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몰아치는 아베…새 日王 즉위하자 '전쟁할 수 있는 나라' 포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나루히토(德仁) 새 일왕 즉위를 계기로 헌법 개정 ‘군불 때기’에 본격 나섰다. 7월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승리한 뒤 내년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 아베 총리의 목표다. 주변국의 반발이 예상될 뿐 아니라 일본 내에서도 개헌 동력이 그리 강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개헌론을 다시 들고나온 것은 7월 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일 새 일왕 즉위를 전후해 한동안 수면 아래 감춰둔 개헌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23일 유럽 순방 중 일본 내 초당파 국회의원 모임인 ‘신헌법 제정 의원연맹’ 행사에 보낸 메시지가 신호탄이었다. 당시 아베 총리는 “레이와(令和)의 새 시대가 시작되면 국가 미래상에 대해 정면 토론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 일왕 즉위 뒤엔 아베 총리의 용어가 선명해지고, 발언의 강도도 세졌다. 그는 1일 우익 성향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집권 자민당은 헌법 개정의 깃발을 계속 들고 있다”고 했다. 또 “과거에는 헌법 개정이 당론이었음에도 당내에서 개헌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여지가 없게 됐다”며 “개헌 관련 당내 논쟁은 끝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일 ‘헌법의 날’을 맞아 우익단체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선 “헌법에 자위대를 확실히 명기해 위헌 논쟁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발언의 강도를 높였다. “2020년 개헌 목표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며 개헌 목표 시점도 분명히 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만들어진 현행 일본국헌법(평화헌법) 9조는 1항에 전쟁 포기를, 2항에 전력 불보유를 명기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라 일본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방어만 하는 ‘전수방위’만 인정된다. 군대를 보유할 수 없어 자위대를 운영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 같은 전후체제를 ‘비정상’으로 보고 교전권 확보를 ‘보통국가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일단 헌법 9조를 유지한 채 자위대를 명기하는 개헌을 하고, 향후 9조 1항과 2항을 바꾸는 단계적 개헌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아베 총리가 때아닌 개헌론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국내 정치를 의식한 것이란 분석이 많다. 실제 개헌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넘어야 할 ‘장애물’도 적지 않고, 일본 내 개헌 여론도 미지근하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몇 년간 일본 중·참의원의 행보는 아베 총리 구상과 달리 개헌 작업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올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여권 지지층을 결집하고 당내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개헌론에 불을 지폈다는 시각이다.

개헌을 하려면 중의원(하원·465석)과 참의원(상원·248석)에서 각각 정족수의 3분의 2 이상이 발의하고 국민투표에서 과반이 찬성해야 한다. 현재 중의원은 집권 자민당을 비롯해 개헌 찬성파가 3분의 2를 넘지만 참의원은 7월 선거에서 여권이 압승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국민투표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최근 아사히신문 조사에 따르면 아베 총리의 개헌안에 대해선 반대 48%, 찬성 42%로 반대 여론이 많다.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도 개헌 반대가 48%로 찬성(31%) 여론을 크게 웃돌았다.

아베 총리는 연일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위한 개헌을 재촉하고 있지만, 새 일왕은 ‘평화’를 강조하고 있어 대비된다. 나루히토 일왕은 4일 고쿄(皇居·왕궁)에서 열린 일반 국민 초대 행사에서도 “세계 평화를 추구하길 기원한다”고 언급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