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올 들어 법안 심사의 ‘1차 관문’인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평균 한 달에 한 번도 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 안 하는 국회’ ‘식물 국회’ 등의 오명을 남긴 19대 때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4월 국회는 여야가 일정 합의도 하지 못한 채 7일 회기를 마치게 됐다. 정치권에선 더불어민주당 등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후폭풍으로 국회 파행이 장기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넉 달간 상임위 회의 달랑 3회…사상최악 치닫는 '20대 식물국회'
올해 한 번도 소위 못 연 문체위·정보위

5일 한국경제신문이 국회 16개 상임위 회의 개최 횟수를 분석한 결과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평균 3.1회 회의를 열었다. 법안 심사를 위해 한 달에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상임위가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다.

이는 연초부터 손혜원 의원(무소속)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과 장관급 고위공직자 후보자 임명 논란, 패스트트랙 지정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길어지면서 국회가 공전했기 때문이다. 2016년 4월 총선을 1년여 앞둔 19대 국회 때(2015년 1월 1일~4월 30일) 평균 5.1회 모인 것보다 적은 수준이다.

문화체육관광위와 정보위원회 등 두 곳은 올 들어 법안심사소위를 단 한 번도 열지 않았다. 문체위는 손혜원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야당이 회의를 전면 보이콧(의사 일정 거부)하면서 개의하지 못했다.

손 의원은 민주당을 탈당하기 전 문체위 여당 간사였다. 상임위 전체회의도 마찬가지다. 문체위는 이 기간 5차례 전체회의를 열었지만 그중 네 차례는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와 청문보고서 채택을 위한 것이었다. 나머지 한 번은 손 의원에게 부동산 투기 의혹 관련 진상규명을 요구하기 위해 18분간만 회의를 열었다. 법안 논의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경제 활성화 법안이 다수 있는 상임위의 개의 실적도 저조한 것은 마찬가지다. ‘빅데이터 3법’ 중 신용정보 이용·보호법을 담당하는 정무위는 관련 소위를 두 번 연 데 그쳤다. 19대 때 총선을 1년 앞두고 넉 달간 정무위는 소위를 12차례 열었다. 작년 같은 기간에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총 5회)은 모여 법안을 논의했다.

정무위 민주당 간사인 유동수 의원은 “민주당에서 통과시키고 싶은 법안과 야당의 의견차가 너무 크다 보니 법안 심사조차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소위 개의 횟수만 보면 의원들이 모두 총선 유세차 지역구에 내려가 국회가 안 돌아가는 국회 임기 마지막 해와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 등이 걸려 있는 기획재정위도 소위를 두 번밖에 열지 못했다. 8차례나 모인 4년 전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갈 길 먼 국회 정상화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발하며 장외투쟁을 본격화한 자유한국당과 조속한 국회 정상화를 촉구하는 여야 4당의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각 상임위 소위도 장기간 못 열릴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5월 임시국회를 소집해 정부가 제출한 6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안,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조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강원도 산불로 사회적 요구가 커진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을 위한 소방기본법 개정안, 혁신성장을 뒷받침하는 빅데이터 3법 등을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강병원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한국당이 안보와 경제, 민생을 걱정한다면 있어야 할 곳은 국회”라며 “장외투쟁으로 국민을 더욱 분노하게 한다면 한국당은 영원히 미래가 없는 정당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한국당은 당분간 장외투쟁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불법적으로 패스트트랙을 강행해 놓고 국회로 들어와 민생을 논의하자는 적반하장 여당과 여당 야합세력을 심판해달라”며 당분간 국회에 복귀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5월 임시국회가 정상적으로 이뤄질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권 일각에선 오는 8일 열리는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을 계기로 여야가 협상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꾸려진 뒤 한국당이 국회 정상화를 위한 조건을 내걸어 장외투쟁의 출구전략을 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