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최영일 "나는 '다독가' 아닌 '책장수'…감성 담긴 '내 집 같은 서점' 만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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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일 영풍문고 대표
"첫 직장서 운명처럼 떠난 어학연수
콘텐츠기업 경영 27년 출발점"
"첫 직장서 운명처럼 떠난 어학연수
콘텐츠기업 경영 27년 출발점"
최영일 영풍문고 대표(64)의 삶을 관통하는 단어는 ‘콘텐츠’다. 그는 인생 절반을 여러 콘텐츠 기업을 경영하며 보냈다. 월트디즈니코리아와 워너브러더스코리아의 최고경영자(CEO)로서 캐릭터 개발과 콘텐츠 라이선스 판매 경험을 쌓았다. 장난감 전문기업 오로라월드에서는 고리타분한 봉제완구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업을 캐릭터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개발 전략을 통해 ‘캐릭터 콘텐츠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2015년 3월 영풍문고 대표로 영입된 그는 서점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콘텐츠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4년 사이 영풍문고는 평범한 대형 서점이 아니라 이야기와 개성을 담은 ‘서점다운 서점’으로 변신했다. 영풍문고 점포는 21개에서 43개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지난달 26일 서울 논현동에 있는 중국음식점 취영루에서 최 대표를 만났다. 식당에 들어서자 ‘70년 전통’이라는 입간판과 함께 고소한 중국요리 향기가 반겼다.
운명처럼 떠난 어학연수가 인생 바꿔
자리에 앉자 노릇하게 튀겨내 매콤한 소스로 버무린 칠리새우와 간장 양념으로 볶아낸 고추잡채가 테이블에 올랐다. 최 대표가 즐겨 먹는 메뉴다. 그는 칠리새우를 집어들고는 식기 전에 빨리 맛보라고 권했다. 씹자마자 바삭한 식감과 함께 탱글탱글한 새우 속살이 입안을 감쌌다. 고추잡채는 마늘과 양파 향이 어우러져 감칠맛이 났다.
취영루와의 인연을 묻자 최 대표는 ‘구내식당’ 같은 곳이라고 했다. 취영루 길 건너편에 영풍문고 본사가 있다. 그는 1주일에 평균 한 번 이상, 한 달에 대여섯 번 찾는다고 했다. “인공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맛이 있을까 싶었는데 정말 맛있더라고요.”
30년 가까이 줄곧 대표직만 맡아온 그의 여정이 궁금했다. 최 대표는 “첫 직장에서 보내준 미국 어학연수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꿨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동국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효성에 입사했다. 해외영업 부서에서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미국 어학연수를 가고 싶었지만 차장 부장도 아닌 평사원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화장실에서 만난 사장이 “너 화장실에서도 깍듯이 인사하는 놈 아니냐”며 웃으며 그를 알아봤다. 최 대표는 “기회라고 생각해 그의 무릎을 부여잡고 ‘돈은 제가 낼 테니 제발 여권만 내달라’고 하소연했는데 진짜 여권을 내주더라”고 털어놨다. 당시만 해도 여권을 발급받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고 서류 발급 등에 회사의 지원이 필요했다.
그렇게 6개월간 미국 어학연수를 다녀왔지만 고민은 더 깊어졌다. 직원들은 그에게 ‘영어가 늘었을 테니 진급용 토플 시험을 도와달라’고 했다. 최 대표는 “겉으론 자신만만했지만 사실 스트레스였다”며 “주변 시선 때문에 귀국 후 남몰래 밤마다 어학원에서 토플에 매달렸다”고 했다. 결국 회사에서 두 번째로 높은 토플 점수를 얻었고 미국 대학원 입학에 필요한 GMAT 점수까지 받았다. 이왕 점수를 받은 김에 더 깊이 공부하고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1983년 미국 이스턴미시간대 대학원 유학길에 올라 국제경제학 석사학위를 땄다.
