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조무래기 대한민국'으로 돌아갈 건가
간단한 퀴즈 하나. 누군가 제조업을 하기 위해 ①땅을 사서 ②공장을 짓고 ③설비를 구입하고 ④인력을 고용한다면 어느 것이 투자에 해당할까? 일반인은 물론 기업인들도 ‘모두 투자’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들이는 모든 비용과 노력을 투자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계정에서 국내총생산(GDP)을 산출할 때 ①과 ④는 투자행위가 아니다. 자연 자산인 땅은 국부에는 편입되지만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생산재화로 간주되지 않는다. 땅이 자본재라면 인류의 자본주의 역사는 원시사회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노동력 역시 마찬가지다. 자본재와 결합할 수 있는 생산재화일 뿐, 그 자체가 자본재가 될 수 없다. 만약 노동력이 자본재라면 중국과 인도는 일찌감치 경제강국이 됐을 것이다.

투자의 양대 축인 건설투자와 설비투자는 오로지 자본재(중간재)를 새로 만들거나 구입할 때만 GDP에 포함된다. 공장이나 유통시설, 빌딩과 아파트를 짓는 것은 건설투자, 생산기계와 운송장비(트럭 선박 등)를 구입하는 것은 설비투자에 해당한다. 여기에 기업들의 연구개발(R&D)과 소프트웨어 투자가 ⑤지식재산생산물투자라는 이름으로 총자본 형성의 맨 아래 칸을 채우고 있다. 3개 투자 항목의 공통점은 어떤 경우에도 새로운 투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로 소비주체로서 경제활동을 해온 사람들은 투자의 의미가 이렇게 엄격하고 제한적이라는 사실에 놀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 투자는 엄중한 것이다. 아무나 결행할 수가 없다. 기업가정신이야말로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정글의 고단한 경쟁에 뛰어들게 만든다.

한국은 잠재성장률 2%대를 기고 있다. 가용 생산요소를 총동원해도 이 수준을 넘어 성장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이런 나라에서 지난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경기 순환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번 ‘마이너스 쇼크’가 구조적·만성적인 것이며, 우리 경제가 반도체 없이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는 현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잠재성장률을 지속적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투자 부진 때문이다. 자녀들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대신 빌딩을 사주겠다는 기업인이 수두룩하다. 자식들만이라도 이렇게 힘든 사업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는 하소연이 많다. 하지만 같은 100억원짜리라도 빌딩의 부가가치는 공장과 비교가 안 된다. GDP에 미치는 영향은 제로에 가깝다. 빌딩 가격이 올라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라도 경제성장과는 관련이 없다.

대기업들도 슬금슬금 국내 투자에 손을 놓고 있다. 도처에서 눈을 부라리는 우리 사회의 ‘헌병’들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 생산성 하락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한다. 이렇게 떠나가는 한국의 알토란 같은 자본재를 베트남 같은 신흥국들이 받아먹고 있다.

투자 부진을 문재인 정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산업구조와 글로벌 경쟁환경의 급변도 기업들의 자신감을 약화시킨 요인일 것이다. 하지만 최종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 문 대통령은 반도체 경기가 좋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경제가 활황일 때 집권했다. 그리고 지난 2년간 그 과실을 충분히 즐겼다. 넘쳐나는 세수로 공무원을 늘리고 복지인심도 후하게 썼다. 이제 민간경제의 활력을 되살려야 할 때다. 그 첫걸음은 ②와 ③과 ⑤를 살려놓는 것이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똑같은 대답이다. 방안도 이미 제시돼 있다. 투자는 국력의 원천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언제부터 미국 중국 인도 브라질처럼 큰 나라에서 어깨를 펴고 다녔는가. 땅과 인구의 한계를 돌파한 자본축적과 성공적인 투자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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