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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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모 부장은 마음이 들떴다. 꿈에 그리던 경기 판교의 정보기술(IT) 업체로부터 지난달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사 책임자와 만나 협상에 들어간 김 부장은 몇 가지 걸림돌을 만났다.

우선 연봉이 예상보다 낮았다. 그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자 인사 책임자는 김 부장이 받는 급여와 동일한 수준으로 연봉을 맞춰주겠다고 했다. ‘3개월 수습’ 조건도 문제였다. 모든 직원에게 적용되는 인사 규정이라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김 부장은 이번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인사 책임자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수습 기간을 면제해 주기로 했다.

“이제 됐습니까?” 인사 책임자는 물었다. 김 부장은 “하나만 더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서울로 이사하는 것은 제 가족에게 작은 일이 아닙니다. 아내는 새 직장을 알아봐야 할 테고요. 근무 시작 일을 한 달만 미뤄도 되겠습니까.” 인사 책임자는 “생각해보고 답변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1주일 뒤 김 부장에게 이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인사 책임자였다. “그동안 말씀드렸던 채용 제의를 철회합니다.”

김 부장은 어안이 벙벙했다. 출근을 한 달 뒤로 미뤄주지 않는다고 해서 이직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이야기를 한번 꺼내 보고자 했을 뿐이다. 김 부장은 지인을 통해 내막을 알아봤다. “그런 식이라면 입사 후에는 더할 것”이라는 게 회사의 판단이었다. 인사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채용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직은 무산됐다. 물론 김 부장은 현재 직장을 잘 다니고 있다. 하지만 좋은 기회를 날린 것에 대해서는 크게 자책하고 있다. 인사 책임자의 제안을 군소리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고 생각한다.

김 부장이 협상에 실패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협상은 상호작용적이다. 상대방에게 추가로 요구할 때 상대방도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상대를 물고 늘어지려 한다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선까지 상대를 밀어붙일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상대 제안보다 좀 더 나가보는 것이다. 상대가 어디까지 양보해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한속도가 시속 100㎞인 고속도로에서 시속 105㎞로 달린다고 해서 속도위반으로 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속 120㎞를 넘긴다면 자신의 운을 과신하는 것이다. 김 부장은 마지막에 ‘물어봐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인사 책임자는 그 질문을 요구로 들었고, 수용 한계선을 넘었던 것이다.

마지막에 하나 더 물었을 뿐인데…金부장, 이직 협상 실패한 까닭은
현실적으로 한계선은 가늠하긴 어렵다. 그래서 노련한 협상가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예컨대 인사 책임자가 제시한 조건을 그대로 수락하는 것이다. 꽤 괜찮은 조건이지 않은가. 그 정도에서 수락해도 나쁘지 않다. 대신 다른 조건을 붙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그런데 출근을 한 달 후로 늦추는 것은 어렵겠죠”라고 넌지시 조건을 던져보는 것이다. 핵심은 ‘요구’가 아니라 ‘의사 타진’이다. 공을 상대에게 넘기는 것이다. 받아주면 좋고 아니면 마는 식이다.

한 번 지나간 협상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명심하자.

이태석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