외국계 회사 이력이 독특한 강점으로
1990년대 초 한국에 진출하려는 외국계 회사들은 ‘영어를 잘하고 마케팅 기술을 갖춘, 젊고 실행력이 뛰어난 인재’를 찾았다. 유학 후 홍콩의 무역회사 리&풍, 미국 기념품 제작사인 프랭클린민트 등에서 이력을 쌓은 최 대표는 여기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37세이던 1992년 월트디즈니코리아 초대 사장에 발탁됐다. 그는 성과로 능력을 증명했다. 최 대표는 “직원들과 인형 샘플을 20L 가방에 넣어 한국과 디즈니랜드가 있는 일본 도쿄를 오가며 거래처를 찾아다녔다”며 “4억원이던 초기 매출이 캐릭터 라이선스 판매로 3년 반 만에 250억원까지 늘었다”고 말했다. 그의 능력을 눈여겨본 미국 기업인들의 추천으로 2006년엔 미국 콘텐츠 기업 워너브러더스의 한국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도 10억원 정도이던 라이선스 수입을 20억원으로 불렸다.
2012년 오로라월드 사장으로 영입된 그는 봉제인형에 영혼과 이야기를 불어넣은 ‘유후와 친구들’을 내놔 유럽과 북미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오로라월드의 캐릭터 디자인 제작 및 판매 능력과 YG엔터테인먼트의 음악 콘텐츠를 결합해 ‘싸이’ ‘빅뱅’ 캐릭터의 세계 라이선싱 계약도 맺었다. 그는 “서점은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허브”라며 “20년 가까이 콘텐츠 분야에서 쌓은 경험이 이야기를 담은 개성 있는 서점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생존 위해선 ‘경쟁사’와도 손잡아야
영풍문고는 오프라인 대형서점업계 매출 2위다. 지난해 매출은 1443억원. 2017년(1365억원)에 비해 늘어났지만 여전히 1위인 교보문고 매출(5684억원)의 4분의 1 수준이다. 영업이익에선 경쟁사들을 압도한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2.77%. 1%가 채 안 되는 교보문고(0.88%) 서울문고(0.85%)와 비교된다.
최 대표는 “복합쇼핑몰에 새로 연 점포의 성과가 좋았다”고 했다. 영풍문고는 지난해 강남 포스코점, 가산 마리오점을 새롭게 열고 스타필드 코엑스몰, 용산 현대아이파크몰 등에 입점했다. 최 대표는 직접 발로 뛰며 입점을 성사시켰다. 그는 “1등은 못 되더라도 교보문고와 지점 수 게임은 해보고 싶었다”며 “내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2등 서점에 누가 입점 허가를 내주겠냐”고 되물었다.
최 대표는 생존을 위해 과감히 승부수를 던졌다. 경쟁사들과 손을 잡은 것이다. 인터파크와는 매장 픽업 서비스를 함께한다. 인터파크 도서 모바일에서 책을 구매하고 영풍문고에서 바로 수령할 수 있는 서비스다. 예스24와는 ‘중고도서 매입서비스’를 함께한다. 영풍문고는 예스24로부터 중고책 매입 수수료를 받고, 예스24는 배송료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최 대표는 “교보문고만큼 클 수 없다면 달라져야 했다”며 “제휴는 책이란 매개의 판매 허브를 키우는 것이자 소비자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벽지 직접 고르며 서점 인테리어 진두지휘
취임 직후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으로부터 “‘서점다운 서점’을 만들라”는 임무를 받았다. 그는 그 뜻을 이해하는 데 한참 걸렸다고 했다. “서점다운 서점이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 다를 겁니다. 결국 그저 각자의 취향이나 느낌대로 즐길 수 있는 ‘내 집 같은 서점’을 만들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도서정가제로 어느 서점이나 책 가격은 다 같잖아요. 그렇다면 ‘여긴 좀 다르네’라는 느낌을 전달하자는 거였어요.”
