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전면철거 방식 재개발 줄줄이 제동…"동의율 등 재검증하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전농9 등에 동의서 검증 지시
송파구는 주민동의율 75% 요구
송파구는 주민동의율 75% 요구
서울에서 전면 철거 방식의 재개발을 추진 중인 지역이 잇따라 암초를 만나고 있다. 사업 준비 단계부터 서울시가 동의서 검증과 동의율 확보 등을 이유로 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아파트 비율 상향 조정 등 사업 진행 과정에서의 허들도 더욱 늘었다. 층수, 외관 디자인 등 정비계획도 서울시 입맛에 맞게 짜야 한다. 재개발 전문가들은 “정비사업을 통한 공급을 더욱 꽉 막았다”며 “기존 신축 아파트 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한다.
더 험난해진 재개발
1일 동대문구에 따르면 재개발을 재추진 중인 전농동 103 일대 주민의 정비구역 지정 요청에 대해 서울시가 최근 재검증을 지시했다. 동의율 요건을 제대로 갖췄는지, 토지 등 소유자의 소유권이 바뀌지 않았는지 등을 다시 살펴보라는 것이다. 애초 올 하반기께로 예상되던 정비구역 지정이 더 늦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곳은 과거 전농뉴타운 9구역으로 묶여 한 차례 재개발을 추진했던 곳이다. 그러나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다시 재개발 바람이 분 것은 집값이 급등한 지난해부터다. 주민들은 연말께 이곳 4만5527㎡의 땅을 정비구역으로 지정해달라고 동대문구에 요청했다. 주민 동의율은 60%대였다. 토지 면적 기준으로 토지 등 소유자 절반 이상의 동의서도 걷었다. 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 998가구의 새 아파트를 짓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올 들어 공람·공고까지 마치는 등 재개발 재추진이 순항하는 듯했지만 서울시가 막판에 제동을 걸었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서울시가 공람 의견을 통해 동의율과 동의서의 적정성 여부를 재검증하도록 지시했다”며 “접수한 동의서의 토지 등 소유자가 주민 제안 시점의 소유자가 맞는지 등을 일일이 검증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검증 과정에서 구역 지정이 얼마나 지연될지는 미지수다. 과거엔 서울시가 정비예정구역을 지정하면 주민이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세웠다. 지금은 반대다. 서울시가 구역 지정을 하지 않다 보니 주민들이 먼저 요청해야 한다. 주민 제안이 있으면 서울시가 검토한 뒤 정비구역으로 지정한다. 이 과정에서 주민 동의율 요건을 채워야 한다.
동의율 조건을 갖췄지만 사업 진행이 한발짝도 못 나가는 곳도 있다. 송파구 마천동 183 일대(옛 마천2구역) 주민들은 동의율 72%를 채우고도 여전히 추가로 동의서를 취합 중이다. 김원기 추진위원장은 “송파구가 조합설립 단계에서나 필요한 동의율 75%를 미리 맞춰오도록 요구하고 있다”며 “법에도 없는 기준 때문에 사업을 시작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작도 못 하는 곳 늘어날 듯
지난해 주민의견 조사를 마친 성동구 금호동 3가의 1 일대(옛 금호21구역) 재개발도 난항을 겪고 있다. 사전 타당성 조사를 마치고도 이렇다 할 진척이 없다. 지난달 서울시가 발표한 ‘도시·건축혁신안’을 적용받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동구 관계자는 “적용 여부 등과 관련해 서울시와 협의 중”이라며 “아직 확정된 건 없다”고 전했다. 도시·건축혁신안은 재개발 등 정비사업 초기 단계부터 서울시가 개입해 지침을 제시하는 게 골자다. 대단지는 잘게 쪼개 보행로를 여럿 내고 구릉지는 아파트 높이에 차이를 두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서울시는 이 같은 ‘사전 공공기획’으로 심의 횟수와 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재개발을 추진 중인 곳에선 반발이 심하다. 금호동 A공인 관계자는 “사업성이 높아야 동의율도 높아지는 재개발사업 구조를 놓고 보면 만만치 않은 장애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입안 제안도 하지 못한 곳의 재개발은 더욱 험난할 전망이다. 정부가 법령 개정을 통해 재개발구역 임대아파트 비율을 최고 30%까지 끌어올리기로 해서다. 임대아파트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일반분양분이 줄어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여기에 서울시가 2021년까지 마련하기로 한 ‘2030 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도 초기 단계 사업장의 동력을 떨어뜨리는 내용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면 철거보다는 구역 내 곳곳에 건물과 시설을 남기는 형태의 수복재개발을 지향하기로 한 까닭이다. 규제가 중첩되면서 최근 5년간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구역이 다섯 곳에 그쳤다.
