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 서강대 교수 "'임금상승률 정체됐다'는 소주성 이론…통계 허점서 생긴 오류"
학계에서 ‘소득주도성장’의 이론적 토대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잘못된 기본 가설을 적용한 채 정책 실험을 하다 보니 고용 참사, 소득 분배 악화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 이 같은 문제 제기로 주목받는 학자 중 한 사람이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사진)다. 지난 1일 ‘한국 경제의 노동생산성과 임금’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한국의 임금 상승률이 경제 성장 속도에 못 미친다’는 주장은 통계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발표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임금 상승률이 정체됐다는 통계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의 전제이자 출발점이다.

6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연구실에서 만난 박 교수는 “특정 정권을 비판하려는 취지가 아니라 정책 토대가 되는 이론에 논리적 비약이 있거나 부적절한 통계를 쓰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려 했을 뿐”이라며 “나는 박근혜 정부가 정권 말기에 소득주도성장과 비슷한 정책을 폈을 때도 잘못이라고 비판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지금이라도 정확한 기초 사실을 파악한 뒤 올바른 정책 방향을 세워달라”고 주문했다. 박 교수는 소득주도성장 이론의 3대 맹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박정수 서강대 교수 "'임금상승률 정체됐다'는 소주성 이론…통계 허점서 생긴 오류"
(1) 임금 상승률, 경제 성장 속도 못 따라간다?

소득주도성장 이론은 ‘경제 성장에 비해 임금 상승이 더디다’ ‘기업이 이익을 임금으로 제대로 배분하지 않는다’ ‘소득이 오르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세 가지 기둥 위에 서 있다. 임금 상승률이 낮다는 첫 번째 이론의 토대를 제공한 사람이 박종규 청와대 재정기획관이다. 그는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 시절인 2013년에 낸 보고서에서 “2007년 이후 실질 임금 상승률이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크게 밑돌았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통계에 허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질 임금상승률은 명목 임금상승률에 소비자물가지수를 반영한 것이고, 실질 GDP 증가율은 명목 GDP 증가율에 생산물 기준 물가지표인 GDP 디플레이터를 반영한 것이다. 두 물가지수는 원래 비슷하게 증가했지만 2005년 이후에는 소비자물가지수가 훨씬 빨리 상승했다. GDP가 임금보다 더 빨리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동일한 물가지수로 실질 지표를 구하거나, 물가를 고려하지 않는 명목 지표를 사용하면 GDP와 임금의 증가율에 차이가 거의 없었다. 즉 실질 임금과 실질 GDP의 차이를 놓고 임금소득 배분이 악화됐다고 한 것은 물가지수 차이를 감안하지 못한 성급한 해석이었다.”

박 기획관은 박 교수의 논문이 화제가 되자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실질 임금은 노동자가 소비재를 얼마나 살 수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구매력 지표’인데, 기계장치·원재료까지 포함한 모든 생산물 기준 물가지표로 나눠 분석하는 사례는 드물다”고 반박했다. 동일한 물가지수로 실질 지표를 구하는 건 어색하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실질 지표끼리 비교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물가지수 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조심해서 해석해야 한다”며 “소득배분 측면을 보려면 물가지수 영향이 없는 명목 지표를 쓰거나 동일한 물가지수로 실질 지표끼리 비교해야 맞다”고 재반박했다.

(2) 기업이 이익을 제대로 배분하지 않는다?

소득주도성장론자들은 임금 상승률이 낮은 이유를 ‘기업이 이익을 노동자에게 제대로 배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찾았다. 그 근거로 국민가처분소득 중 가계소득 비중이 줄었다는 통계를 내세운다. 장하성 주중대사(전 청와대 정책실장)가 특히 강조한 부분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착시’가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가계소득에는 기업에 속한 근로자 보수뿐 아니라 자영업자의 영업잉여(이익) 등이 포함되기 때문”이라며 “소득이 줄어든 자영업자 부문을 제외한 피고용자 보수 비중만 보면 2000년부터 2017년 사이 57.8%에서 63.0%로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가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 통계를 기반으로 법인부문만의 소득 배분을 분석한 결과도 비슷했다. 기업 총부가가치 대비 인건비 비중이 2000년 47.6%에서 2017년 54.3%로 상승한 것.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에서 근로자가 가져가는 몫이 오히려 커졌다는 뜻이다.

(3) 임금을 높이면 경제가 성장한다?

자신들만의 통계 분석으로 ‘임금이 제대로 안 오르는 게 문제’라는 결론을 얻은 소득주도성장론자들은 임금을 올리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이론까지 세워 소득주도성장을 완성했다. 소득을 높이면 노동생산성, 소비, 투자가 확대되고 경제 성장으로 귀결된다는 논리다. 정부는 이 이론을 토대로 최저임금 인상과 복지 확대 등을 실행했다. 하지만 임금 상승과 경제 성장의 인과관계에 대해선 적절한 실증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박 교수의 지적이다. 박 교수는 “소득을 높이면 저절로 생산성도 오른다는 논리적 연결고리가 특히 취약하다”며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패널 자료를 분석한 결과, 생산성을 웃도는 임금 상승은 오히려 생산성과 경제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고 강조했다.

임금을 인위적으로 올렸을 때 실업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최저임금 인상 후 분배가 악화됐다는 통계가 나오자 ‘실업자를 제외한 임금근로자’만 분석한 뒤 “분배가 개선됐다”는 주장을 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의 원조인 국제노동기구(ILO)의 임금주도성장 자체가 실업을 배제한 모형이었다”며 “급격한 임금 인상은 수익성이 낮은 중소기업에 직격탄이 된다는 경제 현실을 외면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제 오류는 우려했던 결과로 나타났다. 정부가 지난해 최저임금을 16.4% 올리자 2월부터 고용 참사가 발생했고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 격차가 더 벌어지는 등 분배마저 악화됐고 성장률도 하락세가 커지고 있다.

박 교수는 “통계를 올바르게 분석했을 때 도출되는 우리 경제의 문제는 노동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가 통계청의 10인 이상 제조업 사업체 통계를 분석한 결과 2000~2017년 명목 임금은 138.5% 증가한 반면 명목 노동생산성은 107.1%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박 교수는 “저성장을 극복하려면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조 개혁과 규제 개혁에 정책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서민준/고경봉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