그는 경직된 회사 분위기와 서점 문화부터 싹 바꿨다. 월요회의 땐 지점장들과 화상으로 만난다. 원격회의와 더불어 지점장들을 정기적으로 순환시켜 ‘고인 물’이 되지 않도록 했다. 영업이 부진한 지점은 질책하는 대신 본사 직원들을 내려보내 인테리어부터 서점 구조까지 개선했다. “이전보다 한 회사라는 마음이 더 강해졌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잘못하면 후임자가 다 뒤집어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하나하나 더 꼼꼼하게 챙기게 됐다고도 합니다.”
최 대표는 감성을 담은 서점을 강조했다. 대표적인 예가 인테리어였다. 그는 서울 황학동 시장까지 발품을 팔아 벽 시트지를 사올 정도로 서점 인테리어를 진두지휘했다. “제 일의 3분의 1은 매장 구조와 인테리어를 기획하고 점검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책을 파는 곳이지만 획일화된 서점 스타일보다는 특징 있는 디자인을 도입해 ‘독자들이 찾고 싶은 서점’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한국 영화의 메카로 불리는 부산 남포동 매장은 영화관 좌석에 영사기까지 배치하며 서점 전체를 영화관 콘셉트로 바꿔놨죠.”
“책을 많이 읽느냐”는 질문엔 손을 내저었다. “서점에서 책을 판다고 책을 많이 읽는 건 아니에요. 건축과 미술, 여행, 요리에 관한 책을 모으긴 하지만 다 읽진 않아요. 저는 책장수입니다. 책의 내용을 파는 출판업자가 아니라 책이라는 보물이 모여 있는 공간을 파는 사람입니다. 좋은 책을 쓰고 펴내는 사람들과 그 책을 즐기려는 사람이 모이는 장소가 서점인 만큼 기억에 남는 서점을 만드는 것이 지금 제가 할 일이죠.”
■영풍문고는…
1992년 설립된 영풍문고는 모회사인 영풍그룹이 문화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세운 대형 서점 운영업체다. 교보문고, 반디앤루니스를 운영하는 서울문고와 함께 대한민국 3대 대형 서점으로 꼽힌다. 첫 서점인 종각점을 시작으로 여의도 IFC몰점, 스타필드 코엑스점, 대구 반월당점, 광주 터미널점 등 전국 43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영풍문고는 오프라인 서점 중 최초로 인터넷 서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대형 서점으로는 처음으로 종각점에 ‘독립형 만화 코너’를 설치해 운영했다. 지난해에는 인터파크와 ‘매장픽업서비스’를, 예스24와 제휴해 ‘중고도서 매입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혁신적인 경영 전략을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약력
△1955년 서울 출생
△1974년 서울사대부고 졸업
△1979년 동국대 무역학과 졸업
△1985년 미 이스턴미시간대 석사
△1992~2000년 월트디즈니코리아 사장
△2006~2012년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사장
△2012년~2013년 3월 오로라월드 대표
△2014년 대원미디어 세일즈&마케팅 자문
△2015년 5월~ 영풍문고 대표 ■최영일 대표의 단골집 취영루
70년 전통…담백한 물만두 '대표메뉴'
서울 지하철 7호선 논현역 2번 출구에서 나오자마자 왼쪽 골목으로 20여m 내려와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중식당 취영루가 보인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70년 전통 중화요리’라는 간판이 손님을 반긴다. 취영루는 1945년 해방 당시 서울 소공동에서 출발했다. 1988년 개업한 논현점도 31년째 영업 중이다. 취영루는 인스턴트 식자재와 인공 조미료를 쓰지 않고 해산물과 채소로 만든 천연 조미료만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 메뉴는 물만두다. ‘취영루 물만두’는 물만두의 대명사처럼 쓰일 정도다. 부추와 돼지고기를 잔뜩 넣어 담백하다. 탕수육도 유명하다.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로 만든다. 튀김옷을 얇게 입힌 뒤 바삭하게 튀겨내 덜 느끼하다. 여기에 달콤한 소스가 특유의 감칠맛을 낸다. 라조육도 숨은 인기 메뉴다. 매콤한 소스에 소고기 등심을 넣고 고추 양파 등 싱싱한 채소와 볶아낸다. 부드럽게 씹히는 소고기의 고소함이 일품이다.
