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왜 잡스式 혁신 없냐고?…그는 처음부터 '관리의 달인'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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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hot 북스
린더 카니 '팀 쿡'
애플 입사 후 획기적 재고 감축
글로벌 가치사슬도 완성시켜
린더 카니 '팀 쿡'
애플 입사 후 획기적 재고 감축
글로벌 가치사슬도 완성시켜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팀 쿡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갑자기 집으로 불러 차기 CEO를 맡아달라고 했다.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의 일이다. 대부분 언론은 잡스가 병환 중이지만 회사를 계속 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굳이 차기 CEO 후보를 꼽는다 해도 쿡은 세간에서 지목한 후보 반열에 들어가지 못했다. 언론들은 오히려 수석디자이너였던 조너선 아이브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스콧 포스톨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잡스는 쿡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에게 부탁했다. “‘잡스라면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에게 걸맞은,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하세요.” ‘잡스의 애플’이 아니라 ‘쿡의 애플’ 시대가 열렸을 때 쿡의 나이 불과 50세였다. 그로부터 8년간 애플은 연매출 265억달러, 시가총액 1조달러를 넘나드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과연 쿡의 어떤 매력을 잡스가 눈여겨봤을까. 쿡은 어떻게 잡스 사후의 애플을 성공 궤도에 안착시켰을까. 애플을 20년간 취재한 기자 출신인 린더 카니가 쿡의 인생 여정과 경영 철학 등을 소개한 《팀 쿡(Tim Cook)》(부제: 애플을 다음 단계로 끌어올린 천재, 펭귄 출간)이 미국 서점가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책에서 잡스와 쿡의 경영스타일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대목은 찾기 힘들다. 책은 그저 쿡의 일생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하며 그의 성공 비결과 매력을 탐구한 일대기다. 하지만 그 속에서 두 사람은 자연스레 비교된다.
저자는 먼저 애플 입사 이전 쿡의 경력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앨라배마주 출신으로 산업공학을 전공한 그는 IBM에서 12년간 근무한 뒤 당시 컴퓨터 제조사로 이름을 날리던 컴팩으로 옮겼다. 컴팩은 중국과 대만 기업에서 아웃소싱을 많이 했다. 여기서 쿡은 파트너 기업들과 제품 개발 및 물류 관리 등을 정비하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하며 글로벌 유통·재고 관리 노하우를 배웠다.
잡스가 쿡을 처음 만난 건 그가 물류 관리와 경영 관리에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고 있던 1998년이었다. 쿡의 나이 37세였다. 잡스는 쿡에게 영입 조건으로 부사장 타이틀과 기본급 40만달러, 성과급 50만달러를 제시했다. 당시 부도 직전이었던 애플로선 엄청난 조건을 제시한 것이었다. 저자는 “잡스는 자신이 갖지 못한 그 무엇을 쿡이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쿡은 입사한 뒤 바로 애플의 재고 관리에 손을 댔다. 당시 애플은 다품종 소량생산 위주여서 생산력에 맞지 않게 많은 재고를 안고 있었다. 그는 재고 창고에서 고객에게 직접 배송하는 등 혁신을 통해 재고를 줄여나갔다. 재고 목록을 매일 살피는 시스템도 갖췄다. 입사한 지 7개월 만에 재고의 절반 이상을 줄였다. 1999년에는 이틀분의 재고만 허용하는 체제로 전환했다. 경쟁사는 물론 사내에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도록 조용하게 재고를 정리했다. 잡스가 이런 쿡의 성과를 높이 산 건 물론이다.
쿡은 다음으로 글로벌 아웃소싱을 시작했다. 컴팩 때부터 중국에 진출한 대만 업체들을 눈여겨본 그는 아이폰 생산량의 90%를 팍스콘 중국 공장에 맡겼다. 부품도 전 세계에서 소싱했다. 애플이 자랑하는 글로벌 가치 사슬이 쿡의 손에서 이뤄졌다.
잡스는 쿡의 천재성을 금방 파악했다. 2005년 COO를 그만두게 하고 인사관리, 연구개발 등 다양한 분야의 일을 맡겼다. 잡스의 심중에는 차기 CEO로 쿡이 낙점돼 있었다.
