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 서울 종로중구지사 직원들이 한 중소기업 대표로부터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을 받고 있다.  /한경DB
국민연금공단 서울 종로중구지사 직원들이 한 중소기업 대표로부터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을 받고 있다. /한경DB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영세·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일자리안정자금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올 들어 4월까지 지원한 근로자 수가 정부의 연간 지원 목표의 90%를 넘었다. 작년엔 돈이 남아돌아 고민이었지만 올해는 ‘예산 펑크’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단독] 일자리자금 신청 폭주…이젠 '예산 펑크' 걱정
8일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일자리안정자금 수급자는 지난달 말까지 217만 명으로 집계됐다. 올해 정부의 지원 목표가 238만 명인데 벌써 91.2%에 이른 것이다. 지난달 말까지 집행액도 7253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2828억원)의 2.6배로 늘어났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해엔 1년 한시 사업으로 끝나지 않을까 해서 관망하는 사업주가 많았는데 제도가 자리를 잡자 적극 신청하자는 분위기가 생겨 집행 속도가 빨라졌다”고 말했다. 자격 요건을 완화한 영향도 있다.

정부는 일자리안정자금이 연말로 갈수록 집행액이 더 빨리 불어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기존 지원 근로자가 퇴직·이직하지 않는 이상 계속 지급하고 신규 신청자도 계속 생기기 때문이다. 작년 5~12월 월평균 지원액은 4월 집행액보다 1.4배 많았다. 올해 남은 기간 지난달 지급액(2835억원)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해도 연말에 3조3000억원이 돼 올해 예산(2조7618억원)을 초과한다.

최저임금 과속, 예산으로 막더니…
'세금 먹는 하마' 된 일자리자금


“세계에 유례없는 제도다. 이런 지원은 한번 시작하면 중단하기 힘들어 갈수록 예산 부담이 커지기 마련이다.”

정부가 ‘일자리 안정자금’ 도입을 발표한 2017년 7월 16일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가 털어놓은 속내다.

일자리 안정자금은 30인 미만 영세업체에 근로자 한 명당 월 13만원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2018년 최저임금이 16.4%나 올라 ‘소상공인이 다 죽는다’는 우려가 커지자 민심을 달래려고 도입했다. 예산을 통한 기업 인건비 지원은 통상 청년 고용을 늘리거나 투자를 확대할 때 이뤄진다. 긴급경영안정자금 제도는 이런 조건은 없지만 상환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일자리 안정자금은 지원 조건도 상환 의무도 없는 ‘파격 지원’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후유증을 수습하려고 더 큰 악수(惡手)를 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중간에 지원이 끊기면 지원받던 사람들이 반발해 사업을 중단하기 어렵고 이에 따라 예산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리란 우려가 컸다. 실제 정부는 제도 발표 당시 ‘한시 사업’이라고 했지만 올해에 이어 내년까지 시행한다고 밝힌 상태다. 기재부는 이런 점을 내다보고 도입에 반대했지만 여당과 청와대가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단독] 일자리자금 신청 폭주…이젠 '예산 펑크' 걱정
안정자금 신청자 4월까지 217만 명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올해 들어 안정자금 지원이 급증하고 있다. 8일 기재부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일자리 안정자금은 지난달까지 217만 명에게 7253억원이 지급됐다. 수급자 수는 올해 연간 지원 목표(238만 명)의 90%를 넘겼다. 지급액은 작년 4월 말까지 지급액(2828억원)보다 2.6배 많은 수준이다.

작년만 해도 안정자금은 집행이 안 돼 걱정이었다. 부처 장관들이 현장을 방문해 안정자금 신청을 독려할 정도였다. 이렇게 했어도 작년 집행액은 2조5136억원으로 예산(2조9409억원)을 다 못 썼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해엔 언제 제도가 중단될지 모르는데 고용보험도 가입하고 기업 경영 현황을 정부에 보고해야 하는 게 부담이라는 사업주가 많았다”며 “정부가 내년까지도 제도를 유지해 오래 지원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자 이제는 적극 신청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원 요건 완화도 신청 증가에 일조했다. 원래는 30인 미만 기업에만 지급했으나 올해부터는 만 55세 근로자가 있는 기업은 300인 미만까지 지원한다.

소상공인 경영난 악화가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저임금 영향이 큰 숙박음식업 등에서 경기가 계속 나빠지자 ‘이제는 버틸 수 없다’며 정부에 손을 벌리는 사업주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음식점·주점업의 판매액지수는 2010년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재정 부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

문제는 올해 안정자금 예산이 보수적으로 책정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지원 근로자 수가 작년과 비슷할 것으로 보고 예산을 작년 집행액(2조5136억원)보다 약간 많은 2조7618억원으로 잡았다. 안정자금은 연말로 갈수록 집행액이 더 빨리 늘어나는데, 만약 올해 남은 기간이 4월 지급액(2835억원) 수준을 유지해도 연말엔 3조3000억원까지 불어난다. 예산 고갈로 대규모 미지급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얘기다.

이런 점 때문에 정부도 예산 관리에 부쩍 신경쓰고 있다. 안정자금 실무를 담당하는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작년만 해도 신청자를 늘리라고 압박했던 정부가 요즘엔 ‘중복·부정 수급을 잘 관리하라’고 강조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올해 집행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관리하더라도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건강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안정자금 지원 사업장에는 건강보험료를 최대 60% 깎아주고 있는데 지난해 이런 건보료 경감액만 2648억원이었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피해를 혈세로 메우는 일자리 안정자금은 세계적으로 유례도 없고 애초에 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정책이었다”며 “정부는 내년에도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는데 이대로는 세금 먹는 하마가 돼 재정에 큰 부담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