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兆 '통큰 투자' 후유증…주가 짓눌린 기업들
최근 2~3년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기업들이 감가상각 부담이 크게 늘면서 고전하고 있다. 업황이 둔화되면서 매출이 예상만큼 늘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감가상각비가 부메랑으로 돌아오면서 실적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기업이 에쓰오일이다. 에쓰오일은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이 2704억원으로 직전 분기 대비 흑자 전환했다. 지난해 동기 대비로는 6.2% 늘었다. 하지만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 관련 이익 약 2000억원을 빼면 의미 있는 이익 개선은 아니라는 평가다. 백영찬 KB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대규모 증설로 석유화학 부문의 파라자일렌(PX) 수익성 하락이 예상되고, 정유 부문도 계절적 비수기와 신규 물량 증가로 정제 마진 개선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부터 감가상각 비용이 늘어나며 에쓰오일의 수익성을 더욱 압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에쓰오일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4조8000억원을 들여 울산에 잔사유 고도화 설비(RUC)와 올레핀 하류 설비(ODC)를 지었다. 총투자비 4조8000억원은 재무제표에 유형자산으로 올라간 뒤 30년 동안 매년 약 1600억원씩 감가상각비로 반영한다.

2017년 2854억원에서 작년 3459억원으로 증가한 에쓰오일의 유형자산 감가상각비는 올해 5700억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이 설비는 에쓰오일 연간 매출을 2조5000억원, 영업이익을 4000억원가량 늘릴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까지는 실적 기여도가 미미하다. 양형모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에선 하반기부터 신규 설비가 본격적으로 실적 개선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불확실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 에쓰오일 주가는 지난 3월 말 1년 최저가인 8만8500원까지 떨어진 뒤 9만원대에서 횡보하고 있다. 현재 주가(9만2200원)는 지난해 10월 1년 최고가보다 33% 떨어져 있다.

롯데케미칼도 감가상각 부담이 크게 늘면서 힘겨워하고 있다. 작년 6029억원인 감가상각비는 올해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설비투자액이 지난 3년간 5조4545억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 주가는 지난달 30만원대를 잠시 회복했다가 다시 미끄러져 26만8500원까지 내려왔다. 지난해 10월 말 기록한 1년 신저가(24만7000원)에 근접하는 모양새다.

업황이 꺾여 고전하고 있는 반도체 업체들도 감가상각 부담이 심해지고 있다. 삼성전자 감가상각비는 2016년 16조원에서 작년 25조원으로 불어났다. 2017년 43조원, 지난해 30조원을 설비투자에 쓴 영향이다. 매출은 줄었는데 매출원가는 늘면서 삼성전자의 매출총이익률은 지난 1분기 32.8%로 1년 전 52.7%에서 크게 낮아졌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역대 최대인 16조원을 설비투자에 쓰면서 감가상각비가 증가 추세다.

빚을 내 투자한 기업은 이자 비용 부담까지 감내하고 있다. 대한해운은 선박 매입 등에 지난 3년간 1조4642억원을 투자하면서 감가상각비가 연간 1000억원대로 늘었다. 여기에 총차입금이 1조8000억원대로 증가하면서 작년 이자 비용만 800억원에 이른다. 카지노·리조트 업체인 파라다이스도 이자 비용이 2017년 251억원, 2018년 330억원으로 늘어나며 2년 연속 순손실을 냈다.

■감가상각비

건물 설비 등 고정자산 취득에 투입된 자본을 매년 나눠 비용으로 회수하는 것을 말한다. 해당 고정자산의 가치는 최종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됐을 때 모두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 사용기간에 걸쳐 평균적으로 감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정자산에 따라 일정한 산정 방식으로 비용을 계산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