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젊은 친구들이 모여 피자를 주문해 먹기로 했다. 전화로 주문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피자가 도착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점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이들 중 한 친구의 아버지가 잠깐 들러 상황을 보고는 한 수 가르쳐주기로 했다. 그는 수화기를 들어 방금 전까지 차분하던 태도에서 돌변해 피자집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5분 안에 오지 않으면 두 번 다시 주문하지 않겠다”고. 그러자 피자는 금방 도착했다.

[책마을] 화내야할 땐 화내야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 선점
길고 지루한 협상을 하는 동안 분노가 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감정은 비이성적이고 이성이 감정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여기며 분노를 억제한다. 협상을 하거나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더 그렇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철저히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한다.

《협상가를 위한 감정수업》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힘에 주목한다. 이스라엘 히브리대 이성연구센터 책임자인 저자는 이성이 감정보다 더 합리적이라는 통념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보여준다. 감정에 숨은 ‘합리적 논리성’을 여러 연구 결과와 사례를 통해 소개한다.

저자는 ‘이성적 감정’이란 개념을 통해 감정이 어떻게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이익을 가져오는지 짚어나간다. 이성적 감정이란 내면에 존재하는 감정과 이성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고 상호보완적으로 함께 작동한다는 의미다. 피자 주문 사례에 등장하는 아버지처럼 냉철하게 분노를 감정으로 표출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다.

여행을 가서 맛집을 찾는다고 하자. 두 식당이 나란히 있는데 한 곳은 손님이 북적이고 다른 곳은 썰렁하다. 이럴 때 이성적인 선택은 당연히 사람이 많은 곳이다. 똑같은 상황이 주식시장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할까. 주식시장이 연일 하락세를 보이면 사람들은 대부분 주식을 팔아치운다. 다른 사람이 모두 팔아치울 때 빨리 보유 주식을 파는 것이 합리적인 행동이다. 이처럼 비합리적이고 ‘패닉’이라고 불리는 군집 행동이 사실은 이성적인 행동의 결과라고 저자는 말한다. 다수의 의견을 좇는 것이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다수가 정의’라는 가정을 유도해 현실의 불합리를 견뎌나갈 편리한 명분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은행 강도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가 풀려난 사람들이 오히려 강도를 옹호하는 현상인 스톡홀름증후군, 고객이 거만한 행동을 보여도 소중한 존재라는 이유로 용납하는 태도 등도 모욕이나 분노를 조절해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이성적 감정으로 설명한다. 감정을 이롭게 활용하는 방법도 소개한다. 저자는 “인지체계가 우리에게 유리한 감정을 북돋우듯 불리한 감정도 족쇄를 채울 수 있다”며 “비이성적 감정의 존재를 인식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자각하면 감정의 부정적 영향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말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