타격이 불가피한 곳은 용산구 청파1구역과 망리단길 주변 망원동 405 일대 등 재개발 추진 검토 지역들이다. 망원동 B공인 관계자는 “지분이 작은 단독주택은 3.3㎡당 4500만원 선에 거래됐는데 없어서 못 팔았다”며 “사업이 삐끗하면 그 가격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재개발 바람이 다시 불던 염리동 105 일대(옛 염리5구역)도 다시 잠잠해지는 분위기다. 염리동 B공인 관계자는 “한가운데 박힌 KT 건물을 존치하면 과거처럼 구역이 사실상 잘게 쪼개진다”며 “주변에 상가가 많아 반대 목소리가 만만찮은데 사업성까지 떨어진다면 재개발을 진행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서울은 새 아파트 공급 방법이 한정돼 있는데 이게 막히면 3~4년 안에 집이 더욱 부족해진다”며 “기존 아파트 가격은 더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1일 동대문구에 따르면 재개발을 재추진 중인 전농동 103 일대 주민의 정비구역 지정 요청에 대해 서울시가 최근 재검증을 지시했다. 동의율 요건을 제대로 갖췄는지, 토지 등 소유자의 소유권이 바뀌지 않았는지 등을 다시 살펴보라는 것이다. 애초 올 하반기께로 예상되던 정비구역 지정이 더 늦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곳은 과거 전농뉴타운 9구역으로 묶여 한 차례 재개발을 추진했던 곳이다. 그러나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다시 재개발 바람이 분 것은 집값이 급등한 지난해부터다. 주민들은 연말께 이곳 4만5527㎡의 땅을 정비구역으로 지정해달라고 동대문구에 요청했다. 주민 동의율은 60%대였다. 토지 면적 기준으로 토지 등 소유자 절반 이상의 동의서도 걷었다. 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 998가구의 새 아파트를 짓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올 들어 공람·공고까지 마치는 등 재개발 재추진이 순항하는 듯했지만 서울시가 막판에 제동을 걸었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서울시가 공람 의견을 통해 동의율과 동의서의 적정성 여부를 재검증하도록 지시했다”며 “접수한 동의서의 토지 등 소유자가 주민 제안 시점의 소유자가 맞는지 등을 일일이 검증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검증 과정에서 구역 지정이 얼마나 지연될지는 미지수다. 과거엔 서울시가 정비예정구역을 지정하면 주민이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세웠다. 지금은 반대다. 서울시가 구역 지정을 하지 않다 보니 주민들이 먼저 요청해야 한다. 주민 제안이 있으면 서울시가 검토한 뒤 정비구역으로 지정한다. 이 과정에서 주민 동의율 요건을 채워야 한다.
동의율 조건을 갖췄지만 사업 진행이 한발짝도 못 나가는 곳도 있다. 송파구 마천동 183 일대(옛 마천2구역) 주민들은 동의율 72%를 채우고도 여전히 추가로 동의서를 취합 중이다. 김원기 추진위원장은 “송파구가 조합설립 단계에서나 필요한 동의율 75%를 미리 맞춰오도록 요구하고 있다”며 “법에도 없는 기준 때문에 사업을 시작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작도 못 하는 곳 늘어날 듯
지난해 주민의견 조사를 마친 성동구 금호동 3가의 1 일대(옛 금호21구역) 재개발도 난항을 겪고 있다. 사전 타당성 조사를 마치고도 이렇다 할 진척이 없다. 지난달 서울시가 발표한 ‘도시·건축혁신안’을 적용받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동구 관계자는 “적용 여부 등과 관련해 서울시와 협의 중”이라며 “아직 확정된 건 없다”고 전했다. 도시·건축혁신안은 재개발 등 정비사업 초기 단계부터 서울시가 개입해 지침을 제시하는 게 골자다. 대단지는 잘게 쪼개 보행로를 여럿 내고 구릉지는 아파트 높이에 차이를 두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서울시는 이 같은 ‘사전 공공기획’으로 심의 횟수와 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재개발을 추진 중인 곳에선 반발이 심하다. 금호동 A공인 관계자는 “사업성이 높아야 동의율도 높아지는 재개발사업 구조를 놓고 보면 만만치 않은 장애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입안 제안도 하지 못한 곳의 재개발은 더욱 험난할 전망이다. 정부가 법령 개정을 통해 재개발구역 임대아파트 비율을 최고 30%까지 끌어올리기로 해서다. 임대아파트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일반분양분이 줄어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여기에 서울시가 2021년까지 마련하기로 한 ‘2030 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도 초기 단계 사업장의 동력을 떨어뜨리는 내용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면 철거보다는 구역 내 곳곳에 건물과 시설을 남기는 형태의 수복재개발을 지향하기로 한 까닭이다. 규제가 중첩되면서 최근 5년간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구역이 다섯 곳에 그쳤다.
타격이 불가피한 곳은 용산구 청파1구역과 망리단길 주변 망원동 405 일대 등 재개발 추진 검토 지역들이다. 망원동 B공인 관계자는 “지분이 작은 단독주택은 3.3㎡당 4500만원 선에 거래됐는데 없어서 못 팔았다”며 “사업이 삐끗하면 그 가격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재개발 바람이 다시 불던 염리동 105 일대(옛 염리5구역)도 다시 잠잠해지는 분위기다. 염리동 B공인 관계자는 “한가운데 박힌 KT 건물을 존치하면 과거처럼 구역이 사실상 잘게 쪼개진다”며 “주변에 상가가 많아 반대 목소리가 만만찮은데 사업성까지 떨어진다면 재개발을 진행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서울은 새 아파트 공급 방법이 한정돼 있는데 이게 막히면 3~4년 안에 집이 더욱 부족해진다”며 “기존 아파트 가격은 더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