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1호점 개장 첫 날 새벽부터 긴 줄
스페셜티 커피 강자 블루보틀
한국인이 불러들인 블루보틀
블루보틀은 2002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커피 브랜드다.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이 183㎡의 원예 창고를 빌려 직접 커피콩을 볶으면서 시작했다. 작은 차에 커피를 싣고 다니며 주말 장터에서 팔다 17년 만에 미국과 일본 등에 70여 개 매장을 거느리게 됐다. 2017년 9월에는 네슬레로부터 4900억원을 투자받았다. ‘블루보틀’이라는 브랜드는 300여 년 전 아랍인들이 오스트리아 빈에 처음 커피를 전파해 생긴 중부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 ‘더 블루보틀’에서 따왔다. 새로운 커피 문화를 전파하겠다는 의미였다.
한국은 블루보틀이 일본에 이어 두 번째 진출한 국가가 됐다. 2년 넘게 블루보틀이 언제 들어올 것이란 소문이 무성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블루보틀이 한국에 진출한 데는 ‘팬덤’이 작용했다. 한국인들은 미국과 일본 블루보틀 매장을 드나들며 “한국에도 와달라”고 수년간 러브콜을 보냈다. 브라이언 미한 블루보틀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인들이 커피에 대해 얼마만큼 강한 열정이 있는지 오랜 시간 확신했다”며 “성수 1호점을 시작으로 삼청동점, 강남점 등으로 확장해 블루보틀 문화를 알릴 것”이라고 했다. 블루보틀 뭐길래
정식 오픈을 하루 앞둔 지난 2일 오후 블루보틀을 찾았다. 마이클 필립스 블루보틀 커피문화 총괄책임자는 케냐 싱글 오리진 원두를 추천한 뒤 천천히 드립 커피를 만들었다. “케냐 싱글 오리진입니다. 가볍게 로스팅해서 상큼한 맛을 끌어올렸는데, 어떤가요?”
미국 출신의 커피 세계 챔피언이자 유명 바리스타로 활동 중인 필립스는 블루보틀에서 트레이닝 책임, 카페 운영 책임 등을 지냈다. 커피를 내리고 내어주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줬다. 그는 “커피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맛을 느껴보라”고도 조언했다. 커피를 만들 때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손님의 이름을 직접 불러주는 방식으로 서비스한다.
블루보틀이 스페셜티 커피 시장에서 강력한 브랜드가 되는데 이 서비스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두의 차별화와 로스팅의 특별함도 있지만, 손님을 대하는 ‘특별하고 섬세한 과정’ 자체가 강점이 됐다. 캐주얼하고 자유로운 미국식 에스프레소 기기 기반의 커피 문화에 블루보틀은 ‘천천히 그리고 다양하게’ 맛을 즐기는 커피 문화를 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지브롤터 등의 에스프레소 기반 메뉴도 있지만 시그니처 메뉴는 원두의 개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드립 커피다.
스페셜티 커피란
‘스페셜티 커피’는 커피업계 ‘제3의 물결’로 불리는 세계적인 트렌드다. 국제 스페셜티커피협회(SCA) 기준으로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 받은 원두를 ‘스페셜티’로 부른다. 하지만 진정한 스페셜티 커피는 엄격하게 관리되고 제대로 로스팅 및 추출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커피나무 상태, 커피 농장 농부, 생두에 등급을 매기는 커퍼, 생두의 맛과 향을 끌어올리는 로스터, 이를 최적의 한 잔으로 만들어내는 바리스타까지 모든 과정이 중요하다.
블루보틀이라는 강력한 브랜드가 상륙하면서 국내 스페셜티 커피업계도 들썩이고 있다. 한국은 유로모니터의 세계 카페 시장 조사에서 규모로 미국, 중국에 이어 3위(약 5조6000억원)를, 카페에서의 1인당 연간 소비액은 2위(92.3달러)다. ‘커피볶는집’이라는 상호가 1990년대부터 곳곳에 생겨났을 정도로 로스팅 문화의 뿌리가 깊다.
20년 전 스타벅스가 1호점을 내면서 에스프레소 기반의 ‘아메리카노’ 문화를 전파했다면 2010년 전후로 개성 강한 자신만의 커피 원두를 선보이는 브랜드들이 생겨났다. 이들 브랜드는 직접 원두 산지에서 좋은 원두를 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로스팅했다. 3~4년 전부터 매장을 2개 이상 복수로 운영하는 브랜드도 생겼다. 프?츠커피컴퍼니는 도화점 양재점 등 3개점을 운영하고 있다. 2000년 초반 강릉에서 시작한 테라로사는 광화문 여의도 등 전국 18개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 이 밖에 어니언 카페(3곳), 펠트커피(2곳), 커피리브레(4곳), 앤트러사이트(6곳) 등이 있다. 커피업계는 블루보틀의 한국 진출에 대해 스타벅스 등 대형 브랜드 등을 통해 공간 소비 위주로 성장해온 카페 문화가 본격적으로 커피 본연의 맛에 집중하는 질적 성장으로 나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커피 브랜드에는 요즘 대기업의 플래그십 매장이나 주요 갤러리에서 입점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 협업 요청도 많다.
프린츠커피컴퍼니는 체계적이고 성공적인 레트로 블렌딩과 커피, 베이커리 품질 등으로 ‘가장 한국적인 카페 문화’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니아층이 많아져 커피 원두 유통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커피리브레는 커피 산지와의 강력한 네트워크로 스페셜티 커피업계를 이끌어온 브랜드다. 테라로사는 스페셜티 커피 문화가 대형화, 산업화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브랜드로 통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