쿡은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CEO다. 다른 정보기술(IT) 기업처럼 고객 데이터와 정보를 활용해 사업을 펼칠 생각이 없다. 기업은 제품과 물건을 팔아야지 데이터와 같은 무형자산은 현금화할 수 없다는 신념을 지녔다. 이런 그의 경영철학이 도움이 된 사업도 있다. 보안에 강점을 지녀 히트 상품이 된 애플 페이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일에 대한 쿡의 열정이 남다르다고 설명한다. 하루 12~13시간 일하고 밤에도 이메일 등을 체크한다.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없지만 잘못된 사실이 발각되면 크게 역정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쿡이 과연 잡스처럼 파괴적 혁신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엔 모든 사람이 의문을 품는다. 그는 결코 ‘프로덕트 가이’가 아니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제품 혁신은 그의 할 일이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쿡이 엄청난 돌파구를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지속적인 개선을 이끌어왔고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이 책은 쿡이 어떤 CEO인지 이해하는 데는 유용하다. 하지만 애플과 쿡이 추구하는 미래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쿡의 애플’은 아직 그 영광을 말하기에는 이르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하지만 잡스는 쿡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에게 부탁했다. “‘잡스라면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에게 걸맞은,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하세요.” ‘잡스의 애플’이 아니라 ‘쿡의 애플’ 시대가 열렸을 때 쿡의 나이 불과 50세였다. 그로부터 8년간 애플은 연매출 265억달러, 시가총액 1조달러를 넘나드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과연 쿡의 어떤 매력을 잡스가 눈여겨봤을까. 쿡은 어떻게 잡스 사후의 애플을 성공 궤도에 안착시켰을까. 애플을 20년간 취재한 기자 출신인 린더 카니가 쿡의 인생 여정과 경영 철학 등을 소개한 《팀 쿡(Tim Cook)》(부제: 애플을 다음 단계로 끌어올린 천재, 펭귄 출간)이 미국 서점가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책에서 잡스와 쿡의 경영스타일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대목은 찾기 힘들다. 책은 그저 쿡의 일생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하며 그의 성공 비결과 매력을 탐구한 일대기다. 하지만 그 속에서 두 사람은 자연스레 비교된다.
저자는 먼저 애플 입사 이전 쿡의 경력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앨라배마주 출신으로 산업공학을 전공한 그는 IBM에서 12년간 근무한 뒤 당시 컴퓨터 제조사로 이름을 날리던 컴팩으로 옮겼다. 컴팩은 중국과 대만 기업에서 아웃소싱을 많이 했다. 여기서 쿡은 파트너 기업들과 제품 개발 및 물류 관리 등을 정비하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하며 글로벌 유통·재고 관리 노하우를 배웠다.
잡스가 쿡을 처음 만난 건 그가 물류 관리와 경영 관리에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고 있던 1998년이었다. 쿡의 나이 37세였다. 잡스는 쿡에게 영입 조건으로 부사장 타이틀과 기본급 40만달러, 성과급 50만달러를 제시했다. 당시 부도 직전이었던 애플로선 엄청난 조건을 제시한 것이었다. 저자는 “잡스는 자신이 갖지 못한 그 무엇을 쿡이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쿡은 입사한 뒤 바로 애플의 재고 관리에 손을 댔다. 당시 애플은 다품종 소량생산 위주여서 생산력에 맞지 않게 많은 재고를 안고 있었다. 그는 재고 창고에서 고객에게 직접 배송하는 등 혁신을 통해 재고를 줄여나갔다. 재고 목록을 매일 살피는 시스템도 갖췄다. 입사한 지 7개월 만에 재고의 절반 이상을 줄였다. 1999년에는 이틀분의 재고만 허용하는 체제로 전환했다. 경쟁사는 물론 사내에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도록 조용하게 재고를 정리했다. 잡스가 이런 쿡의 성과를 높이 산 건 물론이다.
쿡은 다음으로 글로벌 아웃소싱을 시작했다. 컴팩 때부터 중국에 진출한 대만 업체들을 눈여겨본 그는 아이폰 생산량의 90%를 팍스콘 중국 공장에 맡겼다. 부품도 전 세계에서 소싱했다. 애플이 자랑하는 글로벌 가치 사슬이 쿡의 손에서 이뤄졌다.
잡스는 쿡의 천재성을 금방 파악했다. 2005년 COO를 그만두게 하고 인사관리, 연구개발 등 다양한 분야의 일을 맡겼다. 잡스의 심중에는 차기 CEO로 쿡이 낙점돼 있었다.
쿡은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CEO다. 다른 정보기술(IT) 기업처럼 고객 데이터와 정보를 활용해 사업을 펼칠 생각이 없다. 기업은 제품과 물건을 팔아야지 데이터와 같은 무형자산은 현금화할 수 없다는 신념을 지녔다. 이런 그의 경영철학이 도움이 된 사업도 있다. 보안에 강점을 지녀 히트 상품이 된 애플 페이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일에 대한 쿡의 열정이 남다르다고 설명한다. 하루 12~13시간 일하고 밤에도 이메일 등을 체크한다.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없지만 잘못된 사실이 발각되면 크게 역정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쿡이 과연 잡스처럼 파괴적 혁신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엔 모든 사람이 의문을 품는다. 그는 결코 ‘프로덕트 가이’가 아니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제품 혁신은 그의 할 일이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쿡이 엄청난 돌파구를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지속적인 개선을 이끌어왔고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이 책은 쿡이 어떤 CEO인지 이해하는 데는 유용하다. 하지만 애플과 쿡이 추구하는 미래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쿡의 애플’은 아직 그 영광을 말하기에는 이르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