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인 딤섬의 역사는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먹던 간단한 음식에서 시작됐다.
홍콩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인 딤섬의 역사는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먹던 간단한 음식에서 시작됐다.
추억을 소환하는 딤섬의 향기

“지금 대륙에서 엄청난 관광객이 몰려오지요. 신계(新界) 쪽에도 많이 옵니다.”

버스를 타고 오는 하루짜리 관광객이 많다고 한다. 중국인에게 홍콩은 무엇일까.

“서양 느낌이 나니까요. 물건을 사러도 많이 와요. 쇼핑 하면 홍콩이잖아요.”

안내인이 말한다. 공항에서 나를 태운 차는 시내로 뚫린 도로로 진입한다.

“그새 공항이 활주로가 모자란다고 해요. 원래 공항은 시내에 있었지요.”

영화에도 등장하던, 시내의 빌딩숲 사이를 스칠 듯 이착륙하던 비행기를 보았었다. 오래전 일이다. 옛날, 그냥 홍콩을 갔던 적이 있다. ‘관광’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던. 영어를 못하는 나는 아시아를 많이 다녔다. 거긴 한자가 있기 때문이다. 알아먹기 어려운 간자도 아닌, 정자체(번체)로 써 있는 홍콩과 대만, 일본이 그래서 편했다.
호젓한 시간, 茶 한잔에 딤섬을…전통의 '얌차 문화' 속으로
“광둥어를 배워봐요. 의외로 보통화(표준어)보다 쉬워요. 한국어처럼 기역 받침도 있다니까요.”

표준어는 기역 받침이 없다. 표준어의 성조는 4개다. 광둥어는 9개다.

“제가 이제 광둥어를 배워서 뭐하게요. 그저 모르는 채로 구경하는 게 더 좋아요.”

나도, 안내인도 웃었다. 그래서 홍콩은 늘 안갯속의 섬이다. 물론 여러 개의 섬과 반도로 이루어진 곳이지만. 차는 구룡쪽으로 들어섰다. 간장과 가금류 냄새가 나는 듯했다. 실제의 냄새가 아니라, 어쩌면 그것은 내가 기억하는 홍콩의 냄새를 소환해낸 것일지도 모른다.

일부러 딤섬만 먹고 다닌 적도 있었다. 새우를 넣어 투명하게 빚는 하가우, 달콤한 돼지고기가 들어간 만두 시우마이의 맛을 비교했었다. 정교한 손놀림으로 빚은 작은 만두들을 도대체 이렇게 싸게, 맛있게 만들어도 되는 건지 걱정했다. 요리사는 요리사 걱정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던 딤섬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맛이 없어진 것 같았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랬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홍콩 젊은이들이 누가 종일 만두를 빚겠어요. 품질이 떨어진다는 말들이 있었지요.”

전통이 느껴지는 노포 린흥티하우스

20년 전쯤, 홍콩에 이미 요리사들이 귀해졌다. 중국 본토에서 젊은이들이 몰려왔다. 일한 만큼 번다, 본토에 ‘개체호’라는 자본주의 개인 소득의 실험이 시작된 이후였다. 홍콩은 더 벌 수 있었으리라. 당시, 본토 출신인 한 젊은 요리사에게 들은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홍콩 전통시장에서 옛날식으로 고기를 잘라 파는 상인.
홍콩 전통시장에서 옛날식으로 고기를 잘라 파는 상인.
“우리는 쉬지 않아요. 벌어서 고향에 가야죠.”

그들은 한 달에 하루 쉰다고 했다. 하루 노동시간도 아주 길었다. 딤섬의 맛이 변했는지 어땠는지 몰라도, 민중의 삶은 변한 것 같지 않았다. 하늘처럼 치솟아 있는 아파트엔 아무나 들어가서 살 수 없다. 엄청나게 비싸다. 결혼하고서도 집을 못 구해서 각자 본가에서 사는 신혼부부도 있다고 한다. 홍콩 정부(행정청)는 골머리를 앓는다. 끊임없이 새로운 택지를 개발한다. 그래도 집이 부족하다. 집이 없으면 요리를 할 수 없다. 집도 덥다. 있어도 좁은 집이다. 웬만하면 밥을 사먹는다. 신혼부부가 아침에 밖에서 같이 밥 먹고 출근하고, 역시 밖에서 저녁밥 먹고 귀가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그것이 홍콩의 밥집 번성을 가져왔다고도 한다.

