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앞으로 20년 더 반도체에 기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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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과 주력 품목 같은 유일한 국가
규제로 인한 구조적 침체가 더 문제다
고경봉 경제부 차장
규제로 인한 구조적 침체가 더 문제다
고경봉 경제부 차장
“반도체 경기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우리나라 수출이 꺾인 지난해 4분기 이후 기자간담회가 열릴 때마다 매번 이 질문을 빠지지 않고 받는다. 기자들도 집요하다. 자동차나 조선 등 다른 업종에 대한 질문은 없이 메모리 반도체 업황만 묻는다. 그때마다 이 총재는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답을 한다. 중앙은행 총재가 이처럼 특정 업종 전망을 매번 내놔야 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코미디 같은 장면이지만 어쩔 수 없다. 경제성장률을 예측하려면 반도체 업황을 빼먹을 수 없다. 지난 1분기 우리나라가 전분기 대비 -0.3%라는 충격적인 경제성장률을 보인 결정적인 이유도 반도체 투자와 수출이 급감해서다.
올해도 우리나라 성장률은 메모리 반도체 경기가 좌우하는 형국이다. 한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5%다. 정부는 2.6~2.7%를 고수하며 낙관론을 펴고 있다. 반면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노무라증권은 최근 각각 2.1%, 1.8%로 깎아내렸다. 이유는 단순하다. 정부와 한은은 반도체 경기가 하반기 회복될 것으로 봤지만 무디스 등은 침체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이쯤 되면 중동 국가들이 석유에 의존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서글픈 것은 이런 상황이 벌써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편중 우려가 나올 때마다 정부는 비메모리, 금융, 바이오, 공유경제 등 거창한 신산업 육성 방안을 내놨지만 별로 바뀐 건 없다.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 수출 경쟁국 가운데 20년 전과 주력 품목이 같은 유일한 국가로 꼽힌다. 오히려 편중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20년 전 수출에서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13% 안팎이었지만 올해는 21%에 달한다.
그런 가운데 글로벌 산업 생태계의 변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지난 10년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1위 기업이 바뀌지 않은 나라는 주요국 중 한국과 일본 정도다. 미국은 시총 상위 자리를 꿰차고 있던 ‘굴뚝 기업’과 금융회사, 정유업체들이 뒤로 빠지고 그 자리를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 아마존 등이 차지했다. 중국도 부동의 1위였던 공상은행을 제치고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1위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우리는 올해로 20년째 삼성전자다. 2년 전부터 2위 자리엔 또 다른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SK하이닉스가 올라 있다.
20년 전 8600달러 남짓이던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3만달러를 넘어섰다. 산업의 패러다임도 그에 맞춰 진화했을 법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산업 구조조정은 지역 이기주의와 노동계의 으름장에 막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고, 신산업 태동은 규제와 기득권에 묶여 있다.
그 와중에 올 1분기 설비투자는 무려 10.8%가 줄었다. 1998년 1분기 이후 21년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어찌 보면 예견된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전부터 “기업이 수출로 경제를 떠받치던 시대는 지났다”며 강도 높은 규제를 예고했다. 출범 후 작심하듯 상법, 공정거래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기업 활동을 옥죄는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1분기 성장률 쇼크가 닥치자 정부는 대외 여건 악화 때문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재정을 더 풀면 회복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장의 경기 둔화야 돈을 풀어 막아본다지만 혁신이 뒤처진 데 따른 구조적 침체는 어찌할 것인가. 앞으로 20년간 더 반도체에 기대야 하는가.
kgb@hankyung.com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우리나라 수출이 꺾인 지난해 4분기 이후 기자간담회가 열릴 때마다 매번 이 질문을 빠지지 않고 받는다. 기자들도 집요하다. 자동차나 조선 등 다른 업종에 대한 질문은 없이 메모리 반도체 업황만 묻는다. 그때마다 이 총재는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답을 한다. 중앙은행 총재가 이처럼 특정 업종 전망을 매번 내놔야 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코미디 같은 장면이지만 어쩔 수 없다. 경제성장률을 예측하려면 반도체 업황을 빼먹을 수 없다. 지난 1분기 우리나라가 전분기 대비 -0.3%라는 충격적인 경제성장률을 보인 결정적인 이유도 반도체 투자와 수출이 급감해서다.
올해도 우리나라 성장률은 메모리 반도체 경기가 좌우하는 형국이다. 한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5%다. 정부는 2.6~2.7%를 고수하며 낙관론을 펴고 있다. 반면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노무라증권은 최근 각각 2.1%, 1.8%로 깎아내렸다. 이유는 단순하다. 정부와 한은은 반도체 경기가 하반기 회복될 것으로 봤지만 무디스 등은 침체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이쯤 되면 중동 국가들이 석유에 의존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서글픈 것은 이런 상황이 벌써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편중 우려가 나올 때마다 정부는 비메모리, 금융, 바이오, 공유경제 등 거창한 신산업 육성 방안을 내놨지만 별로 바뀐 건 없다.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 수출 경쟁국 가운데 20년 전과 주력 품목이 같은 유일한 국가로 꼽힌다. 오히려 편중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20년 전 수출에서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13% 안팎이었지만 올해는 21%에 달한다.
그런 가운데 글로벌 산업 생태계의 변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지난 10년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1위 기업이 바뀌지 않은 나라는 주요국 중 한국과 일본 정도다. 미국은 시총 상위 자리를 꿰차고 있던 ‘굴뚝 기업’과 금융회사, 정유업체들이 뒤로 빠지고 그 자리를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 아마존 등이 차지했다. 중국도 부동의 1위였던 공상은행을 제치고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1위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우리는 올해로 20년째 삼성전자다. 2년 전부터 2위 자리엔 또 다른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SK하이닉스가 올라 있다.
20년 전 8600달러 남짓이던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3만달러를 넘어섰다. 산업의 패러다임도 그에 맞춰 진화했을 법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산업 구조조정은 지역 이기주의와 노동계의 으름장에 막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고, 신산업 태동은 규제와 기득권에 묶여 있다.
그 와중에 올 1분기 설비투자는 무려 10.8%가 줄었다. 1998년 1분기 이후 21년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어찌 보면 예견된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전부터 “기업이 수출로 경제를 떠받치던 시대는 지났다”며 강도 높은 규제를 예고했다. 출범 후 작심하듯 상법, 공정거래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기업 활동을 옥죄는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1분기 성장률 쇼크가 닥치자 정부는 대외 여건 악화 때문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재정을 더 풀면 회복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장의 경기 둔화야 돈을 풀어 막아본다지만 혁신이 뒤처진 데 따른 구조적 침체는 어찌할 것인가. 앞으로 20년간 더 반도체에 기대야 하는가.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