물만두 5000원, 소고기탕수육 2만4000원(소)~5만4000원(대), 라조육 3만8000원(소)~7만5000원(대). 영업시간은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3시, 오후 5시부터 9시30분까지, 명절 당일과 현충일을 제외하고 매일 정상 영업한다.
은정진/윤정현 기자 silver@hankyung.com
2015년 3월 영풍문고 대표로 영입된 그는 서점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콘텐츠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4년 사이 영풍문고는 평범한 대형 서점이 아니라 이야기와 개성을 담은 ‘서점다운 서점’으로 변신했다. 영풍문고 점포는 21개에서 43개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지난달 26일 서울 논현동에 있는 중국음식점 취영루에서 최 대표를 만났다. 식당에 들어서자 ‘70년 전통’이라는 입간판과 함께 고소한 중국요리 향기가 반겼다.
운명처럼 떠난 어학연수가 인생 바꿔
자리에 앉자 노릇하게 튀겨내 매콤한 소스로 버무린 칠리새우와 간장 양념으로 볶아낸 고추잡채가 테이블에 올랐다. 최 대표가 즐겨 먹는 메뉴다. 그는 칠리새우를 집어들고는 식기 전에 빨리 맛보라고 권했다. 씹자마자 바삭한 식감과 함께 탱글탱글한 새우 속살이 입안을 감쌌다. 고추잡채는 마늘과 양파 향이 어우러져 감칠맛이 났다.
취영루와의 인연을 묻자 최 대표는 ‘구내식당’ 같은 곳이라고 했다. 취영루 길 건너편에 영풍문고 본사가 있다. 그는 1주일에 평균 한 번 이상, 한 달에 대여섯 번 찾는다고 했다. “인공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맛이 있을까 싶었는데 정말 맛있더라고요.”
30년 가까이 줄곧 대표직만 맡아온 그의 여정이 궁금했다. 최 대표는 “첫 직장에서 보내준 미국 어학연수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꿨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동국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효성에 입사했다. 해외영업 부서에서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미국 어학연수를 가고 싶었지만 차장 부장도 아닌 평사원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화장실에서 만난 사장이 “너 화장실에서도 깍듯이 인사하는 놈 아니냐”며 웃으며 그를 알아봤다. 최 대표는 “기회라고 생각해 그의 무릎을 부여잡고 ‘돈은 제가 낼 테니 제발 여권만 내달라’고 하소연했는데 진짜 여권을 내주더라”고 털어놨다. 당시만 해도 여권을 발급받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고 서류 발급 등에 회사의 지원이 필요했다.
그렇게 6개월간 미국 어학연수를 다녀왔지만 고민은 더 깊어졌다. 직원들은 그에게 ‘영어가 늘었을 테니 진급용 토플 시험을 도와달라’고 했다. 최 대표는 “겉으론 자신만만했지만 사실 스트레스였다”며 “주변 시선 때문에 귀국 후 남몰래 밤마다 어학원에서 토플에 매달렸다”고 했다. 결국 회사에서 두 번째로 높은 토플 점수를 얻었고 미국 대학원 입학에 필요한 GMAT 점수까지 받았다. 이왕 점수를 받은 김에 더 깊이 공부하고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1983년 미국 이스턴미시간대 대학원 유학길에 올라 국제경제학 석사학위를 땄다.