딤섬의 고향 같은, 노포 린흥티하우스를 들렀다. 한국인들도 많이 간다. 원하는 딤섬을 못 먹을 수도 있다는 별난 딤섬집이다. 인기 있는 딤섬을 실은 캐리어가 굴러오면 재빨리 주문표를 내고 딤섬을 받아야 한다. 그런 수고를 거치지 않으면 한참을 또 기다려야 한다. 대중적이지 않은 딤섬은 주문해서 탁자에서 받아 먹으면 된다. 어느 것을 시키든, 초보 미식가들에게는 부담스럽다. 담백하고 단맛이 돌며 양념이 세지 않은 것이 광둥의 요리법이지만 중국 음식 특유의 향이 배어 있다. 널리고 널린 딤섬집을 놔두고 내가 이 집을 좋아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오전 느지막한 시간에 가면 볼 수 있는 이 집의 풍경 때문이다. 단골 노인들이 두세 접시의 딤섬을 시켜놓고 얌차를 한다. 얌차란 딤섬을 뜻하기도 하고, 문자 그대로 차를 마신다는 뜻도 된다. 딤섬의 역사가 그렇다. 차를 마시며 간단한 먹을거리를 곁들이던 것이 지금의 버라이어티한 딤섬 문화로 커졌다. 노인들은, 지금도 이렇게 전통 있는 딤섬집에 와서 얌차한다. 가볍게, 가볍게. 주말 경마 예상지를 보거나 신문을 읽거나. 그 광경은 마치 우리 아버지들이 예전에 다방에 앉아 쌍화차를 곁들여 신문을 보시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미쉐린 셰프의 딤섬집 팀호안

한국인에게, 아니 홍콩을 찾는 세계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딤섬집을 들라면 팀호안이다. 호텔 출신의 유명한 셰프가 차린 대중적인 딤섬집. 미쉐린 원스타를 받으면서 세계적으로 더 유명해졌다. 별 받은 스티커를 문짝에 빼곡하게 붙여 놓았는데, 어떤 해에는 별이 없어진 적도 있다. 무슨 이유일까. 미쉐린은 꼭 고급 식당에만 별을 주는 게 아니다. 대개 고급식당이 별을 받지만, 선정 기준에는 인테리어나 서비스 등은 올라 있지 않다. 오직 맛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심사위원들도 사람이고, 더 인간적이고 전문적인 서비스에 만족할 테니까. 팀호안은 밀려드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다. 안내인이 한번에 먹고 싶은 것을 몰아서 시키는 게 유리하다고 조언한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팀호안은 훌륭한 집이며 명성이 높아서 하루 종일 붐빈다. 접근도가 좋고, 미쉐린 후광도 있다. 그렇지만 린흥에서의 느긋한 현지인들의 얌차를 포착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곳은 아니다. 나는 그래서 호젓한 시간에 린흥을 간다. 홍콩엔 딤섬집이 많지만, 골목에 있는 작은 집들은 점차 줄어드는 것 같다. 손이 많이 가고, 조리 공간은 부족하고(살인적인 임대료가 있을 것이다), 요리사는 구하기 어려우니 더 단순한 요리 쪽으로 가는 게 당연한 일이겠다.

