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트럼프’라 불리는 궈타이밍(郭台銘) 훙하이그룹 창업자 겸 회장(사진 가운데)이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을 찾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면담했다. 명목상의 이유는 홍하이그룹의 자회사 폭스콘의 미국 위스콘신주 투자계획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면에는 그가 내년 1월 치러질 대만 총통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만큼 트럼프 대통령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과시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79년 미국과 대만의 국교가 끊어진 이후 대만 총통 선거 후보가 미국 대통령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 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대우하는 게 ‘하나의 중국(一個中國)’ 원칙에 위배된다며 대만 인사들의 공식적인 외교 행보를 경계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의식해 궈 회장과의 면담에서 총통 선거와 관련된 이야기는 가급적 피했다. 백악관은 2일(현지시간) 성명에서 면담과 관련해 “총통 선거에서의 지지는 논의하지 않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궈 회장이 훌륭한 친구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궈 회장도 대만 기자단에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와 관련해 격려해줬다”고만 설명했다.

대만에서는 경기침체에 따른 민심이반으로 현재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연임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인 민진당은 참패했다. 대만의 22개 직할시장 및 현장 가운데 민진당 소속은 13명에서 6명으로 쪼그라든 반면, 제1야당인 국민당 소속은 6명에서 15명으로 늘었다.

국민당 총통 후보로 거물급 인사들이 출사표를 던진 것도 내년 선거 전망과 관련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지난달 출마 선언을 한 궈 회장은 대만에서 ‘성공신화’로 통한다. 한 해운회사 사원으로 시작해 현재 폭스콘 샤프 등을 포함해 13개 계열사를 거느린 연매출 184조원에 달하는 훙하이그룹을 일궈냈다. 그는 미국 경제지 포브스 평가 기준 75억달러(약 8조4000억원·2017년)의 재산을 보유한 대만 최고 부자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의 ‘아성’이라 불리는 가오슝시에서 국민당 소속으로 시장에 당선된 한궈위(韓國瑜) 역시 유력한 대권 후보로 꼽힌다. 기업들의 투자 유치 등 경제살리기를 최우선과제로 내걸면서 실용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그의 인기는 전국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한류열풍’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다. 3일 대만 연합보에 따르면 내년 총통선거에 그가 국민당 후보로 나왔을 때를 가정한 여론조사에서 차이 총통을 7%포인트 이상 앞지르며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차이 총통이 민진당의 공천을 받을 수 있을지 여부도 안갯속이다. 라이칭더(頼清徳) 전 행정원장이 ‘反중국·대만독립’이라는 선명노선을 내걸며 민진당 지지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어서다. 3일 대만 연합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년 총통선거 민진당 후보 적합도에서 라이 전 원장이 차이 총통보다 15%포인트 이상 앞섰다. 여론조사에서는 민진당 후보로 라이 전 원장이 출마하더라도 국민당 후보들에게 모두 뒤지는 것으로 나왔다.

현재까지 여론의 흐름이라면 국민당 후보가 내년 선거에서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2016년 차이 정부 출범 이후 반중으로 돌아섰던 대만의 대중국정책이 다시 친중 쪽으로 회귀할 전망이다. 친중성향의 한 시장은 차이 정부가 반중정책으로 양안관계 관리에 실패하고 있다고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대표적인 친중 인사 중 한명인 궈 회장은 아예 사업기반 대부분이 중국에 있다. 현지 고용인원만 100만여명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국민당이 집권하면 산업 분야 전반에서 중국에 예속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만에서는 최근 중국이 대만 반도체 업계의 인재들을 모두 흡수해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TSMC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몰려있는 대만 신주시의 공업지구에는 연구개발(R&D) 거점을 구축하는 중국 기업들이 부쩍 늘고 있다. 대만 현지 매체들은 “신주 지역은 법적으로 중국기업들의 R&D 거점 설치는 금지돼 있지만, 영업을 하겠다는 명목으로 들어와 고액 연봉으로 대만 기술자들을 빼내, 암암리에 기술을 흡수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