외국계 회사 이력이 독특한 강점으로
1990년대 초 한국에 진출하려는 외국계 회사들은 ‘영어를 잘하고 마케팅 기술을 갖춘, 젊고 실행력이 뛰어난 인재’를 찾았다. 유학 후 홍콩의 무역회사 리&풍, 미국 기념품 제작사인 프랭클린민트 등에서 이력을 쌓은 최 대표는 여기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37세이던 1992년 월트디즈니코리아 초대 사장에 발탁됐다. 그는 성과로 능력을 증명했다. 최 대표는 “직원들과 인형 샘플을 20L 가방에 넣어 한국과 디즈니랜드가 있는 일본 도쿄를 오가며 거래처를 찾아다녔다”며 “4억원이던 초기 매출이 캐릭터 라이선스 판매로 3년 반 만에 250억원까지 늘었다”고 말했다. 그의 능력을 눈여겨본 미국 기업인들의 추천으로 2006년엔 미국 콘텐츠 기업 워너브러더스의 한국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도 10억원 정도이던 라이선스 수입을 20억원으로 불렸다.
2012년 오로라월드 사장으로 영입된 그는 봉제인형에 영혼과 이야기를 불어넣은 ‘유후와 친구들’을 내놔 유럽과 북미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오로라월드의 캐릭터 디자인 제작 및 판매 능력과 YG엔터테인먼트의 음악 콘텐츠를 결합해 ‘싸이’ ‘빅뱅’ 캐릭터의 세계 라이선싱 계약도 맺었다. 그는 “서점은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허브”라며 “20년 가까이 콘텐츠 분야에서 쌓은 경험이 이야기를 담은 개성 있는 서점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생존 위해선 ‘경쟁사’와도 손잡아야
영풍문고는 오프라인 대형서점업계 매출 2위다. 지난해 매출은 1443억원. 2017년(1365억원)에 비해 늘어났지만 여전히 1위인 교보문고 매출(5684억원)의 4분의 1 수준이다. 영업이익에선 경쟁사들을 압도한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2.77%. 1%가 채 안 되는 교보문고(0.88%) 서울문고(0.85%)와 비교된다.
최 대표는 “복합쇼핑몰에 새로 연 점포의 성과가 좋았다”고 했다. 영풍문고는 지난해 강남 포스코점, 가산 마리오점을 새롭게 열고 스타필드 코엑스몰, 용산 현대아이파크몰 등에 입점했다. 최 대표는 직접 발로 뛰며 입점을 성사시켰다. 그는 “1등은 못 되더라도 교보문고와 지점 수 게임은 해보고 싶었다”며 “내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2등 서점에 누가 입점 허가를 내주겠냐”고 되물었다.
최 대표는 생존을 위해 과감히 승부수를 던졌다. 경쟁사들과 손을 잡은 것이다. 인터파크와는 매장 픽업 서비스를 함께한다. 인터파크 도서 모바일에서 책을 구매하고 영풍문고에서 바로 수령할 수 있는 서비스다. 예스24와는 ‘중고도서 매입서비스’를 함께한다. 영풍문고는 예스24로부터 중고책 매입 수수료를 받고, 예스24는 배송료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최 대표는 “교보문고만큼 클 수 없다면 달라져야 했다”며 “제휴는 책이란 매개의 판매 허브를 키우는 것이자 소비자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벽지 직접 고르며 서점 인테리어 진두지휘
취임 직후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으로부터 “‘서점다운 서점’을 만들라”는 임무를 받았다. 그는 그 뜻을 이해하는 데 한참 걸렸다고 했다. “서점다운 서점이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 다를 겁니다. 결국 그저 각자의 취향이나 느낌대로 즐길 수 있는 ‘내 집 같은 서점’을 만들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도서정가제로 어느 서점이나 책 가격은 다 같잖아요. 그렇다면 ‘여긴 좀 다르네’라는 느낌을 전달하자는 거였어요.”
그는 경직된 회사 분위기와 서점 문화부터 싹 바꿨다. 월요회의 땐 지점장들과 화상으로 만난다. 원격회의와 더불어 지점장들을 정기적으로 순환시켜 ‘고인 물’이 되지 않도록 했다. 영업이 부진한 지점은 질책하는 대신 본사 직원들을 내려보내 인테리어부터 서점 구조까지 개선했다. “이전보다 한 회사라는 마음이 더 강해졌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잘못하면 후임자가 다 뒤집어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하나하나 더 꼼꼼하게 챙기게 됐다고도 합니다.”