국수는 딤섬과 함께 가장 홍콩스러운 음식이다.
국수는 딤섬과 함께 가장 홍콩스러운 음식이다.
홍콩에서 딤섬은 상징이다. 상징이란 실속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 나는 거리의 국숫집을 찾는다. 그편이 더 홍콩스럽다. 무뚝뚝한 주인, 빠른 서비스(빨리 먹고 나가야 회전이 된다), 싸구려 식기(멜라민을 많이 쓴다), 좋은 가격(20홍콩달러, 약 3000원대)이 사람들을 부른다. 밤늦게까지 하는 집도 많다. 차자이멘이라고 부르는 국숫집이 전형적이다. 손수레에서 국수를 삶아서 팔았던 역사다. 이제는 더 이상 거리에 손수레 국숫집은 없다고 한다. 작은 가게를 얻어서 장사한다. 접근도 좋은 관광지역의 국숫집은 줄을 길게 선다. 실망할 필요 없다. 홍콩 시내 어디든 골목을 찾아들면 국숫집이 한두 개는 있으니까. 차자이멘도 좀 복잡한 집도 있다. 우선 국수의 종류가 여러 가지다. 튀긴 면, 굵은 면, 가는 면, 넓적한 면. 육수도 간장과 향신료가 강한 국물부터 맑은 국물까지 고를 수 있다. 고명도 여러 가지다. 온갖 고기와 채소, 어묵까지 선택한다. 우리 같은 관광객들은, 그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무얼 재료로 가공했는지 잘 모른다. 그러니 주저하게 되는데, 직원이 눈빛으로 채근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굳게 마음먹는다. 물어보지 말고, 빨리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가난한 국숫집 직원을 괴롭히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먹는 건 거의 비슷하다. 소다를 많이 쳐서 노란색을 띠는 가는 면(이게 우리가 아는 완탕면의 그 국수이며, 전통적인 라멘의 그 면발이다)을 고르고, 간장 육수에 소 내장과 소고기를 얹는 것이다. 더러 돼지고기 절인 것(차슈)을 얹을 때도 있다. 채소는 보이는 대로 한 가지 달라고 한다. 고명이 많아지면 값이 오른다. 한 가지 고명을 고르면 보통 30홍콩달러 선. 그러나 나처럼 서너 가지 고명은 가볍게 70~80홍콩달러가 된다. 그래도 1만원은 대개 넘지 않는다.

포장마차촌 다이파이동의 서정

이렇게 고를 수 있는 집이 있는가 하면, 메뉴에 있는 국수를 그냥 고르는 경우도 많다. 우리가 좋아하는 하늘하늘한 날개를 가진 새우만두가 들어간 완탕면을 먹어야 하루를 잘 먹었다고 생각한다. 밤 늦은 시간에 야식으로 더없이 좋다. 한번 같이 갔던 요리사 레이먼은 아침에도 완탕면, 저녁에도 완탕면을 먹었다. 돌아오는 비행편에, 당신이 캐세이패시픽 비즈니스석 이상이라면 공항의 라운지에서 다시 완탕면을 먹을 수 있다. 공항 안에는 캐세이패시픽 라운지가 여러 개 있다. 그중에 누들을 전문으로 다루는 라운지도 있으니까, 역시 홍콩은 국수인 것인가.

마지막으로 내가 홍콩에서 음식을 즐기는 최선의 방법을 쓰련다. 바로 다이파이동이다. 홍콩 템플 스트리트(Temple Street)의 야시장 옆 포장마차 군락지다. 이곳은 전설적인 포장마차촌이다.

“예전에 퇴직 공무원들의 생활 지원책으로 시작했다고 해요. 먹고살라고 정부에서 자리를 내준 거죠. 그것이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어요. 이제 다이파이동은 역사의 유물이 될 거예요. 대를 물려 장사할 수 없거든요.”

다이파이동은 홍콩이 세계에서 제일 잘살며, 제일 깨끗한 도시라는 인상을 지운다. 너저분한 가설 포장마차니까. 그것이 더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고 발길을 잡아끈다. 요리사들이 노천을 겨우 벗어난 주방에서 요리를 한다. 우리네 포장마차가 그렇듯이. 요리는 물론 꽤 본격적이다. 온갖 재료를 써서 빠르게 요리한다. 맛있고 싸다. 시내 요릿집의 절반 이하 값에 본격 요리를 먹어볼 수 있다. 주렁주렁한 전등불빛 아래서 사람들은 플라스틱 탁자에 요리를 놓고 맥주를 마신다. 그것이 홍콩의 밤다운 풍경이다.

어느 날, 밤이 깊어서 소호에 갔다. 홍콩이 국제도시라는 걸 실감하게 하는. 온갖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거리에서 맥주를 마시고, 뵈브클리코 샴페인까지 들이켠다. 수제 생맥주를 팔고, 심지어 현지에서 미쉐린 별을 받았다는 요리사가 건너와서 하는 스칸디나비아 요리 전문점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소호보다는 여전히 몽콕이다. 어두운 골목, 으슥한 국숫집을 찾아간다. 그것이 내가 홍콩을 먹는 방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