통(不通)’ 논란을 빚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참고할 만한 이야기다. 요즘 국내 생산 소비 투자 수출 고용 등 거의 모든 경제지표의 하락·감소·둔화세가 뚜렷해지면서 ‘심각한 위기상황’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무엇이 문제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정부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에만 귀를 기울이는’ 게 치명적인 문제라는 세간의 우려가 크다.

대통령은 최악의 성장률과 산업생산지표가 발표된 며칠 전에도 “국가 경제가 견실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고, 청와대 비서실장은 “좋은 경제지표를 찾아내 국민에게 알리라”는 지시를 내려 구설에 올랐다. 그래도 희망을 갖는 건 대통령이 독서를 즐긴다는 점이다. 독서는 성찰과 숙고의 힘을 키워준다. 대통령의 독서 목록에 피그만 사건 등의 교훈을 정리한 카스 선스타인의 저서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가 들어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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