최 대표는 감성을 담은 서점을 강조했다. 대표적인 예가 인테리어였다. 그는 서울 황학동 시장까지 발품을 팔아 벽 시트지를 사올 정도로 서점 인테리어를 진두지휘했다. “제 일의 3분의 1은 매장 구조와 인테리어를 기획하고 점검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책을 파는 곳이지만 획일화된 서점 스타일보다는 특징 있는 디자인을 도입해 ‘독자들이 찾고 싶은 서점’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한국 영화의 메카로 불리는 부산 남포동 매장은 영화관 좌석에 영사기까지 배치하며 서점 전체를 영화관 콘셉트로 바꿔놨죠.”
“책을 많이 읽느냐”는 질문엔 손을 내저었다. “서점에서 책을 판다고 책을 많이 읽는 건 아니에요. 건축과 미술, 여행, 요리에 관한 책을 모으긴 하지만 다 읽진 않아요. 저는 책장수입니다. 책의 내용을 파는 출판업자가 아니라 책이라는 보물이 모여 있는 공간을 파는 사람입니다. 좋은 책을 쓰고 펴내는 사람들과 그 책을 즐기려는 사람이 모이는 장소가 서점인 만큼 기억에 남는 서점을 만드는 것이 지금 제가 할 일이죠.”
■영풍문고는…
1992년 설립된 영풍문고는 모회사인 영풍그룹이 문화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세운 대형 서점 운영업체다. 교보문고, 반디앤루니스를 운영하는 서울문고와 함께 대한민국 3대 대형 서점으로 꼽힌다. 첫 서점인 종각점을 시작으로 여의도 IFC몰점, 스타필드 코엑스점, 대구 반월당점, 광주 터미널점 등 전국 43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영풍문고는 오프라인 서점 중 최초로 인터넷 서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대형 서점으로는 처음으로 종각점에 ‘독립형 만화 코너’를 설치해 운영했다. 지난해에는 인터파크와 ‘매장픽업서비스’를, 예스24와 제휴해 ‘중고도서 매입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혁신적인 경영 전략을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약력
△1955년 서울 출생
△1974년 서울사대부고 졸업
△1979년 동국대 무역학과 졸업
△1985년 미 이스턴미시간대 석사
△1992~2000년 월트디즈니코리아 사장
△2006~2012년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사장
△2012년~2013년 3월 오로라월드 대표
△2014년 대원미디어 세일즈&마케팅 자문
△2015년 5월~ 영풍문고 대표 ■최영일 대표의 단골집 취영루
70년 전통…담백한 물만두 '대표메뉴'
서울 지하철 7호선 논현역 2번 출구에서 나오자마자 왼쪽 골목으로 20여m 내려와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중식당 취영루가 보인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70년 전통 중화요리’라는 간판이 손님을 반긴다. 취영루는 1945년 해방 당시 서울 소공동에서 출발했다. 1988년 개업한 논현점도 31년째 영업 중이다. 취영루는 인스턴트 식자재와 인공 조미료를 쓰지 않고 해산물과 채소로 만든 천연 조미료만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 메뉴는 물만두다. ‘취영루 물만두’는 물만두의 대명사처럼 쓰일 정도다. 부추와 돼지고기를 잔뜩 넣어 담백하다. 탕수육도 유명하다.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로 만든다. 튀김옷을 얇게 입힌 뒤 바삭하게 튀겨내 덜 느끼하다. 여기에 달콤한 소스가 특유의 감칠맛을 낸다. 라조육도 숨은 인기 메뉴다. 매콤한 소스에 소고기 등심을 넣고 고추 양파 등 싱싱한 채소와 볶아낸다. 부드럽게 씹히는 소고기의 고소함이 일품이다.
물만두 5000원, 소고기탕수육 2만4000원(소)~5만4000원(대), 라조육 3만8000원(소)~7만5000원(대). 영업시간은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3시, 오후 5시부터 9시30분까지, 명절 당일과 현충일을 제외하고 매일 정상 영업한다.
은정진/윤정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