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채권자들과의 자율적인 구조조정에 실패한 뒤 법원의 ‘신속 회생’ 절차를 밟기로 한 첫 사례가 나왔다. 자율 구조조정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협의한 회생안을 그대로 활용하는 방식이라 기업 회생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평가다.

서울회생법원 회생11부(부장판사 김상규)는 동인광학에 대해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내렸다고 8일 밝혔다. 1995년 설립된 동인광학은 개인 화기에 부착하는 조준경을 제조해 국방부에 납품하는 군사장비 업체다. 지난해 말 기준 자산 315억원인 중소업체다.

이 회사는 지난해 10월 유동성 부족과 적자 누적으로 법원에 회생을 신청하면서 ‘자율 구조조정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자율 구조조정 지원 프로그램은 법원이 회생절차 개시를 보류한 기간에 회사가 종전처럼 영업하면서 채권자들과 자율적으로 구조조정 문제를 협의하는 제도다. 자율 구조조정안이 최종 타결되면 회생 신청은 취하되고,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법원에 의한 회생절차가 개시된다.

동인광학은 채권자 75%의 동의를 받지 못해 자율협약에 따른 구조조정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채권자 과반 동의를 받아 사전계획안을 제출하는 데는 성공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동인광학에 대해 ‘프리패키지드 플랜(P-플랜)’에 따른 회생 절차를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동인광학은 사전계획안에 따라 회생채권자·담보권자·주주 등 목록 및 관리인 조사보고서 제출을 생략하기로 했다. 조사위원이 조사하는 내용도 사전계획안의 청산가치 보장 여부 및 수행 가능성 여부 등으로 간략해진다.

법원은 별다른 차질이 없다면 동인광학이 2개월 이내에 최종적인 회생계획 인가 결정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자율적 구조조정 합의에는 실패했지만 이를 진행하던 중 협의된 사전계획안을 바탕으로 P-플랜을 신청한 최초 사례”라며 “회사가 단시간에 정상 기업으로 복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P - 플랜

pre-packaged plan. 법원에 의한 초단기 법정관리 제도로 법원이 기존의 빚을 신속히 줄여 주면 채권단이 신규 자금을 투입하는 구조조정 방식. 부채의 2분의 1 이상을 보유한 채권자 혹은 채권자의 동의를 얻은 채무자가 사전에 회생계획안을 마련한 후 신청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